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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낙인(烙印)
게시물ID : bestofbest_2539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굶주린상상력
추천 : 134
조회수 : 8952회
댓글수 : 1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6/07/13 00:10:39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7/12 08: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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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烙印)

 

 

남자는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이 찬다. 숨을 쉴 때마다 펄펄 끓는 물을 토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남자는 발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남자를 뒤쫓는 집단에게 붙잡힌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죽음의 공포가 남자에게 한계 이상의 달리기를 허락했다. 덕분에 어두운 건물에 몸을 숨길 수 있던 남자는 바닥에 몸을 던지다시피 드러누워 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 그들을 저주했다.

 

씨X, 광신도새끼들. 네놈들이나 뒤져버려라

 

남자를 쫓던 사람들은 종교인들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목표에 달려드는 꼬락서니는 광신도 이상이었다.

남자는 땀이 흐르는 이마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올렸다. 항상 버릇처럼 하는 동작이 무언가에 방해 받았다. 바로 남자의 뒤통수에 돋아난 때문 이었다.

 

처음 머리에 뿔이 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20**1213일 그리니치 천문대 표준시로 정확히 정오에, 특정 사람들의 머리에 일제히 뿔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뿔이 돋아난 사람들은 물론 그 주변사람들 까지 기겁을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날의 기겁은 수천 배로 증폭되어 전 세계를 감쌌다.

 

어른의 손가락 크기로 뾰족하게 돋은 뿔은 사슴이나 소들의 뿔처럼 단단했다. 그리고 그 뿔에는 기묘한 모양들이 양각되어 있었다. 뿔의 숫자와 돋는 위치도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정수리에, 어떤 사람은 이마에, 어떤 사람은 뒤통수에 뿔이 돋았다. 어떤 사람은 뿔이 하나지만 어떤 사람은 수백 개의 뿔이 돋아나 머리뿐만 아니라 몸에도 뿔이 돋아나 있었다. 뿔의 모양와 새겨진 무늬들은 모두 미묘하게 조금씩 달랐고, 그 색깔까지도 다양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의 몸에 돋은 뿔을 제거하려고 했다. 이 뿔은 뼈에서부터 시작하여 피부를 뚫고 올라온 것이어서 제거수술을 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기는 했지만, 완전히 불가능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술로 뿔을 제거한 사람은 한달 이상 격통에 발광을 하다가, 자신의 온몸을 쥐어뜯는 비참한 모습으로 사망했다.

뿔 제거 수술을 받은 사람 138명이 차례로 그렇게 죽어가자 사람들은 그냥 포기하고 뿔이 난 채로 살기로 했다. 사실 이 뿔들은 사람들의 건강에는 아무 해를 입히지 않았다. 뿔이 돋은 사람들의 숫자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다만 뿔이 돋은 사람은 대부분 남자이고 여자들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이 기현상에 학자들이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 했다.

이 뿔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의 머리에서 뿔이 나는 것인가?

 

학자들이 다각도에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지만 쓸만한 성과는 없었다. 뿔이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뿔이 나는 사람들의 신체적 공통점도 알 수 없었다. 모든 혈액형, 모든 피부색, 모든 체형, 모든 인종에서 뿔이 돋아난 사람들이 발견되고 있었다.

돈 많은 부자, 가난뱅이, 유명연예인, 샐러리맨, 스포츠스타, 일용잡부, 정치가, 택시기사, 목사, 신부, 스님, 가정주부 등 대부분의 직종에서도 뿔이 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뿔은 단지 무작위로 돋아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주장이 가장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이 뿔의 의미를 처음 눈치 챈 사람은 저명한 학자도, 철학자도, 의사도 아니었다. 그 사람은 교도소의 교도관 이었다.

교도소 안에서도 뿔이 돋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동료 교도관 중에서도 뿔이 난 사람이 한명 있었고, 재소자 들 중에도 뿔이 돋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 교도관이 묘한 것을 느낀 것은 재소자들 중에 뿔이 돋아나는 사람들의 비율이 일반인들 사이의 비율보다 월등이 높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비율을 생각하면 교도소 안에서 뿔이 돋은 재소자는 비정상 적일 정도로 많았다.

