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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왕과 무지개 #01~02
게시물ID : readers_258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올빼미부엉
추천 : 2
조회수 : 30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7/24 14: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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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인터넷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림으로도 그리고 있는데, 세밀한 스케치를 하고 그 것이 드러날 수 있도록 재료를 바꿀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림도 함께 올려봅니다.

20160623_180721.jpg

20160623_180706.jpg


좀더 나은 화질로 찍은 두번째 그림입니다.


대용량 이미지입니다.
확인하시려면 클릭하세요.
크기 : 1.22 MB

현재 작업중인 세번째 그림입니다.


작업을 하면서 간략한 시놉시스와 막연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그림을 구상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고, 그래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먼저 쓰면서 연작이 아닌 각각의 일러스트를 병행할까 생각했습니다.


아래는 이제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퇴고 없이 맞춤법 검사만 한터라 미숙하지만 올려봅니다.




하얀왕과 무지개



001

축축한 물안개 냄새는 아이가 숨을 내쉴 때 마다 흘러들어왔다. 아이는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커다란 나뭇잎의 보송한 솜털을 발로 쓸어보았다. 제 몸집보다 큰 나뭇잎은 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이 음침하고 이상한 숲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텔레비전에서도 이런 곳은 본 적이 없었다. 아이의 눈에 이곳은 마치 버려진 숲 같았다. 어두침침한 회청색의 하늘과 바닥에 자욱이 깔린 마른 갈색 이끼.


지면에서부터 자욱이 깔린 구름을 휘감고 자라는 거대한 나무 덩굴들은 근처의 나무보다 높게 하늘로 솟아있었다. 축축해지는 볼을 문지르며 얼마나 높은지 올려다보던 아이는 덩굴에 나 있는 나뭇잎마다 웬 문이 놓여 있음을 발견했다. 문? 웬만한 건물보다도 높은 덩굴도 이상한데 그 와중에 나뭇잎 위의 문이라니?


뒤를 흘끔 바라본 아이는 제가 있는 나뭇잎 위에도 문이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뭇잎 위 허공에 살짝 떠올라 있는 문은 어째 친근한 것이 아무리 봐도 아이의 방문이었다. 아이의 방문 패가 붙어있어야 하는 부분에는 웬 낯선 나무패가 걸려있었다.


<20>

파 라새


내 이름이잖아? 20번의 라새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무패를 지긋이 노려보았다. 20은 뭐지? 20번째 문이라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라새가 주위의 나뭇잎 위를 바라봤지만,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의 간격이 멀어서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흠. 아이가 고심하는 그때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야옹”

“망고다!” 라새가 들썩이며 소리쳤다.



아이는 나무패를 보며 고민하던 것을 잊곤 자기가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되새기며 망고를 소리높여 불렀다.



“망고야! 어디야!”

“야옹” 고양이가 다시 울었다.



라새는 망고의 울음소리가 저 밑에서 들려옴을 느끼곤 나뭇잎 밑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노란 고양이가 덩굴 기둥 저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기 가만히 있어! 지금 내려갈 거니까!” 아이가 급히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덩굴은 다행히도 두어 줄기가 서로를 휘감으며 구름을 타고 올라간 모양새라 아이가 내려오기에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라새가 있던 나뭇잎이 지상에 가까운 것도 다행이었다. 고양이 망고는 다행히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라새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순히 품에 안기는 고양이를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라새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땅으로 내려와서 보니 더욱 음침한 숲의 한가운데였다. 나뭇잎 위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근처의 까만 나무들은 대부분이 썩은 기둥이었다. 썩어서 구멍이 움푹움푹 파인 사이로 곰팡이가 수북하게 피어있는 걸 본 라새는 몸을 조금 움츠리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내려온 덩굴의 마지막 나뭇잎 안쪽으로 거대한 거미줄이 망가져 있는 모습도 모였다. 라새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아이가 괜히 투덜거렸다.

“야옹” 망고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꼬리를 휙휙 내저었다.



덩굴 위에도 숲 안에도 아무도 살지 않는 건지 작은 바스락 소리도 없이 조용한 숲에 라새와 고양이의 목소리만이 작게 울렸다. 라새는 겁이 더럭 났지만 그래도 망고가 있어 다행이라며 고양이를 좀 더 꽉 붙들었다. 망고가 불편한 듯 꾸물댔다.


