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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진흥고와 타이거즈의 악연
게시물ID : baseball_256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호위총관
추천 : 3
조회수 : 119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2/06/15 03:57:02
1.오희주

1991년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제일고 강타자 김기태와 광주진흥고 에이스 오희주 둘을 저울질 하던 중 결국 진흥고 에이스 오희주를 1차지명했고 오희주는 해태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체 방출됩니다.

당연히 고향팀 해태에 지명될줄 알았던 김기태는 신생팀 쌍방울에 입단하게 되고 김기태의 성적에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2.이대진

1993년 10승을 거두며 데뷔한 이대진은 데뷔 6년간 76승을 거두며 명실상부한 타이거즈의 에이스로 자리잡지만...부상으로 인해 7년간을 재활 평범한 투수로 전락.부상당할시 이대진의 나이는 지금의 류현진보다 어렸습니다.

3.김상진

1996년 데뷔 이후 2년간 18승을 거두며 타이거즈의 10년으로 기대받던 유망주 1997 한국시리즈 5차전 1실전 완투승으로 아홉번째 우승을 결정지었던 선수지만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됩니다.

4.임창용

1995년 데뷔 국내 마무리투수중 선동열 말고는 임창용 위에 이름을 적을선수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선수입니다.

1998 타격-최다안타-출루율 3관왕을 차지한 당대 최고의 좌타자 양준혁과 그것도 1:1도 아닌 1:3+현금까지 얹는 트레이드를 할정도였으니 그당시 임창용의 위치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모기업 자금난으로 트레이드되고 맙니다.

5.김진우

선동열 이후 최고의 하드웨어 고등학교때부터 괴물소리를 들으며 계약금 7억원에 타이거즈에 입단 2002~2003 두각을 나타내며 가능성을 보였지만...결국 음주가무와 집안사에 휩쓸려 타락했다가 요즘 다시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6.정영일

계약금 7억원을 제시했지만 10억원을 달라며 에인절스행을 택했네요...당시 안산공고 김광현과 라이벌이었던걸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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