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시소를 탔다. 그 날은 어쩐지 놀이터가 텅 비어있었다. 이유없이 억울해진 나는 홀로 헛발질을 하며 시소를 탔다.
혼자 타는 시소는 쓸쓸했고, 저물어가는 노을이 야속하기만 했다.
멀리서 날아온 실바람이 밥 냄새를 실어왔을 때 이제는 기억 조차 희미한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셨다.
"아빠. 오늘 아무도 없어." 입이 댓 발 나온 나를 보며 아버지는 조용히 웃었다. 그러곤 말 없이 시소에 올라타셨다. 그 날, 시소를 탄 것 외엔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
다만, 내가 만족 할 만큼의 시간을 보냈던 것은 확실하다. 어느 순간 부터 보이지 않던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간 것이였고,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올 수 있었던 건 지독했던 IMF의 결과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때 쯤 나는 어른이 되어있었고 아버진 이미 하늘로 가버린 뒤 였다.
아직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내가 어른의 짐을 지고 산다는 것이 지치고 괴로울 때, 나는 그 날의 시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