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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대상화
게시물ID : art_27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8비트
추천 : 2
조회수 : 71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2/13 23:57:29
카페는 90년대를 그대로 구현해 놓은 듯 했다. 모던한 가구와 다면체의 조명이, 세련돼 보이려 발악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론 싸구려틱했다. 조명과 가게 벽의 색이 맞지 않아, 카페가 아니라 개장 전의 클럽 같았다. 영턱스클럽인지, 잼인지 기계음으로 발라놓은 뽕끼어린 예전 노래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담배가 마려웠다.
단색의 테이블 너머로, 연한 인상의 그녀가 앉아 있었다. 마주 놓인 커피 잔에서 김이 올랐다. 내 앞에 있는 커피를 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 커피에서 걸레 빤 물맛이 났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뭐 있어?”

그녀가 내 시선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개를 가로젓고 커피 잔을 다시 들었다가, 커피 맛이 생각나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가 입술을 매만지고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떤 이야기인지는 잘 입력되지가 않았다. 어떤 문제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묻어온 감정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아서 중간에 끼어들어 되묻고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녀가 토해내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에게로 향할까 싶어서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일부만 주워듣고서, 잘 듣고 있다는 듯이 단편적인 질문을 했다. 그 때마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강아지와 어머니와 직장상사 사이를 핀볼처럼 오갔다.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말을 멈췄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해보니 딱히 기억나는 내용이 없었다. 나는 그런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대답을 했다.

“그러게”

내 말보다는 내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한동안 눈을 마주치다가, 커피 잔을 들었다. 

“이야기했더니 기분이 좀 나아지네”

그녀의 웃음이 내 안의 무엇을 건드렸는지, 마음 한 구석 온도가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커피 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목이 유난히 하얗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잔을 내려놓고는 립스틱이 묻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녀의 하얗고 긴 손가락을 보면서, 그 손가락이 내 몸 위를 기어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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