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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과(1)]
게시물ID : readers_255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니케쿠쿠
추천 : 3
조회수 : 3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6/23 00: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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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바깥은 어떻게 생겼을까? 해묵은 질문에 듀크 박사는 항상 사과를 하나 그려 보이곤 했다. 동그란 과일 하면 누구나 먼저 떠올리게 마련인 사과는 듀크 박사가 좋아하는 과일이기도 했다.


“자, 봐. 동그라미에 곡선 하나, 둘. 이게 무슨 과일이지?”

“사과요.”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학생들에게 듀크 박사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옆에서 수업을 참관하던 레일츠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사과지. 여러분, 사과에 대해서 아는 만큼 말해 볼까?”

“빨갛습니다. 동그랗고요.”

“그리고 맛있죠. 전 싫어하지만요.”


장난이 반, 그리고 진지한 대답이 반이었다. 듀크 박사는 신 맛과 단 맛이 난다느니, 사과향이 난다느니, 식물이라느니 하는 대답들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학생들에게서 더 이상 참신한 대답이 나오지 않게 된 순간 입을 열었다.


“좋아. 많은 대답들이 나왔네. 쓸모없어 보이는 대답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그것들도 다 사과에 대한 정보임에는 틀림없지.”


듀크 박사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진 것을 느낀 학생들은 긴장하며 주의를 기울였다. 듀크 박사의 목소리가 낮아지고 억양이 강해질 때 말하는 내용들은 보통 시험에 나온다는 것을 학생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었다. 박사는 긴장감이 감도는 교실을 돌아보며 설명했다.


“사과는…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에 속하는 식물인 사과나무의 열매라네.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이 있으며 수확 시기는 종에 따라 8월 하순부터 10월 하순 이후까지고. 알칼리성 식품이며 칼로리가 적고 식이섬유, 칼륨, 펙틴, 페놀산, 케세틴, 유기산, 비타민C 등이 함유되어 있는 좋은 식품이기도 하지.”


듀크 박사의 설명이 이쯤에 이르자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의심스런 눈초리를 띠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듀크 박사가 강의 중인 과목은 ‘우주와 정보’라는 교양 과목이기 때문이었다. 오 분 전, 우주의 바깥에 대해 질문했던 학생은 이미 자신이 질문을 했다는 사실도 까먹은 것 같았다.

그러나 듀크 박사는 학생들의 태도에 아랑곳 않고 강의를 이어나갔다. 참관중인 레일츠 역시 몇 번이고 들었던 듀크 박사의 사과 강의에 집중했다.


“그러나 내가 말한 것들이 사과에 대한 모든 정보일까? 물론 아니겠지. 사과에 관한 박사 학위가 있을 것이고, 그걸 쓴 사람은 나보다도 사과에 관해 훨씬 잘 알 거야. 물론 그 작자도 사과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자, 그럼 여기서 보너스 점수를 주지. 대답해 볼 사람?”


몇몇 학생이 손을 들었다. 듀크 박사는 질문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우선 대답하겠다는 학생들을 미리 추려내는 강의 방식으로도 유명했다. 덕분에 듀크 박사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비교적 학구열과 호기심이 강한 편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지 않고서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듀크 박사에게서 학점을 따기 힘들기도 했다.


“좋아. 자네들. 먼저 손 든 세 명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지. 이 질문에 만족스럽게 대답하면 과제 점수를 무조건 만점 처리 해 주겠네.”


듀크 박사의 말에 손을 들었다 탈락한 학생들은 물론이고 손을 들지 않은 학생들까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듀크 박사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답을 맞히기 매우 어렵거나,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선택 받은 세 명의 학생들이 머리를 핑핑 굴리는 것을 보며 듀크 박사는 씩 웃었다.


“사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인간의 뇌 안에 저장할 수 있을까? 한 번 주장해 보게.”



-



“부분 점수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레일츠는 방울토마토를 포크로 찍으며 말했다. 그러나 듀크 박사는 우물거리면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 프라이드가 담긴 질문이야. 만족스럽게 답을 내지 못한다면 점수를 아예 줄 수 없지.”

“하지만 박사님조차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잖습니까?”

“지금은 그렇지. 그럴 거야.”

“여전히 짓궂으시군요.”


레일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세 명의 학생들은 충분히 노력했고, 노력에 상응하는 것을 얻어갔다고 말할 수 있었다. 듀크 박사는 그들에게 앞으로의 한 학기동안 최우선 질문 응답 권한을 수여했고, 듀크 박사의 첫 수업부터 눈에 들었다는 것은 A+학점을 따 놓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듀크 박사의 매 첫 수업들을 모두 참관했던 레일츠는 그 중 한 명의 답변을 되새기며 토마토를 씹었다. 나머지 두 학생이 ‘저장할 수 있다’와 ‘없다’로 십 분씩 장황한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은 세 번째 학생은, 자신의 기회가 오자 주장 대신 박사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인간의 정의는 현재의 인간에 한정된 것입니까?”


그리고 듀크 박사는 그 학생에게 빙긋 웃어 보이며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처음 있는 상황이었다.


