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일본의 사과를 수용한 33명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존중해야 합니다.
게시물ID : history_256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egs47
추천 : 0/12
조회수 : 1158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6/03/06 23:06:18
90년대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
특정 운동단체가 반대하여 오직 33명의 할머니들만이 이 기금과 일본총리의 사죄편지를 수령했다고 합니다.

( 관련기사 : 경향신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33&aid=0000022241
2000년대 들어 국민기금을 수령한 일부 할머니들과 위안부 피해자 심미자 할머니(2008년 사망)를 비롯한 33명이 ‘무궁화할머니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2004년 성명서를 내고 “ㅇㅇㅇ은 형편이 어려운 7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매도했다” )

이것은 일본 정부가 출자한 자금을 바탕으로 재단을 세우고, 재단에서 국민모금으로
할머니들에게 속죄금 + 총리의 사죄편지 서한을 보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그리고 일부 특정한 운동가들은 이것을 보고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책임 지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이다 등등 평가 절하 하면서 매도했지요?

실상, 이것은 책임을 지기 위한 행동입니다. '법적 책임'이 '한일기본조약'으로 봉쇄된 상태에서

'한일기본조약 폐지' 없이 일본 의회나 내각이 입법을 통해 법적 책임을 진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자민당내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성 기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물론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자민당 의원들도 많았지만요. 암튼,

그런 법리적 정치적 봉쇄 속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언론인, 학자, 정치가들이 
중심이 되어 재단을 만들고 기금을 모으고 총리의 사죄편지를
더하여 한국을 비롯한 대만, 네덜란드, 필리핀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것을 전달받은 할머니들은 우리나라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로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고 느꼈을까요?
직접 한번 얘기를 들어봅시다.


http://www.awf.or.jp/k3/oralhistory-05.html

1997년 10월29일이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저희들이 먼저 가서 다다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오셨습니다. 대단히 곱게 차려 입으시구요. 웃음기 없이, 약간 경직된 얼굴을 하고서는, 눈을 내려 깔고, 이 쪽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얼굴을 안 보면서 일이 진행되었는데, 절차에 대한 설명 등 이것저것 하고 나서 돈을 전달하기 전에 총리의 사죄의 서한을 먼저 읽었습니다. 총리의 서한을 읽기 시작하니, 그 때부터 울기 시작하시는데, 이사장의 편지 차례가 되니까, 이사장의 편지 쪽이 길었는데, 조금 더 감정이랄까 마음이 깃들어 있었어요. 그러자, 그 한국인 위안부였던 여성은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정말 '악'하고 소리치는 듯한, 몸의 저 깊은 곳에서 짜내는 목소리로 우셨습니다. 통곡이라고 하나요.

그래서 도중에 저도 편지를 계속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어요. 이쪽도 충격이 커서요. 다다미 방에서 좌식탁자를 두고 마주 보고 앉아 있었는데, 도중에 제가 건너편으로 가서, 그녀를 안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하고 함께 울었습니다. 저도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꼭 안고서 다만 '미안합니다'라고 울면서 계속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엉엉 우시면서, "당신은 아무 죄도 없어요."라고 말하시더군요. "먼 데까지 일부러 와주셔서 고마워요."라는 취지의 말을 하시고는, 그래도 계속 흥분상태로 울고 있어서 한동안 서로 껴안은 채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은 저한테 죄가 없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그래도 저는 일본인으로서 역시 죄가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신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조금씩 진정이 되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남은 문장을 읽었는데, 그랬더니 굳어진 얼굴이 부드러운 얼굴로 바뀌어 있는 거에요. 뭔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바뀌었죠. 그리고 제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보며 그 때부터 조금씩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시모무라 미쓰코(下村満子) 아시아여성기금 이사의 회상으로부터-


총리의 사죄편지와 일본국민의 속죄금을 건네받으면서 펑 펑 우셨다는 저 할머니는
과연 이 사과를 그리고 국민기금을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사과'로 혹은 '진심이 없는 사과'로 받아들였을까요?
아니면 마음의 한을 조금이라도 푸셨을까요..


