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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story_2799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키메라★
추천 : 4
조회수 : 373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2/02/16 22:39:22
난
지금 길을 걷고 있다.
얼마나 걸어 왔는지
얼마나 걸어가야 하는 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그 것은 이 짙은 물안개가 끼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깨가 쑤신다.
오늘, 난 내 모든 것을 잃었다.
조금만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 모든 것이었던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능력이 부족해서?
아니,
'능력이 과해서' 라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할 것이다.
본래 업무량을 초과했던 나의 업무량은
그 깐깐하던 부장마저 좀 쉬엄쉬엄 하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에서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던 부하직원들의 시선이
따가운 눈총으로 바뀌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따가운 눈총 속에서 일 년을 기계처럼 일했다.
그 무엇으로라도 채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공허감,
나조차도 사라진 듯한 공허감, 바로 그 공허감 때문에.
그런 공허감과 함께 40줄을 바라보는 나의 몸뚱이는 기계처럼 녹슬어 갔고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기계처럼 버려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명예퇴직이라는 훈장이
저승길 동무로 참 든든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점 하나만큼은 녹슨 기계 따위에게 자유의지를 인정해주어
자발적인 선택을 이끌어 준 회사에게
녹슬만큼 감사하다.
든든한 훈장 나부랭이 덕분에
군장을 멘 것 마냥
어깨가 쑤신다.
조금 많이.
그 뿐이다.
난 어디로 가야한 단 말인가...
'툭!'
"아얏!"
'엇?'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풋풋한 소녀의 목소리는 짙은 물안개를 뚫고 남자의 청신경을 자극했다.
"아이... 아파라. 아저씨!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면 어떡해요!"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넘어져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유...유미... 유미니?"
떨리는 입술 사이로 남자는 기어코 그 한 마디를 내 뱉었다.
"네? 유미요??"
소녀는 이마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절레절레, 남자는 두 눈을 끔뻑이며 다시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만 보고 있을 거예요??"
"아, 미안하다... 괜찮니?"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그 소녀를 일으켜주었다.
소녀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나도 안 괜찮거든요?"
소녀는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바로 옆에 떨어뜨렸던 책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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