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나는 한국의 열네 살
게시물ID : readers_258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니케쿠쿠
추천 : 1
조회수 : 3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28 02:33:15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나는 한국의 ㅇ살' 이라는 시리즈를 구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트친분에게 보여드릴 글을 고르다가 떠올라서 오유에도 올려 볼게요..

부디 즐거운 10분 되시길 바라요 :D



--



 청소를 끝내고 나오자 이미 해는 지고 없었다. 갈수록 해가 짧아지는 요즘, 해가 뜨기 전 등교하고 해가 진 후 하교하는 일상은 동호의 기분을 착실하게 깎아먹고 있었다. 겨우 열네 살의 인생에 이렇게 빛이 없을 수 있을까? 동호는 아무것도 없는 주머니에 시린 손을 찔러 넣었다. 그래도 걸어서 십 분이면 통학이 가능하다는 것은 맘에 들었다.

 “아들, 늦었네? 요즘 왜 이렇게 늦어?”
 “아, 주번이라니까!”

 거짓말이었다. 출석 번호 순서대로 이번 주 청소를 맡은 놈들이 일진들이라 동호가 대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사회가 아름답고 평등하다는 생각은 없어진지 꽤 되었으나, 불평까지 온전히 삼켜 없앨 수 있을 만큼 동호는 성숙하지 못했다.
 동호는 간만에 살가운 목소리를 내는 엄마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곤 아차 했다. 아직 때가 덜 묻은 양심도 일조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뒤이어 다가올 상황에 대한 불쾌한 확신이 더 큰 이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잔소리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그만 게 느이 아빠 닮아서 큰소리만 늘지, 비싼 돈 내고 학원 보내고 비싼 밥 멕이고 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내가 팔자에도 없는 결혼을 해서, 아이고 세상에.

 “알았어, 알았어요. 이번 주는 내내 늦을 거예요. 나 갈게요.”
 “밥은 먹고 가야지!”

 엄마의 째지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동호는 가방에 책만 바꿔 넣고선 교복차림 그대로 쫓기듯 다시 집을 나섰다. 배는 고팠지만 밥 먹는 내내 잔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입덧이라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호는 문을 닫고 나선 순간 주머니에 동전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 천원만 꺼내 오면….’

 문 앞에서 서성이던 동호는 잠깐의 고민 끝에 계단을 내려갔다. 그만큼 잔소리는 듣기 싫었다. 한 마디만 더 듣는다면 먹은 것도 없지만 분명 체할 것 같았다.
 교복은 비싼 주제에 반의 반 값도 안 하는 싸구려 패딩보다도 추위를 완화시키지 못했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바람은 동호의 볼과 목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빈속이라 더욱 추웠지만 학원차가 오기까지는 아직 십 분도 더 남았을 것이다. 암만 다녀도 점수에 영향도 없는 학원 따위 안 다니면 좋을 것을, 부모님은 절대 그렇게 생각 하지 않기에 그만둔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거기 학생! 잠깐 이리 와 봐!”
 “네? 저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니 뒤에서 붕어빵을 굽던 아저씨가 동호에게 손짓을 했다. 동호는 주위를 살피고선 학생이라 할 만한 사람이 자기뿐인 것을 확인했다. 붕어빵 아저씨는 연신 손을 크게 까딱이면서 동호를 재촉했다.

 “저요?”
 “그래. 아이고, 춥지? 학생은 아직도 집에 안 들어가고 뭐해?”
 “그야 뭐…, 학원 가야죠.”

 동호는 귀찮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심심한 아저씨들 말상대야 뻔한 것이다. 그러나 동호의 뚱한 마음과는 반대로 붕어빵 기계는 따뜻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동호의 눈길은 김을 내는 갓 구운 붕어빵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씩 웃으며 붕어빵을 집어 봉투에 넣었다.

 “오늘 장사는 접으려고 하는데, 이거 날씨가 너무 추워서 사람이 영 코빼기도 안 비치거든. 이거 싸 줄 테니 가서 먹어.”
 “네? 저 돈 없어요.”

 동호는 이유 없는 친절에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길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도 주워 본 적 없는 동호는 무의식중에서도 행운이란 것엔 어떤 가시 같은 것이 숨어 있을 것이라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호는 세뱃돈조차 자기 주머니에 온전히 넣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벙긋벙긋 웃으며 붕어빵 세 개를 넣은 종이봉투를 건넸다.

