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천도를 최우의 사적인 이익을 탐해서라는 주장이 가끔 역게에 올라옵니다. 하지만 그게 이유라면 강화도 항쟁이라고 역사에서 가르치지 않겠지요.
강화도 천도가 최우의 개인적 이익에 대한 평가가 없고 몽골에 대한 항쟁의 의미로서 대우받는건 그만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최우의 개인적 이익을 생각하면 강화도 천도는 할 이유가 없습니다. 몽골에 항복이 최선책인 겁니다. 몽골은 고려 정치 체제의 개혁 같은건 전혀 염두에 둔 적이 없습니다. 최씨 무신 정권이 백성을 수탈하든 왕권을 남용하든 몽골이 알 게 뭡니까. 상납품만 잘 바치면 되지.
그렇다면 최씨무신정권들의 수장들이 몽골에 항복할 경우 지방관 처럼 대우했을께 뻔합니다. 물론 고려 백성은 고통받겠지요. 몽골에 보낼 상납품을 마련할라면 백성을 쥐어짜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게 최씨무신정권 수장들의 고통은 아닙니다. 수탈 와중에 충분한 떡고물을 받아 챙길 수 있음은 물론이요 몽골의 강력한 군사력의 보호를 받을 겁니다. 또한 몽고와의 전쟁으로 개인 사병 집단이 소진되지 않기 때문에 강력한 무력 집단을 소유한 무신정권은 휠씬 오래갔을 겁니다.
이미 역사에서 최씨무신정권과 다른 판단을 한 문신들이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그들을 권문세족이라 부릅니다. 그들은 몽골과 적극적으로 교류했으며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아 자기의 농장 소유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몽골 귀족들과 친인척으로 왕조차도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면세와 면역으로 고려 재정을 파탄지경으로 몰아갔습니다. 고려가 멸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씨무신정권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당대에 그친 전임 무신 정권관는 달리 적극적으로 문무합작정권을 건설해서 문반의 능력까지 최대로 활용해서 최씨 4대 세습을 만들어서 무신 정권을 안정화시킬 정도로 똑똑햇던 최우가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아마 분명 최우 또한 그 생각을 안햇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쟁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가 사병집단에 가까웟던 삼별초의 소실 같은 최씨무신정권의 무력 기반을 상실하고 결국 개경 환도를 반대하던 임연과 임유무 같은 무신들이 1270년 원종에게 제거될 결과를 낳은 그 선택이요. 삼별초 같은 정예군이 휘하에 있엇다면 군력을 가진 무신을 원종이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무신정권이 막을 내리자 고려는 개경으로 천도하고 대몽골 항쟁은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최우의 강화도 천도를 몽골의 침입에 대한 항쟁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들은 사적으로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자존심과 존속을 위해 항쟁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왜 폄하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려 대몽골 항쟁은 무신정권으로 부터 시작되어서 무신정권의 종말과 함께 끝났습니다. 최우의 후손들까지도요. 고려 충선왕 즉위 교서에 있는 재상지종에 최우의 가문인 우봉 최씨가 없는 걸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애국자라고 칭송 받아야 할 사람들이 어이없는 폄하를 받고 있는건 좀 아닌 거 같아서 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