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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의 현실
게시물ID : starcraft_256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스타
추천 : 13
조회수 : 286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0/05/20 10:12:31
돌아다니다 본 글인데 너무 명문이라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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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승부조작 사건'을 계기로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현실을 되집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현직 프로게이머와의 간담회 내용을 정리한 "'승부 조작' 프로게이머 욕하기 전, '현실'을 봐라(☞바로가기)"에 이어 e스포츠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인 한 팬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듯 승부조작이란 내우와 스타크래프트2 발매라는 외환을 맞은 작금의 e스포츠 판은 꽤나 위태롭다. 그러나 열정이 있기에 이 바닥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 바닥을 지탱해온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의 열정을 살펴보자.

프로게이머로 가기 위해선 통과해야할 관문이 몇 단계 있다.

우선 초등학생~고등학생 연령대의 게이머는 배틀넷(게임과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블리자드사 사설 서버)에서 실력으로 명성을 쌓은 후 30~300명 인원 폭의 유명 '클랜'(혹은 길드)에 테스트를 통해 들어간다. 클랜에서 프로게이머를 지향하는 이는 보통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퇴하고 클랜 사업으로 운영되는 단체합숙소에서 준비를 한다. 이 '숙소'가 공중파 방송에서 '프로게이머 학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합숙소는 10~15인의 인원이 월 40~60만원의 입주비를 내는 40~60평 너비의 오피스텔 등의 건물이며 밥, 물, 김치 등으로 이루어진 하루 세끼와 연습용 컴퓨터를 제공한다. 때론 운영적자를 이유로 식사를 제공하지 않기도 하고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클랜 숙소도 있다.

관리자는 건물과 연습 기록부를 제공할 뿐 지망생을 제대로 돌보진 않는다. 하루에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 연습을 하는 것이 권장되며 경우에 따라선 밤 3시에 잠들었다 7시에 일어나 연습을 계속한다. 프로 지망생들이 굳이 클랜 합숙소에 드는 이유는 클랜 운영자의 인맥을 통해야 프로게임단 연습생 테스트를 중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준프로 자격증을 따기 위한 커리지 매치를 준비하며(연평균 106명이 획득) 동시에 총 11팀(상무팀인 공군 에이스는 제외)의 테스트를 받아 프로게임단 온라인-오프라인 연습생으로 들어가 무보수로 연습상대를 해주는 일을 한다.

프로게임단들은 1군-2군-3군(온라인)으로 구성된다. 온라인 연습생들은 2군 연습생들이 숙소에서 나갔을 때 채워질 수 있는 예비 명단이다. 이후 드래프트를 통해(연평균 75명) 팀에 입단되면 정식 2군으로 편입되고 1년의 훈련을 더 거쳐 주전을 선발한다. 2군 환경은 코치의 관리를 제외하면 클랜 숙소보다 조금 나은 정도며 밥, 물, 김치, 간장 등의 식단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누구도 '닭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프로게이머의 연봉은 1군 주전의 경우 최소 500만 원, 평균 1000~2000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개개인의 연봉은 기밀사항이다. 2군의 임금 평균은 연봉 500만(월 30~40만 선) 원이다. 그러나 대기업팀(SKT·KT·CJ 등)을 제외하면 2군 연습생의 임금 자체가 없다.

프로게임단은 프로리그 일정을 맞추기 위해 휴가를 제외하면 출퇴근 없이 1년 365일 24시간 합숙을 기본으로 한다. 게임단 숙소 내 경쟁은 매우 치열하며 이들은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코치들의 감시 속에서 하루 12~16시간 게임연습을 한다. 2군 이하 연습생들은 밥→청소·빨래→게임→밥→청소·빨래→게임→잠의 패턴으로 개인 생활은 거의 없다.

