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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
게시물ID : readers_256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빗속을둘이서
추천 : 2
조회수 : 4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0 01:21:12

출생신고가 유효하지 않았어

아마도 친부모가 불법체류자였거든

폐허에 버려진 채 철거 인부한테 발견된 작은 생명

허약해서 울지도 못하고 눈 감고 있던 아기

숨만 겨우 붙어 있었다고 해.


가혹하지만 유일한 축복인 걸까?

생긴 것만은 무척 귀엽던 아이.

구청이 직접 나서 출생신고를 하고 고아원으로 보냈어.

그사이 입양 절차도 진행되고 있었지

아마도 무슨 피가 섞였는지

눈동자는 초록색, 머리는 파란색의 그 아이는

한국을 떠나 아주 먼 타지로 보내져


하지만 운명이란 게 얼마나 기구한지

내전이 발발했던 레바논에서

불시 테러에 휘말려 화재 사고가 터지고

양부모는 저택에서 둘 다 불에 타 죽어

불길 속에서 수도관이 터져 비를 내렸고

그 아이만이 기적적으로 구출 됐지.


근데 연기를 많이 마신 탓이고

어릴 때라 더 성장이 중요한 시기에

호흡기와 폐, 뇌혈관은

평생의 지병을 얻게 되었어.


아이는 다시 한국으로 왔다.

친부모가 아닌 다른 공공적인 자들의 손에서

출생신고가 되었던 그 나라, 그 동네로.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해진 사람들을 만나

모두가 축하해줄 만큼 성실한 가정으로 다시 입양된 거야.

하지만 아이가 입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이 먼저 차 사고로 떠났어

얼굴도 기억 못 하지만

자기 자식도 아닌 그 아이를 늘 소중하게 품어줬다던

양어머니를.


남자는 남은 친아들과 그 아이를 위해 모든 걸 감수해.

유산 문제도 있고 재혼을 꺼린 거야.

죽은 부인에 대한 기억을 물려주지 않을 거라 다짐해

그래서 세 명이 살기엔 과도하게 넓다 싶은 근사한 새집으로 이사하고

부엌에서 앞치마 두르는 걸 연습했지.

두 번 입양된 그 아이를 또 상처 주기 싫었을 테니

자격이 박탈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나 봐.


그 아이는 선천적으로 몸이 허약했어

체질이 먹는 음식의 양분을 다 흡수치 못했어

물론 그 아이가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는 건

눈동자 색을 보고 이미 알았겠지

폐와 호흡기가 안 좋은 것과

뼈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얇고

먹어도 키가 크지 않는단 거.

하지만 착한 아이였어.

소심하긴 했지만,

말하자면 죄송해요란 말을

항상 입에 붙이고 다니는

너무 소심한 아이긴 했지만

그 아이의 유일한 축복인

그 아이의 귀여움이

그 아이가 밝은 모습으로

사랑받는 모습으로 자라게 해주었어.

부인을 여읜 남자의 상처도 씻겨줄 만큼

예쁜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는 아이였거든.

친아들도 자기보다 한 살 많은 누나를 잘 따랐어

때론 짓궂지만, 누나를 위해서라면

꼬마치고 놀라운 용기를 내며

그녀를 잘 따랐어.

소꿉친구니깐

어릴 때부터 걔들 지켜봤는데

내 누나랑은 딴 판이야

지금도 그렇지만

질투 날 정도로 돈독했다고.


그 아저씨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소녀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던 무렵부터

친딸이 아니란 걸 얘기했거든.

항상 말했어. 친딸이 아니지만 언제나 사랑한다고.

핏줄이란 게 뭔지 차근차근 설명했고

사회적으로 어떤 유대인지 차근차근 설명했고

양아버지와 그 소녀 사이에 결여된 유전적인 게 무엇인지 차분하게 설명했어.

그런데도 언제나 사랑한다고

항상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품 안에서 잠들게 해주고

우스꽝스럽게 놀아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칭찬해주고

언제나 사랑한다고

하루에도 여러 번 두 손을 잡아주며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지.

