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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 17] 그와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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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강지강이
추천 : 0
조회수 : 2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09 16: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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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한줄 소개 내용 : “갈림길이요. 갈림길이 안내해주었어요. 갈라지다가 다시 하나로 이어주는 게 갈림길이라고 하셨죠? 그게 떠올랐어요.”

*

무작정 뛰쳐나온 저를 책망하듯이 문득 어딜 가야 할 지 모른 채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떠오르지 않는 의 거처가 생각을 재촉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처음에 를 만났었던 부영역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면 처음에 그 물건을 접했던 지점부터 거슬러 가듯이 말이죠.

부영역은 평일 오후인지라 한산하였습니다. 움직임이 굼뜨고 심지어는 발길에 챌까 봐 달음질했던 비둘기 떼도 얌전하게 무리 지어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주워 먹으려 연신 고개를 방아질 했습니다.

예전에 가 알려준 노점상 번호 29번의 위치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즐비하게 자리 잡은 노점상에는 개점을 준비하는 상인의 모습이 더러 보였습니다.

‘29번… 29번…’

초조함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찾는 위치의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빨라졌습니다.

25번, 26번, 27번, 28번…….

29번에 드디어 다다르자 반가운 마음에 의 점포를 바라보았지만, 다녀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깜깜한 내부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최소한 는 저처럼 지연의 소식을 접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혹시나 해서 그 주변과 부영역 일대를 황급히 찾아보았지만, 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는 부영역에 없었습니다.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이때는 조금 의 행방을 유추해보기로 했습니다.

사람 개개인마다 각자의 안식처가 있듯이 도 이러한 낭패감과 좌절감에 혼잡해질 때에 휴식을 온전히 취할 수 있는 장소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한 가지 집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가 비밀리에 데리고 갔던 묘지였습니다.

묘지에 도착하니 해가 갈무리를 하는 시각이 되었습니다. 어느 새 적색의 커튼을 덮은 것처럼 붉은 빛이 청명한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여전히 그 장소는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와 같이 방문했던 기억이 적게나마 음침한 기운을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부영역에서 노점상의 번호만을 쳐다보며 훑어간 것처럼 묘지에서는 와 얘기 나눴던 노부부의 묘지의 위치를 찾으려 묘비명을 훑어내면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가끔 제 무릎 아래까지 자란 들풀들이 재촉하는 걸음을 탓하는 지 자신의 몸을 던져 제 피부를 할퀴었습니다. 그러나 그 따끔거리는 통각은 긴박한 상황으로 인해 미약한 신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노부부의 묘지까지 다다랐으나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묘지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습니다.

여기도 틀렸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더 이상 짐작할 수 있는 장소도 없었고 혹여 우리가 서로 어긋나며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도 했습니다.

는 부영역에서 저를 찾고 있는 중인데, 지금 다시 부영역으로 간다면 그땐 가 이곳에서 저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람은 멀뚱히 서 있는 제게 다가와 귓불을 간질인 채 달아났습니다. 바람이 뭔가 얘기하려는 의도로 스쳐지나간 것은 아닐까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순간.

“아마도…… 갈림길은 갈리다가 서로 이어지는 길이 있기 때문일까요?”

어젯밤 가 갈림길에서 제게 무심코 내뱉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갈림길에 왠지 가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묘한 확신을 부정하면서도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되돌아온 갈림길은 어제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하늘은 이미 어둠으로 덮여 가로등을 의지하며 길을 걸어야 했고 풀벌레 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채워주었습니다.

캄캄한 갈림길에 묘한 기대감을 가득 넣고 힘주며 걷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와의 조우를 기다리며 갈림길에서 목적 없는 발걸음이 된 저는 하염없이 걷기만 했습니다.

‘나타나야 할 텐데.’

강하게 이끌었던 의 목소리와는 달리 갈림길에는 공허한 공간을 메우는 적막과 풀벌레의 찌르르- 하며 우는 소리 뿐이었습니다.

서서히 갈림길에 끝에 다다르자 기대감은 금세 허탈감으로 바뀌었고 착잡함이 물에 퍼지는 물감처럼 삽시간에 번졌습니다.

갈림길의 끝은 탄강 대교로 이어지는 길이었는데 그녀에게 조의를 표할 겸 탄강 대교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지연이가 생을 마감한 곳은 습기 찬 아파트 구석에 자리한 텃밭이었지만, 그녀의 속사정을 묵묵히 들어준 탄강 대교가 그녀에겐 가장 알맞은 안식처였을 거라 생각했지요.

