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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책들을 한숨과 찌푸려진 미간과 함께 읽는 것은 아닌데, 바로 작가들의 수필집, 그것도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같은 고전들이 아닌 상대적으로 가벼운 작품들, 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 정도의 입장정리가 가능하다는 기분이다. 일단 독자라는 주 역할을 고수한 채, 이들의 사소한 생각들과 쓸데없이 깊은 통찰력 (가령 참치 통조림과 연어 통조림의 우위를 가리는 일에 자신의 지적 능력을 한껏 쏟아붓는 행위를 읽고있노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을 굉장히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들의 소설은, 마치 내가 소설을 쓸 때처럼, 사뭇 진지하고 절망적인 마음으로 써내려간 흔적이 보이는 반면, 수필은 아무리 주제가 심각하더라도 그 일상적인 어조와 ‘사사로움’에 크나큰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당연히 무거운 주제에 걸맞는 무거운 수필들도 존재하지만,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그렇기 때문에 수필을 쓰는 것, 그리고 읽는 것은 나에게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함께 일종의 수다를 떠는 양상을 띠고 있다.
소설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소설을 쓰고 있는 이미지는 마치 직장인이 정장을 차려입고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에 반해 수필을 쓴다는 것은 퇴근 후, 혹은 여가시간에,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풀어헤친 셔츠와 내려놓은 타이를 만지작거리며 “하루에 면도 하는 횟수를 줄여야 할 것 같아. 피부가 예전 같지 않거든.” 이라고 친구에게 하소연 하는 모습을 연상 시킨다 (‘하루에 면도 하는 횟수를 줄여야 할 것 같다’ 라는 타이틀의 수필이 곧 나올 것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수필에서 드러나는 글쟁이의 이미지는 무척 수더분하다. 밀란 쿤데라는 자부심 강한 지성인을 넘어선, 대도시의 여느 신경질적인 유럽 깍쟁이 신사의 태도가 묻어나오고, 공지영은 그녀의 소설 속 약자 중심의 서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활달함과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페미니스트 적 사상을 마음껏 표출하며, 마루야마 겐지는 얼핏 초연해 보이는 소설 속 테마와 묘사 뒤에 숨은 신경질적인 괴짜 천재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필은 뭐니뭐니해도 일상성과 쪼잔함의 극치를 달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인데, 전형적인 중년 남자의 느긋함과 소심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 압권이다. 소설 속 하루키의 목소리를 빌린 화자들은 하나 같이 과묵하고 신비스러웠는데, 이 정도면 자기기만의 천재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얼마 전부터 하루키의 소설 보다 그의 수필을 좋아하는 천시성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역시 나 혼자만의 관점일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는 나는 절대 수필을 쓰는 나 만큼 가벼워 질 수 없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상을 좇느냐 현실을 지켜보느냐로 생각 되지만, 그건 나중에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고...
편집본이 아닌 원문 읽으러 가기 -> http://wolfstar.tistory.com/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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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루에 한 편씩 수필 비스무리한 글을 끼적이는 천시성이라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게 글쟁이의 바람이라, 유머와 1 도 관련 없지만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인사드립니다.
언젠가는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게 당연히 목표구요.
링크에는 수필의 전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모두들 좋은 하루 되세요!
출처 | http://wolfstar.tistory.com/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