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상북도의 한적한 시골동네에서 자랐는데 우리집 근처에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폐가가 하나 있었다 원인모를 질병으로 소꿉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온가족이 이사를 가버렸고 그뒤로 폐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폐가는 한달도 되지않아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곧잘 비밀스런 장난이 행해지곤 했다 동네 아이들은 산에서 개구리를 잡아와서 흠씬 괴롭힌 후에 그시체를 버려두고 가기도 했고 나이든 형들은 아버지의 술을 훔쳐와서 몰래 마시기도 했고 담배도 피곤했다. 하루는 고양이의 시체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아마도 쥐약을 먹고 죽은듯 했다 아무튼 나의 기억으로는 그집에선 언제나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했고 구더기가 들끓었다.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동네 아이들이 발길을 끊은 이후에도 나는 그집을 곧잘 들락거렸다. 그집에 있다보면 소꿉친구와 유난히 나에게 잘해주셨던 친구의 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평온한 기분이 들었고 그러한 기분이 자꾸만 나를 그집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초등학교가 파하면 일주일에 두세번은 그집에 가서 구더기를 가지고 놀았다. 처음에는 나뭇가지로 쿡쿡 찔러가면서 놀다가 나중에는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물컹거리는 느낌을 즐겼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 어떠한 저항의 도구도 없이 맨살로 대응하고 있는 구더기를 만지고 있자면 왠지 내가 엄청나게 강한 존재로 인식되었고 그러한 우월감이 약간의 중독성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 책상에 급식우유를 쏟았다는 이유로 싸움이 붙었다가 흠씬 두들겨 맞았다. 작은 상처들과 지저분하게 남은 코피자국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왠지 눈물이 나고 분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폐가가 떠올랐고 구더기들과 놀고 있으면 마음이 좀 안정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폐가로 향하는 작은 샛길로 불길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폐가에 도착하자 수많은 구더기들이 나를 반기는듯 온몸을 비틀어대고 있었다 "그래 이 착한 것들...." 나는 그중 가장 토실토실하게 살찐애를 하나 잡아서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만지면 만질수록 구더기는 온몸으로 비폭력 무저항을 실천하며 나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오늘 싸웠던 친구 얼굴이 생각났다 정말 화나는 녀석이었다 자기 자리에 우유좀 쏟았다고 갑자기 쌍욕을 하면서 주먹을 날리다니.. 난데없이 공격당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녀석이었는데..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들며 손에 힘이 들어가버렸다
"찌익!!!!!!!!!!!!" 주위가 너무 적막해서일까?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는 듯 예상외로 큰소리를 내며 구더기는 사방으로 온몸의 체액을 뿜어내었고 분노로 이를 갈고 있던 나의 입속으로도 체액의 일부가 튀어버렸다.
"윽!! 카악!! 퉷퉷!!!!" 무의식적으로 침을 뱉어내며 내몸은 최선을 대해 이물질에 대한 방어기재를 작동했지만 입안에 남아있는 찝질한 잔맛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음 뭐랄까..지린내처럼 찝질하기도 하고..장미향 비슷한냄새가...' 나는 본능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구더기 체액의 시식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고 있었다. 희안하게도 진짜로 꽃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나는 이상하게도 갑자기 아늑하면서도 우울한 기분이 들어 폐가를 뛰쳐나왔고 한동안 그 근처로 가지 않게 되어버렸던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7살때 집을 나가셨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탓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의 기괴한 이중인격이 그 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이면 너무나도 자상한 미소로 어머니와 나를 대하다가도 저녁만되면 전혀다른 사람이 되어 폭력을 휘두르곤 했던 것이다. 마치 흔한 공포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머리속에 두개의 인격이 공존하는 듯 했다. 밤이 되어 미친듯이 날뛰는 아버지를 피해 쌀쌀한 날씨에도 이웃집 외양간 옆에 있는 곡물창고에 숨어서 어머니와 밤을 지샜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떠나는날 가마솥에 감자를 가득 해놓고 가셨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배불리 먹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마솥을 열어보곤 너무나 기쁜마음에 허겁지겁 감자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는데 어린마음에도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왠지모를 설움에 목이메어 눈물이 났다. 감자와 콧물과 눈물이 뒤섞여 무슨맛인지도 모를 음식을 한없이 입으로 꾸역꾸역 가져가던 그모습이 십수년이 지난 아직도 뇌리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내가 다시 그 폐가를 찾게 된것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즈음 이었다. 한동안 괜찮다 싶던 아버지의 발광을 피해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폐가로 가는 오솔길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구더기를 만지고 있으면 마음이 좀 나아질지도 몰라..' 땅거미가 엄습하고 있는 여름하늘 아래로 덩그러니 버려져있는 작은 시골집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푸근한 공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우웩!" 막상 들어간 어스름한 폐가안에서는 헛구역질이 날정도로 썩은내가 진동을 하였다. 어디서 먹을걸 찾아내는지 구더기는 2년전보다 더욱 번식하고 있었다.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너무나 평화로울정도로 바닥을 뒹굴거리고 있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어쩌면 구더기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생각을 하다보니 왠지 화가 치밀어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콱,콱,콱,콱,.."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는 구더기들을 마구 밟고있었다. 순식간에 100여마리의 구더기가 죽어나갔고 방안은 구더기들의 체액과 소리없는 신음으로 가득차는 듯 했다. 끈적끈적한 바닥을 보고 있자니 왠지 입안에 침이 고였다.
