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더듬으며 몇년전까지 끄적거리다 방치해 둔 블로그를 뒤적여 관련 글을 하나 찾았네요.
아래는 2007년 경향게임스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와 기고했던 글입니다.
내 인생 최고의 게임은 ‘울티마 온라인(Ultima Online)’이다. 1998년 늦가을 즈음, 울티마 온라인의 첫 번째 확장팩 ‘두 번째 시대(The Second Age) ’를 구입한 이후 마치 장자(莊子)의 호접몽처럼, 내가 퇴근하여 트린식 여관에 접속을 하는 것인지 브리튼에서
싸우던 내가 출근을 위해 잠시 지친 칼을 내려놓고 현실에 들어오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신없이 몰입했다.
울티마 온라인은 나에게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었다. 거대한 용에게 칼을 휘두르는 만용을 부릴 수 있게 해주고, 목숨을 걸고 등을 맞대 적들에게 맞설 수 있는 끈끈한 동지를 만들어 주었다. 거대한 성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낼 수 있는 쾌적함도, 클릭 몇 번만으로도 생산의 즐거움과 노동의 성취감 또한 제공하였다. 울티마 온라인은 한마디로 ‘중세 판타지 세계로 돌아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임이었다.
이후 수많은 MMORPG가 등장했지만, 울티마 온라인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에버퀘스트(Everquest)는 어려운 퀘스트를 해결하는 노라쓰의 저명한 모험가가 되기를 권유한다. 리니지(Lineage)는 언젠가는 당신도 성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며 꼬드긴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는 동료들과 힘을 모으면 불타는 군단을 물리치는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부추긴다.
그러나 내가 울티마 온라인을 하며 받은 느낌은 ‘아바타(Avatar), 너 자신이 원하는 데로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그 느낌을 받은 뒤, 아침마다 넥타이를 고르고 머리에 풀칠을 해야 하는 직업을 주저 없이 그만두고 게임 기획자로 이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꿈꾸듯 행복했던 울티마 온라인과의 4년 8개월의 시간을 떠올리며 그만큼 뜨겁고, 즐겁고, 불타올랐던 게임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칼과 방패를 들고 거대한 용에 맞서 한 발자국 내딛던 용기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