프로게이머는 초등학생들의 선망직업 1위를 차지하는 등 청소년에게 인지도가 높고 타 스포츠에 비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이 좋아 커리지 매치 연평균 응시자 누적수가 5000명(참가비는 1만 원)에 달한다. 2010년 현재 등록된 선수는 415명(프로 284명+준프로 131명)으로 프로가 되겠다는 잠재적 동기를 가진 인적 인프라의 크기는 이의 10배를 넘길 것이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나이의 소년들이 종종 학교를 자퇴하고 프로게이머(현직 프로게이머 평균 연령는 만 20.5세이며 이중 3분의 1이 미성년자)가 되며 이중에 성공해서 방송에 나와 경기할 수 있는 특별한 선수들(그러나 팬들은 그들 중 다수를 '듣보잡'이라고 부른다)은 5년의 선수 수명이 끝난 후 소리 소문 없이 은퇴(연평균 43.5명)한다.

맹렬한 연습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 허리-목 디스크를 훈장으로 단 20대 초중반의 은퇴자들은 공교육을 마치지 못했고 다른 기술도 없다. 일반 스포츠처럼 체육교사가 되거나 도장을 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조폭도 못된다. 몇몇은 승부의 감을 쫓아 도박으로 빠진다. 그 얼마 뒤 다른 사회생활을 찾도록 떠밀린 은퇴자 앞에 입영통지서가 날라든다.

청소년-청년기의 수백수천 인적 자원을 끊임없이 투입시켜 조그만 방안에 가두고 거르고 걸러 짜내고 짜낸 후 수명을 다하거나 자포자기하면 교체-순환시켜 단체전을 돌리는 이런 공장 구조를 일각에선 '닭장'이라 부른다. (KeSPA 랭킹 1위인 만 18세 이영호의 최근 1년간 공식전 출전횟수는 137회. 공군 에이스를 제외한 만 24세 이상 33명의 최근 1년간 평균 공식전 출전횟수는 5.4회다)

송병구(1988년생), 김택용(1989년생), 이제동(1990년생), 이영호(1992년생) 등 스타리그를 통해 억대 연봉을 받는 슈퍼스타로 뜬 네 명을 빼면 이 바닥에서 선수로 산다는 것은 희생한 대가에 맞는 수익을 얻는 공정한 경쟁노동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다. 2009년 FA(자유계약선수)가 된 이제동이 겪은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 정상권 선수들도 자유계약선수를 선택하면 어느 팀도 받아주지 않아 한 순간에 은퇴 위기(08년 3월부터 협회는 게임단 소속이 아니면 프로게이머 자격을 정지시키고 스타리그 등의 개인리그 출전도 불허한다는 규정을 제정함)에 내몰릴 수 있고 법적대리인 선임이 금지되며 계약내용 기밀유지협약이 걸려 있는 고용 계약을 맺는다.

'개인 VS 개인'의 게임을 한국형 엘리트단체스포츠로 포장한 e스포츠는 최하부의 클랜숙소 운영자에서 시작해 방송사와 e스포츠 언론을 거쳐 최상위의 협회 임원까지 수많은 어른들이 세상물정 모르는 10~20대의 피땀을 쥐어짠 생산성(세계 최정상의 게임퍼포먼스를 통한 관중동원력)을 팬들에게 중개하는 브로커로서 밥벌이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e스포츠 시장은 1207억 규모로 추정)

그러나 어느 어린 프로게이머 하나도 그 어느 어른 한분도 닭장에 대해서, 닭장 이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팬들도 듣지 못했다.

게임을 통해 연예인 같은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욕망을 쫒아 인생을 지불해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사이에서 명확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쇼 비즈니스 무대에 올라가 최저의 임금을 받으며 짤막한 청춘을 바치고 조촐한 은퇴식 하나 없이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짐을 감내한다.

이것이 e스포츠를 지탱하는 열정이다.

 
ⓒ뉴시스(자료사진) 

열정을 소비하는 팬,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e스포츠의 태동기부터 근 10년 간 새파랬던 열정과 함께 자라고 또 즐겨왔다. 그러던 중 '어려우니 일단 파이를 키우자'는 구호 아래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란 물음 없이 폐쇄된 닭장을 완성한 2007년 즈음부터 우리의 취미는 사육된 열정이 죽기 직전 내지르는 긴장된 단말마를 즐기는 일이 되었다.

e스포츠계에 참 많은 신음이 있어왔지만 그렇다고 자유의지로 악질 브로커와 공모해 승부 조작을 한 배신자를 용서하고 이해해 줄 순 없다. 스포츠 선수로서 공정한 경쟁을 통한 명예의 쟁취와 그 명예에 맞는 보상을 주려고 기획하기보단 기업 홍보용 엔터테인먼트를 장식하는 예능용 소모품으로서 프로게이머를 대하며 키워낸 이 바닥의 생리는 누구의 자유의지로 만들어진 누구의 책임인가? 곧 쓰고 버려질 미성숙한 검투사의 매수비로 200만 원이란 명예의 값을 매긴 자는 누구인가?