 

혹시 이 뿔은 범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마약을 흡입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병이라던가…….’

 

호기심이 발동한 교도관은 뿔이 돋은 재소자들의 범죄기록을 남모르게 열람하여 조사했다. 그리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뿔이 돋은 재소자들의 86%가 모두 공통적인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범죄는 바로 강간이었다.

 

교도관은 자신이 조사한 자료와 예상결론을, 인터넷을 통해 조심스럽게 발표했다.

그 반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뿔이 돋아있는 사람 중에는 그야말로 나라를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인물도 몇 명 있었다. 그 교도관이 사용하던 홈페이지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교도관 역시 아무도 모르게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간 소식은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TV뉴스와 주요 일간지는, 어떤 외압이 있었는지, 이 주장에 대해 완전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온라인에서는 뿔이 돋은 사람들에 대한 자료가 폭발하고 있었다.

 

강간범죄에 대한 적발사실은 없지만 뿔이 돋아난 사람들은,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품성으로 사랑받는 종교지도자가 그랬고, 가족을 너무 아끼는 딸바보 아빠가 그랬으며, 청순한 매력으로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여배우도 그랬다.

 

이 뿔과 파렴치한 범죄와는 아무상관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기 시작했다. 강간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에는 너무나도 훌륭하거나,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숫자의 뿔이 돋아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여 몇 몇 여자들도…….

하지만 누군가의 장난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조금 경박하기는 하지만 나름 성실하고 대학 성적도 우수하여 전도유망한, 한 청년의 머리에 뿔이 3개 돋았다. 한동안 강간 루머로 여자친구와 대단히 소원하게 되고 교우관계도 심각하게 훼손 되었지만 곧 괴소문은 가라않고, 다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회복되어 다시 즐거운 데이트를 즐기는 도중, 여자친구가 장난삼아 청년의 뿔에 새겨진 무늬를, QR코드를 찍는 어플로 사진을 찍었더니 청년이 저지른 강간사건의 일시와 장소, 범행방법 등의 사건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가 스마트폰으로 전송되었다.

강간범행이 들통 나지 않았지만 뿔이 돋은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뿔의 무늬를 찍었을 때 전송받는 보고서는 지나치게 자세했다. 심지어 피해자들의 정보까지도 고스란히 나와 있어 피해자들의 인권문제가 크게 대두되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광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뿔이 난 사람들은 정의를 앞세운 시민들에게 길거리에서 공개적으로 린치를 당하고 경찰서로 넘겨졌다. 뿔이 돋은 사회지도층 인사와 유명인들의 스캔들을 모든 매스컴에서 일제히 떠들어 댔다. 자신의 아버지가, 오빠가, 남편이, 아들이 그리고 끔찍하게도 소수의 딸과 어머니들이 파렴치한 강간범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아비규환의 소용돌이 빠졌다.

 

여기다! 뿔이 여기 숨어있어!”

 

빈 건물에 숨어있던 남자가 폭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들켰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남자는 얼마 도망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이 개X끼가 어떤 더러운 짓을 했는지 한 번 살펴보자.”

 

사람들이 남자의 뿔 무늬를 스마트 폰으로 찍었다. 전송받은 보고서를 앞 다투어 읽은 사람들은 크게 흥분하며 소리쳤다.

 

이 개X끼. 미성년자를 강간했어. 그것도 지 조카를!”

당장 경찰서로 끌고 가자!”

이런 쓰레기에게 법률이 무슨 소용이야! 그냥 여기서 죽여 버려.”

 

흥분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폭력이 시작되고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남자가 죽어버렸다.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정의가 이루어 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남자의 시체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에 탁구공 크기의 단단한 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혹에도 무늬가 양각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혹의 무늬를 스마트 폰으로 찍었다.

 

그러자 혹의 무늬를 찍은 스마트 폰으로 그들이 저지른 범죄 살인의 보고서가 일제히 전송되었다.

출처 http://jooc.kr/service/viewer.html?nn=1003681&n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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