아이가 좀 더 어려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땐

비록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아빠와 너의 시간은 늘 섞여 있었다고

생일을 맞이해 꼭 안아줘

늘 그래 왔듯 안아준 건데

소녀는 펑펑 울었어.

새삼스럽게 펑펑 울었지.

동생 녀석도 말없이 뒤에서 안아주었지.

솔직히 생일 파티에 초대된 난 머쓱하더군.


세 명이 살기엔 과도하게 넓다 싶은 주택

이제 적당하다고 느껴질 만큼 다들 성장했어

그래도 그 소녀는 키가 작아서 동생이 항상 놀리기만 해

그 키가 작은 소녀 역시 사춘기를 겪는다.


아빠는 대체 왜 이렇게 상냥한 걸까?

몸도 약하고 성격도 소심한 자기한테 왜 이렇게 다정한 걸까?

친딸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날 싫어해도

다시 버림받아도 당연한 거라 오해를 하면서

그 작은 체구로 빨래와 청소, 요리까지 필사적으로 집안일을 맡기 시작했지.

딱하게도 불평 부리는 건 제 분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몰라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힘든 일 전부 마다치 않았어.

아빠, 동생과의 유대가 무엇인지 자신의 세계가 깨질 수 있었던 사춘기를 

그 아이는 걔 나름의 방법으로 잘 버텼던 거야.


그런 와중에도 남자는 마음속으로 그 아이가 늘 걱정이었어

몸이 너무 허약했으니깐.

버튼을 누르면 응급차가 출동하는 벨도 갖고 다녔고

약도 꼬박 잘 챙겨 먹고, 어딜 가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전화부터 하는 그런 착한 아이가 돼주었지만

무서운 걸 봐버리거나 조금만 기분이 격앙되면

금방 호흡 곤란이 왔고

미세 먼지가 많은 곳을 외출할 땐

바로 전까지 같이 걷다가도 의식을 잃고 쓰러졌지

향수 대신 휴대용 호흡기가 있는 그런 여자.

그런 아이가


아버지의 침착한 사랑 속에서 유치원을 잘 다녔고

짓궂지만 든든한 편인 동생 그리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딸바보라 소문난 아빠 덕분에 초등학교도 탈 없이 넘어갔어

아픈 몸 때문에 결석 일수가 잦았지만

교육자의 꿈을 갖게 해준 은사님을 만나 중학교, 고등학교도 무사히 졸업했지.

죄송해요란 말이 버릇이 돼버린 소심한 성격이지만

귀엽고 좋아하는 것 앞에선 한없이 말이 많아지고

금세 다시 얼굴을 붉히는 귀여운 소녀.

키가 작아서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그런 아이.

그런 아이가


이제 더 큰 학교로 진학을 하고 남자친구도 생기겠지.

정말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소심해서 툭하면 어쩔 줄 몰라 하고

혼잣말로 어떡하지를 내뱉는 그런 여린 아이일 뿐이지만

고집부릴 땐 아무도 못 말리니깐

벌써 대학생이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그나저나 아저씨도 참 고생하셨네요.

여자도 여자를 다 모를 텐데

아무래도 민감한 것들이 좀 많잖아요?

이런 말 하기 어색하지만

딸을 어떻게 혼자 키우셨을까 상상도 못 하겠네요.

아무튼 앞으로 걔를 더 많이 믿어주세요.

설마 화장하는 법까지 가르쳐 주시게요?

왜 때려요, 농담인데.

출처 어릴 때부터 자주 왕래했던 아버지 친한 친구네 이야기에요.
이 집이나 그 집이나 엄마라는 존재가 없어서 서로 의지했거든요.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된 누나(친구의)인데 저랑도 친구예요.
근데 그 친구가 슬픈 일이 있었나 봐요.
써달라고 부탁받았어요.
민감한 부분이 많지만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가 됐으면 싶네요.
당연히 허락받고 올렸습니다.

http://todayhumor.com/?readers_24947
마음에 드는 사람은 많은데 사랑은 하지 않는다,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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