"거함인줄 알았더니 물밑에 숨은 구식잠수함" 지난 15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들은 당 상임운영위원회의 결정으로 전원 해임되었다. 호남 지역 여남은 곳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살 지역구 공천이 끝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튿날 만찬을 끝으로 우리 외부 심사위원 여덟명은 대략 승선 80일만에 한나라호로부처 하설을 요청받았다. 벌써 닷새 전의 일이고, 그 사이 취했다 깨어난 밤도 몇 번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의식은 치열한 해전장을 떠돌고 있는 듯하다.
작년 연말 처음 심사를 위촉받을 때 나는 비록 만신창이가 되기는 해도 유서깊은 거함 한나라 호에 오른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달 뒤쯤 보내, 내가 탄 것은 언론과 검찰의 십자포화를 피해 물밐으로 숨은 구식 잠수함이었다. 정부 여당의 연합함대는 언론과 검찰이라는 강력한 구축람과 순양함 외에 공권력의 자잘한 어뢰정들을 수없이 띄워 물속 깊이 숨은 한나라호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런데 1주일 전 그 한나라호가 다른 야당과 연합한 기습공격으로 정부 여당 연합함대의 기함을 격침하고 말았다. 오만 또는 방심으로 상대를 얕보다 크게 상처를 입은 함대사력관은 부근을 항해하던 헌재(헌법재판소)호로 옮겨갔으나 그 안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함의 침몰과 함대 사령관의 부상에 격분한 연합함대의 호위함과 소해정들은 얼른 시민단체의 깃발로 바꿔달고, 뜻 아니한 성공에 멍해진 한나라호에 불세례를 퍼붓고... 그게 한나라호에서 내릴 때의 내 의식에 비친 여의도 근해의 상황이었다.
중국의 전통적 문장론은, 하늘이 우주만물을 총해 자신의 뜻을 드러낸 것을 천문이라 하고, 그 천문을 사람이 풀어쓴 것을 인문이라고 한다. 또 인문은 크게 경과 사로 나뉘는데 정치는 경의 실천이요, 문학 특히 소설은 사의 보유쯤으로 치는 듯하다. 따라서 한낱 소설가가 정치에서도 핵심적인 기능이 되는 인재등용의 현대적 양식인 국회의원 입후보 공촌에 간섭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분에 넘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문예이론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소설의 정의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본질이 사람의 이야기라면, 사람의 삶에 관련있는 모든 분야는 당현이 소설가의 관심을 끌게 된다. 특히 한국처럼 정치가 삶의 전 국면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에서 정치는 소설가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분야가 된다.
처음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직을 수락할 때만 해도 나는 나름대로 분명한 정치적 입장과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화살 만드는 사람과 갑옷 만드는 사람의 시비에 부질없이 끼어들었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모질어서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할까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어질어서 사람이 다칠까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각기 맡은 일이 달라서일 뿐이다.
다만 원고지 앞으로 돌아와 앉은 뒤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탄핵 이후의 정국에 나타난 두가지 새로운 현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길한 조짐으로만 어른거렸던 개익숭배현상과 반이성주의다.
개인숭배는 왕조시대의 유물이요, 현대사회에서는 김일성 체제 아래의 북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괴이쩍은 현상이었다. 아무개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정치적 태도를 옳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릐 정치적 태도가 옳기 때문에 아무개를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 중에는 오직 '노사모'이기 때문에 탄핵을 반대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자주 보인다.
젊은 세대 일부의 반 이성주의도 우리 사회에 진작부터 어른거리던 불길한 조짐이었다. 자신의 주장을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 전제부터 자신에게 유리하게 뒤집어엎고 시작하는 무논리나 무분별한 용어사용은 이미 반이성주의로 규정하기조차 과분할 만큼 도를 넘겼다. 국회가 헌법에 규정한 바에 따라행사한 탄핵소추권을 버젓이 '국회쿠데타'라 이름하고, 검찰,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과 방송에다 신문의 태반까지 장악한 대통령은 '약자'라고 우기며, 불법 체류 파키스탄 노동자까지 걱정하면서도 북한 인권은 따지면 '반통일세력'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하지만 80일의 외유를 끝내고 책상 앞으로 돌아온 지금까지 연연해하며 뒤돌아볼 마은은 전혀 없다. 지금 내 마음은 자기연민으로 무겁고, 밀린 원고는 한길이나 쌓였다. 거기다가 유황불이 비처럼 내리고 벼락이 대낮처럼 하늘을 밝히고 있는 듯한 정쟁의 열기를 돌아보는 내 눈을 멀게 하고 마침내는 나를 소금 기둥으로 구워놓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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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긴 관계로 제 생각은 답글에 달겠습니다. 먼 노무 글을 이리도 길게 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