승부조작 수사를 지휘한 위재천 부장검사는 "정상급 선수가 아니면 큰돈을 벌지 못하고 20대 중반이면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프로게이머의 현실 때문에 선수들이 유혹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우리는 안다. 죄 없는 e스포츠계의 어른들이 모독자들을 일벌백계하겠다며 분노할 것을 안다. 사과한다고 새로 태어나겠다고 환부를 도려내겠다고 재교육하겠다고 소리높일 것을 안다. 불법 배팅사이트를 소탕하겠다고 공표할 것을 안다. 또 그것이 옳다는 것도 안다.

올해 7월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2를 정식 발매한다. 그동안 블리자드는 한국 e스포츠의 저작권을 무시한 리그 운영을 묵인해왔다. 스타크래프트2는 단순한 패키지 판매 사업이 아니며 블리자드는 그 핵인 배틀넷 2.0의 기술진보를 바탕으로 e스포츠 종주국이라 자처하는 한국을 거점으로 해 글로벌 e스포츠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야심을 내비친 지가 오래다. 해외에선 베타테스트 중인 게임을 가지고 리그를 열 정도니 판은 이미 깔렸다.

블리자드는 새 파트너를 찾는다는 선언과 함께 한국e스포츠협회(KeSPA)와의 스타크래프트2 저작권 협상을 결렬시켰다. 한국e스포츠협회(KeSPA)는 내부적으로 게임단 소속 선수들에게 스타크래프트2 베타테스트 게임조차 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이대로 결별이 지속되면 프로게이머들은 협회의 프로리그 게임단 소속으로 연봉을 받을지, 아니면 블리자드 시스템과 새 협회 하의 리그에서 개인사업자 자격의 상금사냥꾼이 될 것인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상황이 닥쳐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바꾸라고 말해야 되지 않을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12년 전 한국에서 IMF라는 위기와 IT산업 투자라는 기회의 쌍곡선을 타고 심어져 열정이란 양분을 빨고 자란 e스포츠다. 2010년은 e스포츠의 주권을 앞에 두고 지금까지 내리 깔아본 팬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 상대의 뒤통수를 더 잘 치기 위한 잘 짜인 선전선동물이 쏟아질 것이다. 이 판에서 처음으로 구조 자체가 바뀔 기회라고 한다면 협회(KeSPA)든 블리자드든 선수에게 공정한 거래를 제안하는 쪽에게 힘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 어떤 협상계약 조건보다도 우선 젊고 순수하고 무지한 소년-청년들의 열정을 올바르게 기르겠다고, 브로커의 밥그릇을 위한 책임지지 못할 덩치를 키우지 않겠다고, 쉽게 쓰고 쉽게 버리지 않겠다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겠다고,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1차 생산하는 주체와 직접 이익을 나누는 수익구조를 개발하겠다고, 스포츠 선수로서 존중하겠다고 확고하게 약속하도록 요구하고 또 약속하는 쪽에게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어른들이 당신들보다 어린 자들 앞에서 "네가 좋아서 하는 거니 감내하라"는 무책임한 열정의 요구 뒤로 숨는 이 바닥에서, 열정을 최종 소비하는 팬들이 맡을 고귀한 의무가 아닐까? 우리에게 있어 처음이며 또 어쩌면 마지막이 될 기회가 아닐까?

※본문의 수치는 프로게이머의 '꽃'인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 및 12팀 프로리그 체제가 완성 된 2007년 이후부터 2010년 5월 13일까지의 데이터에 근거한다.

※현황은 제보를 바탕으로 구성했으며 몇몇 수치는 KeSPA(http://www.e-sports.or.kr)의 기록을 통계 처리했다. 
 


출처는 이슈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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