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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유교는 어떻게 사회를 무너트리는가
게시물ID : history_257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아나키스트
추천 : 6/12
조회수 : 1246회
댓글수 : 41개
등록시간 : 2016/03/19 20:11:04
물론 유교만으로 무너진거 까지는 아닙니다. 허나 가장 큰 책임이 있다봅니다.
기회도 있었지만 유교 스스로의 한계로 인해 놓치고 말죠.

자 첫번째 이유입니다.
'유교자체의 변질'입니다.
고려는 귀족 사회죠. 그럼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입니다.
이를 우리는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지만 사실 다릅니다.
애초 사대부는 귀족이 아닙니다. 
정도전의 왕도사회에서 신분의 차별은 없습니다. 왕 아래 모두가 평등하지요.
이는 공맹의 가르침에도 부합합니다.
"글을 아는자가 선비고 도를 아는자가 군자이며 덕이 있는자가 인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
여기에 혈통은 상관없습니다.

허나 이는 초기의 명분일뿐 점차 혈통에 따라 귀족이 되는 고려를 닮아 갑니다.
이는 차츰 굳어져 벼슬아치를 일컷는 양반이라는 말이 새로운 신분이 되며 
이는 국체의 근간인 동시에 건드릴 수 없는 '반상의 법도'가 됩니다.
혈통이 중시되다보니 유학에 족보도 없는 신주단지는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며
왕도정치의 결정체인 '의정부서사제'는 '비변사'로 대체되어 허울만 남습니다.
이외도 군역과 부역의 면제등 수많은 폐단이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합니다.

두번째는 "변화하지 못한 유교"의 책임입니다.
조선후기 영정조를 거치며 조선은 잠시 중흥을 맞이하고 상공업이 발달해 신흥 '부르조아'계층이 생겨납니다.
그러면서 당파에도 밀리고 사회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양반들은 몰락하여 초가삼칸에 찌그러진 망건을 쓰고 웃음거리로 전락합니다.
이시기 유럽에서는 시민계급이 성장한 만큼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운동이 나오며 계몽주의가 유행했지만
조선조는 이미 교조화된 '유교경전'의 절대적인 통치체제 아래 변화하지 못합니다.
이미 발달한 상공업에 따라 실학이 퍼지며 새로운 문물과 학문이 전파되지만 이내 기존 유교질서에 의해 배척당하고 금지됩니다.
만일 이때 일본과 같이 유연하게 사회적 흐름에 따라 기존 시스템을 변화시켜 나갔더라면 역사는 사뭇 달랐을지 모릅니다.

조선초와 엄청나게 달라진 사회는 새로운 질서와 시스템을 요구하나 교조적인 '유교질서'에 의해 모순이 해결되지 못하자
이는 각종 민란으로 이어지고 결국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며 망국으로 접어들게 된것입니다.


이 두가지 유교의 책임
1. 본래의 초심을 잃은 유교의 변질과 
2. 변화하는 시대상을 따라잡지 못하고 기존의 수구적인 질서만을 고집하는 유교적 사회질서
이 두가지로 인해 유교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게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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