“우주의 바깥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질문으로 돌아가 봄세. 우리는 사과의 겉과 속을 알고, 사과에 대한 정보들을 알고 있고, 아마도 사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 수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네. 그러나 사과가 아니라 지구라면 어떨까? 지구의 겉과 속을 다 알고 있나? 지구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과연 인간의 뇌 속에 담을 수 있겠는가?”


학생들은 침묵했다. 레일츠는 억양과 말의 내용들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는 듀크 박사의 언변에 매번 감탄했다. 듀크 박사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알려주는 교육 기술보다, 질문을 던져주며 지식욕을 자극하는 기술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그럼 한 단계 더. 태양계의 겉과 속을 다 알고 있나? 그 정보들을 다 담을 수 있을까? 아니, 평생에 걸쳐서라도 그 정보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한 번씩 읽어 볼 수나 있을까?”

“…….”

“자, 우주의 바깥이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는 이해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네. 그것은 단순히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야. 우리의 뇌 용량은 지구를 담기에도 매우 벅차.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이곳저곳을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지만, 사과의 껍질을 보았다고 그 사과를 안다고 할 수 없듯이 그 노력들은 우리에게 아주 미미한 정보밖에 주지 못한다네.”


약간의 뜸을 들이며 듀크 박사는 학생들이 압도된 광경을 즐겼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후, 헛기침과 함께 듀크 박사는 다시 높은 톤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 수업은 사과 겉핥기식의 수업이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여러분은 그런 강의를 ‘거저먹는’ 강의라고들 하지? 그럼 다음 시간부터는 이왕 거저먹는 거, 좀 맛있게 먹어 보세. 자, 첫 수업 치고 말이 길었군. 슬슬 하품들을 하는데, 좋아. 이만 수업 마치도록 하겠네.”

레일츠의 경험상 첫 수업에서 박수를 받는 교수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러나 듀크 박사는 매번 첫 수업마다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교수였다. 심지어 전공 수업에서도.


“우주의 바깥이라….”

“다 드셨으면 퇴식구로 가시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요.”

“…그러지.”



-



레일츠는 사과를 베어 물었다. 분명 그 시절의 듀크 박사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나사(NASA) 소속이면서도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드나들며 강의도, 연구도, 돈벌이도 하던 사람이었고, 그러면서도 어느 한 분야에서조차 위인으로서의 업적을 안 남긴 곳이 없었다. 태어난 집안부터 외모, 성격, 두뇌 등등, 그냥 인생 전체가 완벽 이상인 사람이었다.

인간의 굴레이자 구속구인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활동 반경을 넓힐 선구자로서 듀크 박사는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사람이라고 할 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싫은 건 싫은 것이었다. 그래서 레일츠는 끝까지 감성적으로 듀크 박사를 만류했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 마세요. 인간은 인간다워야 합니다. 그 어떤 인간도 인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릴 필요는 없어요.”

“수백 수천 번의 생각을 거쳤어. …결정을 내렸음에도 다시 수백 수천 번을 재고했지. 그리고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레일츠. 인간은 무엇일까?”


레일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몇 번이고 듀크 박사를 설득했다. 그러나 박사는 마음 아파하는 인간적 면모와 함께, 이질적인 면모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레일츠는 그 모습에서 위화감의 극치를 느꼈다.


“인간은…인간은….”

“동물로서의 욕구만 있는 상태에서는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충분히 먹고, 자고, 번식한 인간은 동물의 욕구가 해결되고 나서 만물의 영장으로 스스로를 칭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그러나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야. 인간은 동물로서의 구속구를, 육체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결코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없어.”


레일츠는 듀크 박사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그 손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정도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 온기의 역설이 듀크를 더욱 비인간적으로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레일츠는 듀크의 눈을 보며 자신의 눈물을 닦았다.


“한동안 나는 죽음으로서 인간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네. 육체가 있는 불완전한 인간은 육체를 벗어남으로서 비로소 정신체만, 그러니까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존재 가치만을 남긴 것이 되는 거야. 그러나 죽음은 끝일뿐이지 또 다른 시작이 될 순 없네.”

“그래서 육체를 버리고 고철로 들어가시겠다는 겁니까? 인간적인 면모를 버리고 감성 따위는 없는 컴퓨터가 되겠다는 겁니까?”

“인간적이 아니라 동물적인 것이야.”


듀크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일츠는 문득 때려서라도 듀크 박사를 말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것은 인간성에 가까운 것이었을까, 아니면 동물성에 가까운 것이었을까.


“너도 학자의 길을 걸었으니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성은 곧 호기심이란 것을….”

“나는 이해해요. 지금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버지라구요!”

“아니, 넌 이해하고 있지 않단다. 상대의 이해를 바라는 것 역시 동물적인 것이기에…. 합의, 몰이해, 동맹, 적대…. 수많은 감정들…. 그것들은 모두 생존을 위한 일차적 생각들, 감각들의 연장선일 뿐이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은 미지에의 지식욕. 호기심….”

“아버지….”

“더 지체할 수가 없구나. 이젠 정말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더 늦기 전에…. 아니, 한시라도 빨리….”


레일츠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아버지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단 말인가? 그리고 깨달았다. 인간을 포기하고 자식과의 영원한 이별을 고하며 마음 아파하는 듀크 박사와 공존하는, 이상하리만큼 미지의 것에 집착하는 호기심의 집합체로서의 이질적인 듀크 박사. 그것 역시 인간성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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