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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블랙 불릿
게시물ID : animation_2567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람순찰자
추천 : 1
조회수 : 345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8/03 2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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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의 한계

<블랙 불릿>

 

 

 

전투 병기로서 도구화된 소녀들의 모습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투희>장르의 안티테제적인 장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인 소녀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싸우는 소녀들 ‘투희’의 모습은 일본내에서 큰 흥행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대표적인 장르로 <프리큐어>와 <세일러 문>등이 있고 최근 들어 이런 시리즈의 애니메이션이나 기타 부분 장르의 작품들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투희>의 특징이라고 하면 가련한 소녀의 몸에서 나오는 절대적 힘으로 인한 특유의 섹슈얼한 연출은 모에 장르의 한 축으로서 그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르가 가지고 있는 판타지적 모순을 지적하며 헛된 망상으로서 표현하는 작품들 역시 근근히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르는 투희의 안티테제적 모습을 하고 있지만 큰 범주에서 본다면 장르적으로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거울에 비친 다른 단면처럼 말입니다.

    

<블랙 불릿>은 가스트레아라는 괴수들로 인해 폐허가 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괴수들의 공격으로 지구의 대부분이 가스트레아의 영토가 되버렸고 인류는 10%도 채 살아남지 못하고 가스트레아들에게 몰려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던 중 인류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 바라늄이라는 새로운 희소 금속과 가스트레아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들인 ‘저주받은 아이들’입니다. 인류는 이 ‘저주받은 아이들’이 가스트레아와도 같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을 깨닫고 바라늄 금속과 ‘저주받은 아이들’을 이용해서 인류를 지키려고 합니다.

    

‘저주받은 아이들’은 10세 미만의 여아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가스트레아가 등장한지 채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블랫 불릿> 세계에서의 감염자들은 대게 10대의 소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소녀들을 육성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자들을 양성해 페어를 맞춰 인류를 공격하는 가스트레아에 대한 방어를 시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 ‘저주받은 아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이고 초인적 힘을 계속 발휘하면 감염율이 높아져 그 최후에는 가스트레아로 변이하게 됩니다. <저주받은 아이들>의 설정을 들어보면 우리는 쉽게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을 떠오르게 됩니다. 좀 멀리 보게 되면 <느와르>이나 <팬텀 오브 인페르노>가 있고 최근 작품인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그리고 <블랙 블릿>과는 이종 사촌쯤 되어보이는 <건 슬링거 걸>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소녀를 극한 상황에 몰아붙여 그녀들이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게 강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적 부조리속에서 나오는 그녀들의 탁한 감정을 통해 인간의 잔인함과 고독함에 대해 표현하게 됩니다.

 

<블랙 블릿>도 마찬가지로 도구화된 ‘저주받은 아이들’인 <이니시에이터>와 그들을 다루는 <프로모터>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실제로 가스트레아와의 전투보다는 <이니시에이터>인 엔쥬와 <프로모터>인 사토미 렌타로의 관계에 더 치중합니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 있는 프로모터와 이니시에이터의 관계를 묘사하며 모순된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줍니다. 작 중 대부분의 프로모터의 대부분은 이니시에이터를 도구 취급하고 저주받은 아이들은 이니시에이터로 살아가기 위해서 프로모터를 따르게 됩니다. ‘저주받은 아이들’은 인류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로 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복속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니시에이터라는 직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프로모터는 돈을 위해서 그리고 이니시에이터는 살기 위해서라는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서 페어를 맞추고 가스트레아와 싸웁니다.

 

사토미 렌타로는 다른 프로모터들과는 다르게 이니시에이터인 엔쥬를 가족처럼 생각합니다. ‘저주받은 아이들’에 대한 차별 의식이 없는 렌타로는 ‘저주받은 아이들’을 비난하는 인류에 대해 경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렌타로는 작 중에서 이니시에이터에 대한 부당한 처사에 대해 분노 하지만 인류 자체에 가득찬 그들에 대한 증오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프로모터와 이니시에이터의 관계는 <건 슬링거 걸>의 프라텔로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건 슬링거 걸>의 프라텔로는 의체 소녀들에게 약물 세뇌를 해 자신의 담당관에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느끼게 하고 그 사랑을 이용해 프라텔로의 결속을 만들어 줍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는 프라텔로의 위태위태한 관계를 더 부각시켜주고 언젠가는 엇갈릴 수 밖에 없는 비극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프로모터와 이니시에이터간의 관계는 큰 강제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적 지휘를 얻기 위해 협의된 페어를 짜는 그들의 관계는 프라텔로에 비해 강제성도 비극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사회적 약속에 의해 짜여진 듯한 이들의 관계는 ‘저주받은 아이들’의 인류에 의해 도구화된 소녀의 비극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애니메이션은 본편의 대부분을 소모해서 프로모터와 이니시에이터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힘을 쏟습니다.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렌타로와 그와 대착점에 있는 인물들을 그려내어 이니시에이터에 대한 사회적 위치와 그들의 비극적인 삶을 조명하고 있지만 도입부를 제외하면 크게 부각되어 보이진 않습니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전체적인 흐름은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담기 위해서 세밀한 부분을 포기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블랙 불릿>은 아포칼립스 배경의 장르가 가질 수 있는 좋은 특징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스트레아라는 공공의 적을 앞에두고도 분열하여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과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기는 부도덕한 모습은 현재의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좋은 소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블랙 불릿>은 좋은 소재를 너무 많이 쥐고 있는 탓에 단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작품내내 갈팡질팡했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3시간이라는 시간내에 보여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상화된 작품은 일정 부분을 포기하고서라도 애니메이션으로서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원작 역시 단편이 아닌 완결이 나지 않은 장편이라는 것을 염두하고서라도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으로의 <블랙 블릿>은 애니메이션 자체가 작품으로서의 시작과 끝을 낼 수 있는 독창성을 지녀야만 합니다. 그것이 도구화된 소녀들의 모습을 집중 조명하거나 액션 애니메이션으로 파격적이고 시원한 연출을 보여주거나 말입니다. <블랙 블릿>은 애니메이션으로서의 독창성이 굉장히 부족한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좋은 원작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블랙 블릿>의 끝맺음은 후속작 연결을 암시하는 전형적인 1부의 모습을 띈 작품이었습니다. 2부의 방영이 언제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종영된 <블랙 블릿>의 모습으로는 아쉬움만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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