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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금은 누구였나요? 001~006
게시물ID : readers_258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muw
추천 : 0
조회수 : 2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24 13: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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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자작 소설입니다. 약간 판타지 섞인 청춘소설이예요.

 

001  

 아침의 공기가 새하얗다. 이미 올 겨울 마지막 눈이 흐드러져버린지는 오래지만, 아직도 그를 못내 아쉬워하는 듯 컴컴한 새벽녘의 바람에는 그 부드럽고 차가운 자취가 온전히 남아있다. 

 언제부터 내 방 한 구석에 걸려 있었던건지, 그 조차 희미한 갈색 고딕풍의 벽걸이 시계를 바라보며 나는 아침을 겨우 겨우 받아낼 준비를 마친다. 

 "조금 늦었네."  

 혼잣말을 내뱉는다. 그래, 이건 혼잣말이지. 당연히 이건 혼잣말일 수 밖에 없지. 무심한듯이 7시를 가르키고 있는 저 벽걸이 시계가 내 말을 알아먹을 리는 없으니까.  

 괜한 생각은 이쯤에서 접고 몸을 일으킨다. 닫혀있던 방문을 열고 거실로 향하니 계수대에 던져지듯 쌓여있는 그릇 두어개가 보인다. 아빠, 아침 챙겨먹고 갔구나. 그럼 출근할 때 나도 좀 깨워주지. 

  괜히 아빠를 원망해보며, 나는 바로 화장실로 향한다. 칫솔에 치약을 얹어 입에 살짝 문 채로 학교 갈 채비를 한다.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교복 리본을 블라우스 칼라사이에 끼워넣는다. 

 "가스, 가스."  

 마지막으로 가스레인지의 차단기를 확인하고, 현관앞에 서선 비워짐이 가득 찬 집안을 훑듯이 둘러본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마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집 열쇠로 문을 잠궈버린다. 


 002 


 "뭐해, 그림 그려?"  

 서두른 덕인지 학교에는 늦지 않았다. 아침을 못 먹은게 속 쓰리긴하지만. 

  "아니, 그냥. 낙서 중." 

 등교 준비의 바쁨에 휩쓸려다니는 내게 미처 인사를 못했던 게 못내 아쉬웠는지 아침의 무기력이란 녀석이 뒤늦게 학교까지 찾아왔다.   그 덕에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용도 모를 공책을 펼쳐 끄적끄적 낙서를 올리고 있다. 그런 나를 보고 인사 겸 말을 걸어준 지예는 내 무성의한 대답에 살짝 웃음지으면서 제 자리로 향한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지예의 인사에 좀 더 살갑게 대답했어야 했었나 하는 후회아닌 후회도 잠시, 생각보다 자세니 구도가 예쁘게 그려진 걸 보며 괜스런 뿌듯함에 밝게 웃고 있는 낙서 속 아이의 표정을 나는 살짝 흉내 내어 본다. 

 [지이이이] 

 하지만 그게 잘못이었을까. 


 003  

 음... 그러니까, 나는 지금 버스, 버스 안이다. 들컹들컹 흔들리는 버스인데,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참 많다. 처음 타본 버스지만 네이버 지도에서 이 버스를 타면 한성 병원으로 향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 병원을 가고 있는 거다. 오랜만에 엄마 만나러.  

 담임한테도 엄마를 보러 가야한다고 말했다. 담임은 바로 허락했었지. 그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왜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그냥 딱딱하고 차가운 무표정과 함께, 평소의 그런 모습으로 있어 주셨었기를 나는 지금의 나는 바라고 있다.  

 버스는 30분 정도 달리더니 금방 병원에 도착했다.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느리게,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빠르게 버스는 도착했다. 

 터덕. 나는 흔들려 떨어지듯 버스에서 내린다.  나는 내린 자리에 그대로 선 채로 고갤 숙여 얽히듯 묶여있는 보도블럭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짐해본다.

 '진정하고 표정을 감싸. 그런거 잘하잖아. 그런거 잘 해 왔잖아, 나.'

 수많은 표정 중에 뭘 골라야 하는 건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워버려야 할 표정들을 하나씩 꼽아 없애다 보니, 그럭저럭 적당한 표정이 추려진다. 그걸 얼굴에 올린 채로, 나는 병원에 들어선다. 


 004  

 자, 이쯤에서 잠시만, 잠시만 정리를 해 보자. 내 엄마가 죽었다. 내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직 침대에 누워있지만, 그냥 자고 있는 것만 같지만 조금 다르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아줌마. 멍청하게도, 사고를 당했대. 새벽부터 운전하다가 이렇게 돼 버렸대. 운전도 잘 못하면서, 갑자기 왜 운전대를 잡았던 거람. 갑자기 신호 어기고 들어오는 트럭 한 대쯤, 보고 멈출 자신도 없으면서 무슨 베짱으로 길에 올랐던 거야?  게다가 담에 얼굴 좀 볼겸 밥 한 번 먹자고 계속 그러더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부르면 내가 순순히 올 줄 알았어? 그래서 그런 거야?  

