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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의변靖康之變, 양의 생가죽을 뒤집어 쓴 견양례 牽羊禮
게시물ID : history_255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려
추천 : 5
조회수 : 28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3/01 19:39:45
 
거란 요나라는 물러났으나
여진 금나라에게 화북까지 상실했던
송나라 정강의변靖康之變..
 
말로만 글로만 보다가 이렇게 재현 화면으로 보니 정말 처참하네요.
휘종과 흠종은 견양례를 한 후 북쪽으로 끌려갔고
 
(송 휘종과 흠종이 함경도일대에 왔다는 전설은
후대 조선에서 와전된 이야기라고 합니다.
중화 황제가 머무른 곳이라는 식의 우리땅에 땡겨오기식 구전..;;
오국성은 북만주에 있죠;;)
 
견양례牽羊禮.,..
제물로 바쳐진 양의 생가죽을 맨몸에 뒤집어쓰고 엉금엉금 기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맨몸에 양가죽을 뒤집어썼던 황실의 부인들과 공주들을 포함한
12,000여명의 여성들도 세의원(洗衣院, 옷을 씻는곳)으로 끌려가 노리개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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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일을 당하고도... 남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송나라는 이어져서 중흥합니다.
 
초나라(楚)와 여러 월족(百越)들,.. 남만南蠻 오랑캐의 땅이었던 장강유역이
5호16국시대, 중원왕조가 황하유역 화북을 잃고 남천하면서 개발되기 시작했고,
수나라의 통일과 대운하 건설로 적극적으로 개발되더니,
송나라 때는 강남의 경제력이 화북을 능가하고 인구도 폭발했죠.
 
외치로 보면 굴욕이 많았으나 경제적 번영은 엄청났던 송나라,
 
거란, 탕구트, 여진족들에 평화댓가로 주는 어마어마한 조공도
송나라에서는 개의치 않을 정도로 미미한 양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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