당시 일본 국민들은 기금을 모금하면서 보내온 편지와 총리의 사죄편지 내용도
할머니들에거 전해졌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내용들이 있을까요?


http://www.awf.or.jp/pdf/0211.pdf

jpnpri-letter.png



http://www.awf.or.jp/k3/donators.html



인간으로서의 사죄기부자로부터의 메시지

-논의가 있어도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조금이나마 협력합니다.
-위안부였기 때문에 불행한 삶을 보내신 분들에게 부디 정중한 사과와 함께, 앞으로의 행복을 빌어 드리고 싶습니다. 충분한 도움은 못 드리지만 하루 2시간 정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자원봉사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조속한 보상을 마음으로부터 기원합니다.
-이러한 아시아여성기금이 생기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조금씩이라도. 할 수 있는 일부터

-전쟁 당시, 저는 어린아이였습니다만, 나중에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알고, 희생이 되신 여성들의 억울함을 헤아리면서, 이러한 무모한 시책을 실행한 일본군대에 대한 분노로 몸이 떨려왔습니다. 이 죄의 보상은,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구체적 행동의 일환으로 이 기금의 의의를 인정합니다.
-상대국의 입장, 일본정부의 이유도 있겠지만, ODA(정부개발원조)보다도 우선적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안부였던 분들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활용해 주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이것으로 일본정부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규명 등, 각종 노력을 계속해 나가도록 요청해 주십시오.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로부터

-이 나라의 국민인 이상, 이 나라의 과거의 잘못, 역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종군위안부로서 희생되신 여러분께 일본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마음으로부터 사죄 드립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그 전쟁을 모르는 27세의 젊은이로부터.
- '민중의 전쟁책임'을 자각하며 참여합니다.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종군위안부'로서 강요 당했던 여러분들에게, 저는 깊이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 이 분들에 대한 보상은 '국가'가 '국가'로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노령이 되신 분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적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는 원칙론을 거두어 들이겠습니다. 일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상을 위해 사용해 주시길 바라며 송금합니다. 이 분들에 대한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절실하게 생각합니다.

군인연금 일부를 기부

-과거 병사였던 사람으로, 군인 연금의 일부를 기부합니다. 그러나 한마디 말씀 드리자면, 전쟁터의 심리는 현장에 있던 사람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것. 가볍게 보지 말아 주십시오.

전후50년, 새로운 출발점에

-국가의 사죄와 보상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를 향한 과정으로의 민간기금에 찬성합니다. 얼마 안되지만 가족 4명의 모금입니다. 활용해 주십시오. 제 아버지는 지금 77세로, 만주(満州), 오키나와(沖縄)에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기금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아시아 각국과의 좋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아주 조금이지만 협력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참혹한 일을 당한 여성은 오늘날도 많이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전쟁책임의 처리뿐만 아니라, 지금도 어떤 무책임한 일본인 남성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아버지가 없는 아시아 국가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구원의 손길을 부탁 드립니다.

 

2007년 기금 홈페이지로부터
 
아시아여성기금의 뉴스를 보고, 처음에는 먼 일처럼 생각했지만,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여성을 위해 열심히 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에게 있어 대단히 마음 든든한 활동이므로 계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양한 프로젝트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神奈川県川崎市)∙여성)

위안부였던 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 아픔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죄와 보상의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도쿄도 스기나미구(東京都杉並区)∙여성)

전쟁에 의해 얼마나 많은 여성이 상처 입고, 남자들의 폭력으로 심신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평화'의 중요성, 소중함,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 남성의 폭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도쿄도 스기나미구(東京都杉並区) ∙여성)

저도 소년시대 전쟁을 경험했습니다만, 당시를 되돌아보면서, 적지만 기부를 합니다. 부디, '위안부'였던 분들이 즐거운 여생을 보내실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지바현 나라시노시(千葉県習志野市)∙남성)

'위안부'였던 분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사이타마현 우라와시(埼玉県浦和市)∙여성)

두 번 째입니다. 일본국민으로부터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이런 점이 이해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쿄토부 나가오카쿄시(京都府長岡京市)∙남성)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드디어 취직이 돼서 협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쿄도 시부야구(東京都渋谷区)∙남성)

침략전쟁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죽음과 고통, 슬픔을 가져온 것을, 우리 일본인은 직시하고 후세에 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쿄도 나카노구(東京都中野区)∙남성)

적지만 희망하시는 '위안부'였던 여성분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전달되기를 기원합니다. (2001년 2월19일 도쿄도 스기나미구(東京都杉並区)∙여성)

힘든 시대를 헤쳐 오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약소하지만, 제 마음을 받아주시면 기쁘습니다. (지바현 마쓰도시(千葉県松戸市)∙남성)

'기금뉴스'를 받았습니다. 반성과 보상의 사업은 힘든 일이라 사료됩니다. 저도 중국에 2년간 종군했습니다만, 다행히 귀국을 할 수 있어서 지금 80살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약소하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이타마현 오가와쵸(埼玉県小川町)∙남성)

일본인이 '위안부'였던 분들에게 저지른 일은 어떤 죄보다도 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녀들에게 평생 가도 지울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주었으며, 전쟁의 피해자가 되어 비참한 일을 당한 여성들. 그 사실을 지금 살아 있는 우리들은 더욱 더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제대로 전하고 바른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마음의 무거운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적으나마 보상, 사죄와 사죄금을 전해 주십시오. 신속하며 오랫동안 지속적인 활동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홍보를 더욱 확대해 모금액∙기한도 늘려 주십시오.(도쿠시마현 고마쓰시마시(徳島県小松島市)∙여성)

