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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계절의 격정이 지나
하늘이 펑펑 사정했다.
정자처럼 무량의 흰 눈송이가 내려
눈꽃 중 하나가 하필 운명이었던 듯
고인 물에 떨어져서 녹는다.
밑바닥의 양수를 빤다.
태생만큼은 드높은 곳에서 왔으리라 믿은,
그러나 눈을 떴을 땐 처절해야만 한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희망이 반짝였다.
상위 1% 같은 고원 속의 등대를 동경했다.
꼭 물질적인 게 아니라
사랑이나 가족에서
진정한 위안을 얻은 1% 부류의 삶.
이 하얀 어둠을 깎는
무척 따뜻한 곳일 거야.
언젠가 가고 싶어, 아주 많이.
그래서
얼마나 숱한 바닥을 기어 왔고
그 얼마나 무통을 연기 했던가
하지만
외로움의 영역에서 벗어나려
헤치고 헛디뎌도 또 헤쳤지만
요행을 바라려
헤매려 해봐도
길조차 잃을 수 없는
정체된 삶이었다.
모든 게 동결돼버린 세계의 나.
문득, 만약 꿈이란 게
전생의 기억을 꾸는 거라면
그 전승에서조차
행복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꿈조차 얼음에 갇혀 반사되고 튕기고
허황한 것의 메아리, 균열만 늘 뿐이다.
그리하여 산산이 조각 나서
형체를 잃는 건 싫어.
어느새 갇힌 차가운 벽 밖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미세하게 흐르고 있단 것만이
흔들리는 갈대를 보와 알 수 있었다.
설령 이 얼음을 깨고
돌아본대도
기댈 곳이 없다.
차갑게 더 냉정하게
꽁꽁 얼어야
그나마 존재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얀 고원 속의 등대는
눈보라 너머로 비친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이따위 태생은
따라 그릴 수 없는
가치 없다고
가치 없는 걸 꿈꿔온 게 아니다.
눈꽃이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