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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꿈인 동생이 쓴 글 입니다. 읽어보세요~
게시물ID : humorstory_2549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블링블링때때
추천 : 1
조회수 : 68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10/04 12:11:44
인간사 격노, 색정, 식욕, 나태, 질투, 탐욕, 오만.
그 중 나태에 관한 이야기.
스물세 살 나이를 먹은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곧 넓어 보일 거라던 반지하 방은 여전히 좁아보이기만 하고 덩달아 속도 좁아졌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깬 정신으로 열중하기만 하면 그깟 고시 정도는 충분히 합격할 테니 지금 침상에서 잠시 뒹굴 거린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침상은 몸을 조금만 옆으로 기울이면 떨어질 만큼 작았지만 내 포부는 당당하고 거대했다. 벌써 새벽 1시, 생각해보니 나른한 공기가 허리를 무겁게 짓눌러서 도저히 일어날 기분이 아니었다. 이런 상태로는 시간을 투자해 책을 본다 해도 효과가 반감될 것이다. 자고 일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내일하는 편이 낫다.
 쳐다보고 있다. 새벽 깜깜한 하늘이 넘어드는 창문에서 쳐다보고 있다. 문득 베개에 기댄 목을 들었더니 눈에 잡힌 건 반 지하 창살 사이로 날 쳐다보는 두 개의 안구였다.
 “누구야!”
 큰 소리에 놀라 달아날까 싶었지만 눈동자조차 흔들리지 않은 채 계속해서 날 쳐다보았다. 나는 짐짓 과장된 몸동작과 함께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나 어둠 속에서 눈을 번득이며 재수 없게 바라보는 놈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과 10초 남짓한 사이에 도망쳐버렸다. 졸려죽겠는데 귀찮게 누구냐고. 욕설을 중얼거리는 것도 잠시, 몽롱한 뇌를 데리고 다시 방을 들어가 불을 끄고 누웠다. 잠이 쏟아진다. 달려 나간 용기에 감탄하며 히죽대다가 잠들었다.
 귀찮다. 일어나보니 벌써 오후 3시. 팔 다리 구분 없이 무거워서 컵라면을 가지러 갈 힘도 없었다. 조금만 더 누워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눈을 떴을 땐 시침이 9시를 가리켰다. 너무 많이 잤네. 의자에 앉았지만 어지럽혀진 책상은 마음도 어지럽혔다. 오늘은 아닌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데. 좌우로 우드득 우드득 목을 꺾어보았지만 글자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읽어도 읽어도 눈에 들어오는 잉크는 겨우 책 구석의 쪽수였다. 7쪽. 500쪽 중에 겨우 7쪽. 완전히 깬 상태로 하면 단숨에 50쪽까진 단숨에 읽을 거야. 나중에 하는 게 낫겠다. 그건 그렇고 배가 너무 고프니까 컵라면을 먹어야겠다.
 그렇게 삐거덕 일어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은 창문을 향했고 그곳엔 날 쳐다보고 있는 빛을 잃은 눈동자 둘. 어두워서인지 흰자와 검은자만 보이는 그 눈은 괴기스러워보였다.
 “누구야! 꺼지지 못해?”
 멀뚱멀뚱. 꺼풀 깜박임조차 느린 창살 사이의 두 눈. 오늘은 잡고 만다. 무섭지 않아. 한 끼도 안 먹은 몸치곤 잘 움직여주었다. 하지만 모골이 송연해지는 징그러운 눈알을 가진 놈은 이번에도 달아난 후였다. 미친 새끼. 잘도 도망치네. 방으로 걸어 들어가며 수차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분이 영 아니야. 재수가 없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내일이다. 정말 내일은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열중하겠어. 어차피 이루어질 일이 딱 하루 미뤄졌을 뿐이야. 이런 저런 다짐과 함께 잠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은 의외로 일찍 일어났다. 오전 11시 45분이라고는 해도 오전. 줄어든 잠에 놀란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지만 책을 펴들고 책상에 앞에 앉았다. 필기도 하고 암기 내용을 곱씹으면서 시험에 나올만한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이거다. 별 거 아니잖아. 내가 제대로 하기만 하면 못 할게 없다고. 배가 고프지만 집중력이 우선이었다. 자기만족감에 미소 지으며 시계를 봤을 땐 고작 40분이 지나있었다.
 “어, 씨발! 이거 뭐야?”
 시험 날짜는 어제였다. 야속하게도 시계 옆 달력에 표시된 빨간 동그라미는 어제였다. 몇 개월을 기다린 시험이 어제였다고?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렀단 말이야? 말도 안 돼. 안 돼! 흥분한 심장은 뜨건 피와 허탈 섞인 분노를 온 몸에 퍼다 날랐다. 온 몸에 기운이 사라졌다. 의욕상실. 이건 제대로 의욕상실이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그저 책상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귀찮았다. 다음에 돌아오는 시험을 보면 된다. 진정하자. 이미 지나가버렸으니까 할 수 없어. 양껏 늘어진 몸을 누이자 어제 덜 잔 잠이 몰려들었다.
 눈을 떴을 땐 아까의 절망과 함께 어둠이 드리웠다. 벌써 밤인가. 그 순간은 창살 사이로 미친놈의 눈알이 날 쳐다보는 중이었다. 할 짓 없는 새끼. 귀찮아, 마음대로 해라. 나는 몸을 돌려 벽을 바라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내일은 맑은 정신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겠다. 지금은 모든 게 귀찮았다. 고시 준비도, 밥을 먹는 것도, 의식을 유지하는 일도.
 눈을 떴을 때, 나는 창살 사이로 사는 게 귀찮아서 죽어버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잡으러 뛰쳐나오지도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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