아시아여성기금의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번영 속에서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사상이 확산되고 있지만, 인간의 존엄, 평화, 행복과 삶에 대해 서로가 깊이 생각하고, 과거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도 21세기가 진정으로 사람들의 세기로서 아시아 전체가 공생하며, 협력해야 되는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안되지만 세라초(世羅町)관청 직원들의 모금을 보내드리오니, 보탬이 되면 기쁘겠습니다. (히로시마현 세라쵸(広島県世羅町)∙관청)

정말 적은 금액이지만 송금합니다. 저는 4급 장애인으로 병역의 경험은 없습니다만, 전쟁 당시의 일은 잘 기억하고 있으며, 마음 아파하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오사카부 가도마시(大阪府門真市)∙남성)

수고 많으십니다. 지방에서 조금씩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시(静岡県掛川市)∙남성)

입원 때문에 송금이 늦어졌습니다. (오사카부 히라카타시(大阪府枚方市)∙남성)

기본적으로는 일본정부가 보상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독일에서는 유태인의 홀로코스트 보상을 정부와 관련 회사∙기업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전시중 일본인 강제수용에 대해서 뒤늦게나마 보상을 했습니다. 일본은 일본국적의 병사들에게만 은급을 지급하고 오키나와를 비롯해 피해를 입은 민간인에게는 일체 보상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이지만 기부합니다. (오사카부 오사카시(大阪府大阪市)∙남성)

'위안부'였던 분들께 바칩니다. 부디 우리 일본인을, 그리고 저희 선조가 저지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의 마음의 상처가 하루라도 빨리 치유되고, 하느님께서 평안을 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이타마현 우라와시(埼玉県浦和市)∙여성)

앞으로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평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기를 마음으로부터 기원합니다. (오카야마현 와게쵸(岡山県和気町)∙여성)

지난 3일, 아내가 70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공양이라 생각하고 기부합니다. 전세계 여성에게 평안과 안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福岡県福岡市)∙남성)

소액이지만 모금합니다. '사과금'의 1인당 금액은, 그 사람의 인생을 짓밟은 데 비하면 얼마 되지 않겠지만, 일본인의 양심을 증명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 주십시오. (미야기현 센다이시(宮城県仙台市)∙남성)

공민관 창구에 모금함을 설치해서 모금했습니다. 소액이지만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보내드립니다. (후쿠오카현 나라하마치∙공민관(福島県楢葉町公民館))

돈으로 보상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神奈川県川崎市)∙여성)

서울에 있는 아들이 부탁해서 송금했습니다.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岡山県岡山市)∙여성)

지난 달은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송금하지 못했습니다. 계획한 2개월 분이니 받아주십시오.(에히메현 단바라쵸(愛媛県丹原町)∙남성)

보상사업에 참여합니다. (2001년4월24일 이바라기현 도리데시(茨城県取手市)∙남성)

이번에 '남자와 여자의 인권'이라는 테마로 DV, 아동학대에 대해 4회 연속 세미나를 처음으로 개최했습니다. 이 때 입구에 모금함을 설치했습니다. (이바라키현 기타이바라키시(茨城県北茨城市)∙여성연맹)

일본인의 책임으로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작은 정성입니다. 활용해 주십시오. (지바현 사와라시(千葉県佐原市)∙남성)

조금이라도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아이치현 도요하시시(愛知県豊橋市)∙여성)

힘들 것으로 생각되던 사업이 여러분들의 성의 있는 활동으로 인정 받게 된 것을 기쁘 게 생각합니다.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시(栃木県宇都宮市)∙여성)

소액이지만, 조금이라도 일본이 저지른 죄의 보상이 되길 바라며… (니가타현 아라이시(新潟県新井市)∙남성)

역시나 공평한 조사와 국가에 의한 정식적인 사죄배상을 희망합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된 다음 재출발 하고 싶습니다.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熊本県熊本市)∙남성)

얼마 안됩니다만, 문화제에서 모금을 해서 보내드립니다. (이바라키현(茨城県)∙고교자원봉사부)


위안부 문제를 여성인권의 향상, 피해자 보상과 명예회복이라는
본질과 떨어뜨려, 네셔널리즘의 영역으로 밀어넣은 것은 누구입니까.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 위해 보상금을 모으고 편지를 썼던
저 일본의 평범한 국민들입니까, 기금에 참여했던 정치가, 시민운동가, 학자들입니까.

아니면 지금도 반일이나 혐한에 열을 올리는 그 누군가들입니까.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