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업체가 3∼4배 더 많은 급여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경력 10년차 이상에게는 연봉 4억∼5억원까지 제시했다고 들었습니다."(국내 배터리업체의 A씨)
국내 배터리업계에 '인력 유출 경계령'이 떨어졌다.
'배터리 굴기(堀起)'를 외치며 대규모 투자에 나선 중국이 한국 고급 인력 스카우트에 총력전을 펼치는 것이다.
반도체, 전자 분야에서 '한국 핵심 인력 빼내기'로 우리나라와 기술격차를 줄인 중국이 차세대 먹거리인 배터리 분야까지 넘봄에 따라 업계는 물론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주요 배터리업체들은
LG화학, 삼성
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주요 업체에 소속된 연구개발, 엔지니어 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A씨는 "국내 배터리업계 전문 인력 정보를 가진 헤드헌팅 업체가 중국 회사의 용역을 수행하며 국내 인력에 접촉하고 있다"며 "국내 재직 중인 배터리 핵심 인력 중 30~40%가 대상일 것이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중국 업체의 제안을 받아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한 전기차 업체에 이미 100여명의 한국인 인력이 스카우트돼 일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인력이 유출됐는지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중국 업체에 노출된 만큼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력이 이직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배터리 산업은 반도체나 통신 분야처럼 신기술을 조기에 개발한 뒤 생산원가를 낮춰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분야다. 연구개발 인력 확보 여부에 따라 사업 성패가 좌우되는 셈이다.
한국과 일본의 선진 기업을 따라잡아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라도 고급 인력을 영입해야 '배터리 굴기'를 이룰 수 있는 셈이다.
매년 3천만대의 신차를 파는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자 시장인 중국은 오는 2020년까지 60만대 규모로 전기차 시장을 육성할 계획이다. 전기차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등 정부 정책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업체는 영입한 인력을 위해 통역 등 편의 제공에도 각별하게 신경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어 장벽 때문에 이직을 꺼리는 한국 인력까지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비밀리에 진행하는 스카우트 외에 공고를 통한 개방형 채용도 병행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比亞迪·
BYD)는 최근 광둥(廣東)성 선전(深천<土+川>)에서 근무할 한국 배터리 인력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연봉 외에 성과급, 연말 보너스, 관용차 보조금, 자동차 구입 보조금, 1인용 숙소까지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한국 직원을 꾸준히 영입했으며 최근에는 한국 출신 직원을 중앙연구소 소장 등 요직에 배치, 기술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완성차 제조업체는 한국에 아예 연구소를 차려놓고 연구개발 인력을 영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가 제시하는 연봉은 대리급 기준 약 1억원, 차·부장급은 1억5천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않아 사업 성과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이라 기술 인력 빼가기를 막을 수단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업체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관련 실적이 아직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한 형편이라 인력 처우 개선에 투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比亞迪·BYD)가 낸 한국 인력 채용 공고.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