라새는 차마 어두컴컴해 보이는 숲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덩굴 주변을 빙 둘러보기로 했다. 침침한 하늘이었지만 그나마 밝은 곳이라 떠날 마음이 쉽게 들지 않았다. 그 와중 발견한 것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썩어가는 표지판이었다. 라새가 발걸음을 재게 놀려 다가갔다.


오래 방치된 것 같은 나무 표지판은 마른 이끼가 자란 채였지만 다행히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소란스러운 반딧덤불, 숨 쉬는 작고 큰 나무들, 소리 나는 색깔 폭포…?”



표지판을 따라 읽는 라새의 표정이 점점 묘해졌다. 전부 이상한 지명들이었다. 심지어 숨 쉬는 작고 큰 나무들이라는 이곳은 나무는커녕 문이 달린 커다란 덩굴만 자라고 있었고, 근처에 자란 나무들은 과연 살아 숨 쉬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표지판과 덩굴을 번갈아 보던 라새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진짜 이상한 곳이네. 그래도 표지판이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사는 것 같기는 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표지판이 있는 숲의 안쪽을 보니 예전엔 말끔했을 것 같은 흙길 두 개가 길게 나 있었다. 오래된 이끼와 드러난 나무뿌리로 엉망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길 너머를 빤히 바라보는 망고를 본 라새는 저도 길 너머를 바라보며 고양이를 고쳐 안았다.


“가 보자 망고야!”



라새는 소란스러운 반딧덤불이란 장소를 향해 씩씩하게 발걸음을 뗐다. 소란스럽다면 누군가는 있겠지 싶어 한 선택이었다 



002

소란스러운 반딧덤불로 가는 길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평온했다. 뭔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던 숲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걸으면 걸을수록 작은 꽃들도 군데군데 피어있어 무서움을 한결 덜어주었다. 긴장이 조금 풀리며 라새가 망고를 고쳐 안았다. 그 사이에 팔찌에 달린 유리 구슬이 반짝이며 아이의 눈길을 끌었다. 이상한 팔찌. 라새는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던 팔찌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돌아와 참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다. 전날 밤에 미처 다 읽고 자지 못해 온종일 머리에서 내용이 어른거렸던 라새는 책가방을 집어 던지고 책을 부여잡은 참이었다. 그때 망고가 나타나 저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얼쩡이는 것을 못 본 채 했더니 심통이 났는지 책 위에 올라가 내려가질 않는 것이었다.


옆으로 밀어내도 자꾸만 올라오는 것이 저에게 신경 쓰라는 몸짓이어서 책을 읽는 걸 포기한 라새가 그걸 발견했다. 망고의 입에 물린 팔찌였다. 용케 물고 있다 싶게 두꺼운 띠에 가운데에는 큰 유리 구슬이 박혀있는 팔찌는 라새의 눈에 퍽 예뻐 보였다.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팔찌를 손목에 낀 그 순간 바람이 몰아닥치며 라새의 몸이 순간 휘청였다. 급히 침대를 붙들며 몸을 일으켜 세운 아이의 눈에는 갑자기 어두워진 방 안이 보였다. 방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를 공간이 보였다는 게 더 정확했다. 검푸른 공간에 흩뿌려진 듯 작게 놓인 빛 알갱이들이 라새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빛보다 더욱 큰 빛이 제 밑에 있었다. 바로 그 팔찌였다. 팔찌의 유리 구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라새는 손을 들어 올려 그 유리 구슬을 들여다보았다. 오색의 빛 구슬이 점점 더 밝아졌다. 바다가 일렁이듯 빛이 일렁였다. 예쁘다고 라새는 홀린 듯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빛은 폭발하듯 팔찌에서 뿜어져 나와 검푸른 공간을 밝히며 있는 줄 몰랐던 문을 향해 흘렀다. 빛줄기가 문틈을 파고들어 문 너머 어딘가로 흐르자 문 주위는 빛무리가 생겼다. 라새가 침을 꼴딱 삼켰다.


라새는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주처럼 영원해 보이는 공간은 마치 원래의 제 방바닥처럼 평평했다. 마침내 빛나는 문의 앞. 라새는 저도 모르게 문 손잡이를 붙들며 생각했다. 열어만 보는 거야. 이 와중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게 라새는 문을 열었다.



“정말 이상했지.” 회상하던 아이가 문득 중얼거렸다.