 "출혈은 많지 않았지만, 수술 중 심정지가 발생해서..." 

 웃겨. 

 그래, 일단 바라던대로 나 지금 왔으니까 나랑 대화 좀 해. 눈 뜨고 일어나서 얘기 좀 해. 1년 동안 계속 하고 싶었던, 그 대단한 이야기 뭔지 들어나보자고.  

 아, 그래도 잠시만 기다려 봐. 나 지금 표정 잠시 잃어버린 거 같은데. 엄마,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내가 아까 좋은 표정을 하나 찾아 놨었는데, 그거 다시 들고 올 테니까. 그때 얘기해. 아직은 좀만 눈 좀 감고 있어. 

 "9시 02분, 별세하셨습니다."

 자, 됐어. 이제 한 번 말해봐. 그때 했던 그런 말 같은 건 들을 생각 없으니까, 다른 걸로. 지금은 들어줄 생각이 조금 생겼으니까 딱 한 번만 말해봐. 엄마. 뭐,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005  


 그래, 나 조금 울긴 울었던 것 같아. 사람된 정이란 게 있으니까, 그치? 그래도 그때 뿐이었다? 그 이후론 안 울었어. 조금 울적하긴 했어도, 그건 단순한 기복이었을거야. 조금 깝깝하긴 했지만, 그건 평범한 변덕이었을거야. 봐봐. 나 지금은 완전 괜찮지 않아?

 그나저나 장례식장이란 곳엔 사람들이 꽤 많이 오는 거네. 몰랐어. 좀 더 조용하고, 좀 더 한적하고, 좀 더 나 혼자인 그런 곳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을 향했다. 세면대 앞에 서서 커다란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건너편에 나를 물끄럼히 바라보는 여자애의 얼굴엔 아직 붉은 기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창피하게, 뭐하고 있는 거야. 넌 아직도 그러고 있니. 난 봐봐, 이제 멀쩡한데. 평소 그대로인데. 그래, 완전히 나인데.  

 그러고 보니 아까 여기 멀리까지 시간내어 찾아온 친구들이 날 꼭 껴안아줬었다. 몇명은 날 보자마자 눈을 붉히며 울어주었다. 그러면서 힘내라니, 괜찮냐니 하는 말들을 해 줬었다.  

 이구, 이 착한 년들아. 
 나 완전히 괜찮다니까. 더 날 힘도 없을 정도로. 

 
 006  

 타블렛 펜을 놓아버린다. 모니터 속에는 밑그림이 덜 끊난 탓에 헐벗고 있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오늘 괜한 바람이 불어 파란색으로 선을 놓아서인지 그림의 분위기가 내 마음에 쏙 안겨 들어오질 않는다. 

 "에이, 관두자." 

  펜을 옮겨 그냥 그림을 지워버린다. 다시 보니 선 색깔이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깨와 머리칼이 부각되는 새 구도를 잡아보려 애썼지만, 아무래도 비례가 틀렸었던 것 같다. 첨부터 다시 그리는 편이 더 낫겠어.  

 다시 하얀 도화지를 화면에 띄운다. 이번에는 다시 검은 색 팬으로 슥슥 그림을 그려본다. 얼마전 그렸던 단발의 여자아이를, 바닷가에서 첨벙이는 여자아이를 그려봐야지. 투명한 물을 채색하는 게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도, 의욕도 지금 나에겐 있다. 

  "아니야." 

 이번에는 발이 문제다. 맨발은 어떻게 그리던 거였더라. 물 속에 비쳐보이는 맨발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더라. 발이 어색하니 여자애도 별로 즐거워 보이질 않잖아. 오히려 물에 젖어 버리기 싫어하는 것만 같잖아. 결국 나는 또 한 페이지의 레이어를 지워버린다.

 "아. 짜증난다."  

 아무리 그려도 쏙 들게 나오지 않는 원망스런 그림 탓에, 그 그림 때문에,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우며 그렇게 다시 한 번 혼잣말을 한다. 그리곤 괜히 공중에 발길질도 해본다. 손을 들어 침대 위로 힘주어 내려 쳐보기도 한다. 팡팡. 침대의 매트리스에서 늙은 스프링 소리만 힘없이 대답한다.

 "... 진짜 짜증난다."

 괜히 눈가가 간지러워진다. 신경질적으로 눈을 부비어본다. 몸을 뒤짚어 배게 속에 있는 힘껏 얼굴을 밀어 넣는다. 형광등 불빛이 한 가닥도 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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