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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유토니움 가문의 세 딸들 [01]
게시물ID : readers_258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네덴
추천 : 0
조회수 : 2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25 19:06:44

 

시험 감독




 "아버지는 정직해요?"



 활짝 열린 창가, 연구에 참고를 구하려고 조이스 캐럴 오츠의「좀비」를 읽던 도중 로제가 다가오더니 이렇게 물었다. 종종 자신의 양심을 검사하는 사람이라 하지라도 대답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딸의 난제는 어떤 성인도 풀기 힘든 난제였으리라. 나는 당황했다.



 "로제, 네가 무얼 알고 싶어 하는지 나는 모르겠구나."

 "불현듯 떠올라서요. 로제는 우리 아빠가 정직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어요. 이건 아빠가 하는 일 처럼 무언가를 집어넣고 측정하고 관찰하는 그런 게 아니라 답을 얻을 수 없었어요."



 음, 나는 턱을 괴며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레이첼이 끼어들었다.



 "부모의 도덕성에 관한 것이네요. 이 기회에 아버지도 깨달으셔야 할 거에요. 우리가 집 안에서 마음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고 있으니까요."



 레이첼은 평소 성격과 같이 날카롭고 냉소적인 태도로 그렇게 주장하였다.



 "맞아, 루비도 보고 있어."

 "너는 빨리 카드나 내."



 루비가 해맑게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지만 금새 레이첼에 의하여 저지당했다. 루비와 레이첼은 카드게임을 하고 있던 도중이었던 것 같다.



 "아빠, 아빠는 정직해요?"

 "그건 질문할 만한 문제가 아닌 것 같구나 로제. 로제가 나를 알고 있지 않니. 유토니움이란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 딸 로제가 잘 알거라고 믿는다. 내가 정직한지 아닌지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로제 네가 판단해야만 해."



 로제는 들고 있던 동화책을 제자리에 꽂아넣고는 평소완 다르게 진지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하지만 난 아버지가 연구실에 있을 때 무얼 하는지 모르는 걸요."


 "이런, 로제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믿음이 정말로 멋지구나. 내가 집에서는 신사처럼 행동하지만 연구실에는 미친 광인처럼 행동할 거라 생각하는거니?"


 "아버지, 그건 잘못된 논리, 합리적인 추론이 아니에요."



 레이첼은 또 다시 끼어들었다. 그녀는 보드 판에 조커를 내려놓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중적인 생활을 해도 아무도 모를 수 있어요. 로제 같은 어린아이가 그런 것 까지 조사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저는 지루한 궁전에 있을 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해 모두 알고 있어요. 세상엔 깨끗한 사람이란 순수한 불순물 만큼이나 희박하다는 것을요. 아버지는 제가 뭘 말씀하시는지 알고 있으시겠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 딸이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본질을 꿰뚫는 그녀의 말엔 빈틈이 없다. 마치 무언가를 초월한 존재를 마주하는 듯 했다.



 "아버지, 어서 대답해요. 로제가 기다리고 있어요."


 "난 그저 과학자야. 거기에 대해서는 의혹이 있을 수 없어."



 로제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종이와 크레파스를 가지고 와서는 내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적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거니 로제?"

 "비밀이에요. 레이첼의 말대로 아빠는 로제가 하는 모든 행동을 알 수 없어요. 아빠는 이제 연구실로 들어가셔야 되요. 이건 나와 루비, 그리고 레이첼이 정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뭔가 이상하게 해석을 한 것 같다만… 좋아. 난 조금 자둬야겠어. 원활한 두뇌회전을 위해서 말이지."


 "루비, 레이첼 다들 이리로 모여 봐."



 나는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연구실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세 딸들은 나의 자질에 대하여 공동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루비는 패배하기 직전의 카드게임을 무효화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레이첼은 그런 카드게임의 승패 따위 보다 로제가 던진 문제의 해결에 더욱 흥미로워 보였으니까. 나는 연구실로 들어가기 직전 루비와 시선이 마주쳤다. 루비는 즐겁다는 듯이 로제가 가져온 종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오른쪽 눈을 찡끗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듯이.


 '걱정하지마요 아빠, 모든 것이 잘 될거에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올해로 여름이 지나간 것을 네번 밖에 보지 못한 내 딸들,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는 첫째 로제, 뭐든지 즐거우면 그만인 둘째 루비, 속을 알 수 없는 존재인 막내 레이첼까지. 그녀들 덕에 내 연구의 성과는 별로 진전된게 없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사는 것이 무미건조하지 않아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분 좋게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한 삼 십분 쯤 잔 뒤 일어나 연구실 밖을 나와보니 레이첼을 제외한 모두가 잠이 들어 있었다. 레이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로제가 가지고 왔던 종이를 들고 졸레졸레 나에게 다가왔다. 그 종이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모두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답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되었다. 무사히 그녀들의 시험에 통과한 것이다. 물론 루비가 많이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 사실에 나는 정말 고맙게 생각하며 오늘 저녁엔 그녀들이 좋아하는 치촐리타를 해주기 위해 오랜만에 마을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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