아이는 문 속의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색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다양한 색으로 부드럽게 일렁이는 그곳은 마치 색깔의 세상 같았다. 예전에 집에서 해보았던 데칼코마니가 생각났다. 그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세상의 양쪽을 잡고 붙였다 뗀 것처럼 온갖 색들이 복잡하게 섞여 흐르는 공간이었다. 손을 내밀면 어쩐지 색이 묻어나올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공간. 라새는 눈앞의 광경에 홀려 멍하게 바라만 보았고 침대 위에 앉아있던 망고가 움직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아주 짧은 찰나였다. 망고는 라새가 채 제지하기도 전에 그 이상한 세계로 뛰어들어갔다. 아이가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자 살짝 뒤돌아보기는 했지만, 그것이 다였고, 고양이는 망설이지도 않고 문 너머의 저 세계 속을 달리는 것이었다. 라새에게도 망설일 틈이 없었다. 조금 주저하는 듯하던 아이도 문 너머로 뛰어들었다.



그것이 아이가 거대한 나뭇잎 위에서 눈을 뜨기 전 있었던 일이었다. 라새는 망고를 내려다보며 부루퉁하게 입을 놀렸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야옹” 망고는 아까처럼 그 말을 무시했다.



라새는 다시 걷는 데 집중했다. 어느샌가 흙길은 점점 정돈되어 길다운 길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버섯도 피지 않는 곰팡이 범벅의 죽은 나무들은 자취를 감추고 건강해 보이는 나무들이 자리를 대신했으며 길바닥에 지나다니는 작은 개미들의 모습에 라새는 퍽 안심한 눈치였다. 아이는 콧노래까지 조금 흥얼거리며 걷다가 갑작스레 끝난 길에 당황했다.


내려가는 언덕길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뚝 끊어져 있는 절벽으로 길이 나 있었던 것이다. 라새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나왔다.



“다른 길로 갈 걸!”라새가 소리를 질렀다.

“으악!” 웬 비명이 뒤따라 터졌다.



난데없이 들리는 비명에 라새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놀란 것도 잠시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누구 있어요?” 라새가 물었으나 답이 없었다. 아이는 다시 소리쳤다. “누구 없어요?!”

“조용히 해!” 누군가가 대답했다.



라새는 입을 합 다물고는 대신 소리가 들렸던 쪽으로 조르르 달렸다. 분명 이쯤에서 누가 날 봤던 것 같은데. 고개를 휘휘 돌려 확인하는 라새의 앞에 나타난 것은… 라새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적극적으로 나서며 샅샅이 주위를 훑던 모습과는 반대로 아이는 슬그머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품에 안은 고양이를 들어 올려 얼굴을 반쯤 가리는 것이 완연히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말했다.



“너 뭐야? 되게 이상하게 생겼네.”

“네가 더 이상하게 생겼어!” 라새가 발끈해서 답했다.



라새는 그를 노려보며 찬찬히 살폈다. 코도 없이 반질반질한 얼굴에, 이마엔 얼룩덜룩한 무늬의 더듬이도 나 있고 심지어 날개도 달려 있었다. 아주 까만 피부에 흰자 없이 반짝거리는 연보랏빛의 눈은 앞이 보이기는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라새가 명백하게 경계하는 모습으로 노려보자 그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야, 뭘 그렇게 노려봐.”

“넌 누구야? 이마엔 왜 그런 게 붙어있어? 왜 코도 없어?” 라새가 다다다 쏘아붙였다.

“너 곤충족 처음 봐?” 그는 황당한 듯 되물었다.



라새는 물론 곤충은 알았지만 곤충족이라는 건 들어보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난 하늘보라야. 반딧불이고. 넌?” 자신을 하늘보라라 말한 그가 되물었다.

“라새. 사람이야.” 라새는 순순히 대답하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자기소개에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기소개할 대상 모두가 사람이고 그 사람들도 자기가 사람이란 걸 아는데 굳이 사람이라고 말을 할 필요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반딧불이라는 하늘보라의 말에 라새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 거짓말. 그러나 하늘보라의 겉모습이 사람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라새도 알고 있었다.



“사람?!” 라새의 생각을 끊으며 소리친 하늘보라가 제 입을 턱 하고 막았다.

“그게 왜?” 라새가 물었다.



하늘보라는 가까이 다가와 라새의 어깨를 짚었다. 라새는 순간 흠칫하며 놀라 숨을 들이켰지만 이미 잡힌 후라 빳빳이 굳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하늘보라가 소리를 낮춰 속닥거렸다.



“너 정말 사람이야?”

“응.”



라새의 대답에 하늘보라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연보라색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하늘보라의 몸에서도 날개에서도 연보라색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을 보며 라새는 그가 반딧불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늘보라는 아이의 구석구석을 관찰하더니 천천히 라새가 안고 있는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설마, 정말… 네가 사람이라면 이 고양이가…”

“망고?”