"꼬로로록~" 난데없이 내뱃속에서는 지금 상황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이성은 바닥에 널부러진 구더기들의 시체를 보며 너무나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육체는 그들을 원하고 있는듯 했다. 다른 동료들의 시체옆에서 살겠다고 꿈틀대는 구더기들은 어쩌면 여자의 속살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머니가 버리고 간 감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마치 사냥감을 쫓는 들짐승인냥 구더기에게로 달려가 손에 집히는대로 입안에 구더기를 쳐넣기 시작했다.
"우적, 우적, 우적" 고약한 지린내를 뒤로하고 밥알보다 쫄깃쫄깃한 식감과 은밀한 육(肉)비린내가 입안을 가득채우더니 난데없이 풍겨오는 아찔한 장미향이 나의 손을 멈출수 없게 만들었다. 나의 눈과 코에서는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체액들이 흘러나왔고 그것들이 구더기들의 체액과 뒤섞이고 나의 침과 뒤섞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카오스적인 중독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 듯 했다. "우적, 우적, 우적" 구더기는 먹어도 먹어도 어디선가 끝이 없이 흘러 나오고 있었고 나는 아주 탐욕스럽게 그것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집이었다. '꿈이었을까?' 하지만 입에서 풍기는 은근한 비린내와 이사이에 거북하게 끼어있는 이물질은 그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좀있다가 방문이 열리며 아버지는 아주 자상하신 얼굴로 밥상을 차려오셨고 나도 전에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창원에 있는 공장에 취직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좋지 않았다. 아내는 가끔 미치광이처럼 돌변하여 폭력을 일삼는 나를 항상 혐오스럽게 바라보았고 그럴때마다 나는 몇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리고 지금..... 저녁 어스름이 도시를 뒤덮고 나의 작은 집은 지금 무섭도록 고요한 정적에 사로잡혀 있다. 집에는 나와 11살난 아이 그리고 내 아내가 있다. 아내가 자고 있는 작은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3일전 도망가려고 짐을 싸고 있는 아내의 뒷통수를 야구방망이로 때렸기 때문이다. 몇번을 내리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머리에서 흘러나온피가 온 방바닥을 흥건히 적셨던 것으로 짐작컨대 아마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킁킁......?' 익숙한 냄새가 나의 코를 간지럽힌다. 아득한 장미향이 온집안에 퍼져있는 듯 하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아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겨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본다. 심한 악취와 함께 온 방안을 뒤덮고 있는 순백색의 구더기떼가 나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입에는 흥건히 침이 고이고 위장은 괴성을 내며 요동친다.
우적!우적!우적!우적!우적! 어느샌가 나는 아내의 몸과 뒤섞여 서로 맨살을 부비대고 있는 구더기를 미친듯이 흡입하고 있다. 먹다보니 아내와 구더기가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썩어서 분리된 아내의 팔한짝을 들고 묘한 장미향을 음미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먹어치우고 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내가 들어온 방문쪽을 바라본다.
아이.... 내 아이가 그곳에 서있다.
나도 그곳에 서있었다.
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먹히던날.....
어머니의 싸구려 장미향 화장품냄새와 함께 내머리속의 기억을 송두리째 날려버린날.....
나는 나의 눈물과 체액이 뒤범벅된 이세상 최악의 음식을 먹는데 더욱 더 열중한다.
마치 그날의 기억을 모조리 먹어서 없애버리기라도 하듯.
; 몇달전에 혼자 써본 소설인데 요즘 공게에서 소설을 많이 보신다고 하여 한번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