한 걸음 옮겨가며 어제의 기억을 되새겼고 대교의 포석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녀가 멍하니 서 있던 곳, 그리고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고 고민하던 곳.

그곳에 다다르니 어느 남자가 기운 없이 앉아있었고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그 남자가 오늘 제가 종일 찾아다니던 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는 인기척이 들리자 서서히 올려다봤고 제가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습니다.

“아…… 오늘…… 소식 들으셨어요?”

는 서 있는 제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침에 소식 들었어요. 결국 지연이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 말이 격정적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아요.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머리를 양손으로 헝클며 괴로운 듯이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어요.

“불안하긴 했는데… 이런 결과로 나타날 줄은… 지연이는 제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예요.”

의 터무니없는 말에 당황하다가 머릿속에서 어제 카페에서의 의 수상한 행동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이젠 울먹이는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했습니다.

“어제 지연이를 대교에서 발견했을 때, 저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아직 죽을 시간이 되지 않았거든요. 계속 저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 친구의 행동에 따라 머리 위에 뜬 죽음의 시간이 바뀌는 지, 바뀌지 않는 지 계속 확인했어야 했어요.

저는 지연이를 탄강 대교에서 구해냈다고 생각했을 때 속으로 너무나 기뻤어요. 지연이는 결국 자살을 결심했고 뛰어내리려고 마음먹었어요. 제가 뛰어가서 잡지 않았다면 정말 물속에서 뛰어내리는 걸 볼 수밖에 없었을 만큼 긴박했어요. 간발의 차로 탄강에 몸을 내던진 지연의 팔을 겨우 붙잡아 구할 수 있었지요.

제가 기뻤던 것은 제 능력이 처음으로 맞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죽음의 날짜는 바뀌었어야 하는데 바뀌지 않았고 저는 그 친구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줬기에 제가 예언한 그 날짜는 아무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게 커다란 착오였어요. 억지로라도 집까지 데리고 갔었어야 했던 거지요.

결국……. 지연이는 제 자아도취로 죽었던 거예요…….”

울먹임은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 가 카페에서 지연이를 바라보기만 했던 의문의 행동이 결국엔 풀리게 되었지만, 지연이가 죽었다는 상황에서는 넋두리에 불과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모습에서 인간으로서의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던 완강함에서 나오는 연약함은 나약함으로 변모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간 인내했던 고통에서 비롯되는 강인함으로 느껴졌지요.

연약하게 축 늘어진 의 고개에는 가 죽음에 처한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처절했던 희생정신이 좌절되는 듯한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분명 는 가진 능력 이상으로 최선을 다했고 숨이 멎는 듯한 고통을 이겨내고 생명을 구해내는 데 애써왔지만 말이죠.

연민은 용기를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뒷수습은 생각도 않고 의 고개를 제 어깨로 가져다 댔기 때문입니다.

는 저의 돌발 행동에 흠칫 놀라하며 기댄 고개를 다시 곧추세우려 했습니다.

의 그런 행동에 극구 말리면서 내심 이런 행동에 일말의 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엔 급작스런 행동에 의한 민망함이 일렁였기 때문입니다.

“아저씨, 그냥 기대요. 신경 쓰지 말고 기대세요.”

제 의중을 알아주었는지 몰라도 는 다시 고개에 무게를 싣고는 어깨에 기대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제가 있는 곳을 알았죠?”

의 물음에 저는 대답했습니다.

“갈림길이요. 갈림길이 안내해주었어요. 갈라지다가 다시 하나로 이어주는 게 갈림길이라고 하셨죠? 그게 떠올랐어요.”

감정을 추슬렀는지 천천히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그때 무슨 감정이 서로에게 감돌았는지 정확히 설명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연민을 통한 공감대였을까요?

타인의 생애를 이해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건 타인의 삶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것 아니겠어요? 그 틈 사이로 저를 쏙 집어넣어 보았어요. 방에 들어가는 것처럼요. 처음 들어가는 낯선 의 방이었지만, 들어갔다 나와 보니 느낌이 달랐어요. 한 번의 경험으로도 낯설었던 방이 친근하게 느껴졌지요.

분명 도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제게 보여준 것을 계기로 신뢰를 느끼기 충분했겠지요. 아마 짐작하기에 이때의 일을 기점으로 의 태도가 변화되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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