왠지 감격한 듯한 모양새에 라새가 의아해하며 망고를 하늘보라의 얼굴 가까이 내밀자 지루한 듯 안겨 있던 망고는 그의 얼굴을 앞발로 툭 쳤다. 하늘보라의 눈이 재빠르게 깜박거리며 그에게서 나오는 연보랏빛의 불빛도 함께 점멸했다.



“빨리 모두에게 알려야 해!” 나직하게 소리친 하늘보라가 급히 아이의 등을 밀었다.

“에?! 어디 가!” 당황한 라새가 떠밀리면서도 외쳤다.

“쉿! 마을로 가야 해!” 하늘보라는 계속해서 소리를 죽인 채였다.

“왜 떠들면 안 되는데?” 라새는 슬그머니 소리를 죽여 물었다.

“나 여기 있는 거 들키면 혼나. 그러니까 이따가 내가 말할 테니까 그대로 말해야 한다?”



하늘보라는 속닥거리며 라새와 함께 길이 끝나는 절벽 위에 섰다. 그리곤 라새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끌어안고는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으아 아악!” 놀란 라새가 비명을 냅다 질렀다. 망고가 심기 불편한 듯 콧잔등을 씰룩였다.

“야! 조용히 하라니까!” 라새의 비명을 잠재운답시고 하늘보라도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이미 현실이 된 후였다. 허공에서부터 들려오는 아이의 우렁찬 비명과 하늘보라의 외침에 이미 저 밑의 마을에서 하나둘 반딧불이 켜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빛을 발견한 하늘보라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졌다.



“망했다…” 힘없는 목소리였다.

“하늘보라!” 동시에 아래서 누군가가 외쳤다.



저 밑에서 노성의 목소리가 울리고 하늘보라는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진 것처럼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그가 내뿜고 있던 빛이 사라질 듯 약해졌다. 라새는 모르는 일인 척 눈만 데구륵 굴리다가 망고의 뒤통수에 얼굴을 조금 숨겼다.


빨리 모두에게 사실을 알리겠다는 마음에 빠르게 하강하던 하늘보라는 조금이라도 허공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속도를 낮추며 천천히 날았다. 그러나 결국은 그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는 이 앞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땅에 도착한 하늘보라는 품에 안긴 라새를 내려주고는 최대한 처량한 모습으로 터덜터덜 자신을 기다리는 이 앞으로 느리게 걸어갔다.



“내가! 저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그는 하늘색 불빛을 강하게 내뿜으며 노호를 질렀다.



그러나 훈계하는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하늘보라는 최대한 덜 혼나고자 반성하는 척 고개를 숙이고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중이었다. 그의 허리춤에 간신히 오는 라새의 눈엔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어린 라새의 눈에도 그 모습이 자못 한심하게 보여 라새는 자신만만하게 콧방귀를 뀌고는 앞으로 나섰다.



“아저씨.” 사람이 아니니 몇 살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은 되지 않았지만 라새는 어림짐작하며 불렀다. 거듭 화를 내려던 그가 앞으로 나서는 작은 형체에 시선을 흘끗 내렸다. 라새는 자신도 조금 겁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못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라새야. 그리고 사람이야.” 라새는 아까 했던 것처럼 제가 사람이라는 것을 덧붙였다.

“…사람…?” 그는 어안이 벙벙한 말투로 되물었다.

“응! 그리고 얘는 망고야!” 라새는 제 품의 고양이도 슬쩍 내보였다.



그는 하늘보라에게 화내던 것도 잊은 것 같았다. 벼락 맞은 것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그 모습에 되려 라새가 당황하며 하늘보라를 슬그머니 올려다보았다. 하늘보라는 자신의 눈을 짧고 빠르게 반짝이며 은근슬쩍 라새를 칭찬했다. 용기를 얻은 라새가 다시 제 앞의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몸에서 나오는 하늘빛이 어지럽게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간신히 소리를 만들었다.



“사람…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는 듯한 말투였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분명 숨쉬는 작고 큰 나무들에서 나타날 거라고 했잖아.” 하늘보라가 눈치를 보며 슬쩍 덧붙였다.



그는 하늘보라를 혼내던 중이었던 것도 잊은 듯이 하늘보라와 라새 그리고 망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의 눈 속의 빛은 깜박이고 있는지 분간 가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점멸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터지듯 소리를 내질렀다.



“모두 기상!” 그의 목소리가 마을 전체에 구석구석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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