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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개
게시물ID : lovestory_404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딱걸렸네
추천 : 0
조회수 : 74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2/21 23:58:28
메마르게 타들어가는 햇살에 지글지글 아지랑이 올라오는 콘크리트 길
투박하게 덕지덕지 발라놓은 계단같지도 않은 계단을 오르고 여기저기 저녁을 하는지 
된장찌개냄새며, 구수한 냄새가 동네가득히 메워져올라온다.
그 사이로 경사만 가파른 언덕길 위를 오르다 숨이 턱까지 차는지 
무릎위에 손을 겨우 기대어 놓고서는 
자칫 언덕길에 미끌어져 내려가버릴까싶은 구멍가게 앞 평상에 앉아 숨을 헐떡이면서 
땀을 식힌다.
'이모 여기 생수하나만 주쇼' 
'아이고 어르신이 다니기엔 길도 가파러서 쏘다니기 힘들건디 우째 왔당가요?'
'나가 어릴때꺼정 놀던댕게 함 와봤제'
'옛날엔 여가 다 산이었는디 다 바뀌어버려가꼬 볼 것도 없을건디'
'뭐 그거 볼라고 왔당가 그냥 와본거제'
때마침 울리는 가게안 전화벨 소리에 푸성하게 묶은 머리의 아줌마는 가게안으로 
아따 기다리쇼라며 종종걸음으로 부리나케 들어갔다
미적지근한 생수로 목을 한모금 마시면서 하늘을 보니 옛날에는 그리 넓어보이던 하늘이
건물사이로 조그만하게만 남아있었다.
황혼녘에 물들어 콘크리트 건물의 창문들이 노랗게 반짝이는게 얄밉게도 아름다워보이는거 같다
노인이 한숨을 휘우 내쉬는 사이 평상아래에서 더무룩하니 만지기조차 꺼려지는 더러운 털에 
덮힌 늙은 개가 설금설금 기어나왔다.
그러고는 노인이 앉아있는 평상아래 누워 황혼녘을 지긋이 바라보는게 마치 노인이 하는 것과 
흡사 비슷하다.
그놈이 정말 그것을 보는건지는 모르지만, 어째 묘한 동질감같은게 느껴지는 것이 
노인을 허허 웃게 만들었다.
서서히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려는지 불어오는 밤바람이 서늘한게 아까 흘린 땀들이 이제는 
춥게만 느껴진다.
'나도 여가에 쪼가 더 있어도 되제?'
노인이 내려다보며 늙은 개에게 말하자 늙은 개는 고개를 들고 눈만 마주치고는 다시 앞발위로 
턱을 괸다. 
황혼녘은 점점 어둠에 밀려나고 저 뒤쪽으로 별이 하나둘 총총히 빛나는게 보인다.
'나가 어릴때는 참말로 여서 뭘 했던가 기억도 안나는디 그냥 그립더랑게 그래가꼬 와봤는디 
 싹다 변해부렀어 그래도 여가 여태꺼정 지낸 곳보다 편허내 아이고 좋다'
늙은 개도 한숨을 쉬는건지 숨소리를 쉬익내뱉는다.
노인은 그 개가 기도 안차는지 허허 웃는다.
'친구래도 살아있으면 같이 와봤을건디...'
늙은 개는 그저 가만히 턱을 괴고 있다가 털이 간지러우면 긁고서는 그냥 누워있는다.
황혼에 빛나던 건물의 창문들도 밤이 어두워지자 서로 각기 본래의 색을 찾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밝아졌다. 
날이 어두워지자 날씨가 꽤나 쌀쌀해지기 시작한다.
'그려 니도 있어라 내도 여 쪼까 있다가 갈란다'
노인은 다 마신 생수병을 평상위에 올려놓고는 무릎을 손을 얹어 서서히 일어난다.
늙은 개도 다시 평상 밑으로 설금설금 기어들어간다.
노인은 일어나서 오르막길을 주욱 처다보다가 그냥 도로 내려간다.
늙은 개는 내려가는 노인 뒷모습만 주욱 처다본다.
황혼이 다 사라져가고 완전한 밤이 되어간다.
간판에 불빛조차 없는 구멍가게는 그냥 창문 틈 사이로 주인아줌마가 보는 텔레비전화면에 맞춰 
반짝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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