 “어차피 아무도 안 먹으면 버려야 돼. 아저씨는 오늘 붕어빵 열두 개는 먹었거든. 아, 그래도 방금 구워서 아직 따뜻하다. 허허.”
 “아, 감,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보통 모르는 사람의 호의는 거절하고 보는 동호였지만, 점심시간 이후로 여섯 시간도 넘게 굶은 배에선 솔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결국 붕어빵 봉투를 받아 든 동호는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돌아섰다. 어느새 다가온 학원차가 빵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 저는 학원 가야 해서. 다음에 봬요!”
 “그래, 그래. 공부 잘 해, 학생.”

 동호는 꾸벅 인사를 해 보이곤 학원차로 뛰어갔다. 손 안에서 붕어빵은 따끈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다음에 보면 천원 어치라도 팔아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동호는 붕어빵을 꺼내 입에 물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12인승 봉고차에 타고 있는 학생은 동호 혼자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맨 뒤 구석 자리에 몸을 박아 넣으면서 동호는 붕어빵 세 개가 녹듯이 사라질 동안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학원에서는 학교에서처럼 마음껏 졸 수가 없었다. 엄마가 학원비를 낼 때마다 입에 달고 사는 힘들다 소리가 한 달 사십 만원어치의 무게를 동호에게도 지우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 번째로 반복하는 중학교 2학년 선행학습 과정은 거의 외우다시피 한데다가, 겨울방학 동안 한 번 더 공부할 것이 뻔했지만 지루하다고 잘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요즘은 학교보다 학원의 체벌이 더욱 심하기도 했다.

 “자, 숙제 다들 해 왔지? 답부터 맞춰 보자. 이동호부터 1번.”
 “네?”

 동호는 순간 목덜미가 선뜻한 것을 느꼈다. 밤중에 골목에서 귀신을 만나도 이보다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동호는 어제 내 준 숙제에 관해선 내내 까먹고 있었다.

 “숙제 안 해왔어? 이건 오늘까지 꼭 해야 된다고 했잖아? 이거, 이거…. 다들 책 펴 놔봐. 숙제 또 안한 사람 있어?”

 얼결에 동호는 숙제검사를 촉발시킨, 일종의 고발자가 되어버렸다. 뒤통수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을 맞으며 동호는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에 시달렸다. 열 한명이 속으로 자신을 욕하는 것이 다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까 먹은 붕어빵 덕분에 빈속에 욕먹는 서러움은 면했다는 점이었다.

 “다섯 명이나 안 했어? 열두 명 중에? 너희 상급반이야, 상급반. 엘리트반 애들에 비하면 성적차이도 확실히 나는데, 공부도 안하면 어떡하니? 학원에서 십 등 안에도 못 드는데 학교에서 백 등 안에 들 수 있겠어? 너흰 비평준화라 고등학교도 성적순으로 가는 애들이 공부를 이렇게 안 해? 조금만 뒤쳐져도 연합고사 공부할 시간도 없다고 몇 번을 말하니?”

 동호는 책상 다리라도 뽑아 귀를 쑤셔 막고 싶은 생각을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귀를 막고 싶은 생각을 참고 나니 저 선생님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마 이 생각은 지금 상급반에 앉아 있는 열두 명이 모두 같이 하고 있을 것이었다.

 “너희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말 했니, 안 했니? 수능도 매년 어려워진다고 계속 말했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선행학습 다 끝내야 따라갈 수 있다고 몇 번을 말하니? 그래서 스카이 쳐다 볼 수나 있겠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다행 중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수학을 맡은 여선생은 매를 들기보다는 히스테릭한 잔소리를 끝없이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수학 선생님의 잔소리는 오 분을 기점으로 보통 끝났으나 가끔은 본인 사생활에 관한 푸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오 분 동안 잔소리를 통해 대학교 4년 과정까지 간접적으로 전부 체험하게 된 열네 살짜리들은, 재수가 없으면 이후 취업 준비와 직장 생활까지의 고통도 겪게 되는 것이다.
 동호는 눈앞에 놓인 빈 페이지들을 보면서 머릿속의 생각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시간은 일 초씩 꾸준히 흐를 것이고, 언젠간 저 잔소리도 끝날 것이다. 다음 교시가 찾아오는 것처럼 십 분짜리 쉬는 시간도 반드시 다가올 것이었다. 신기루 같은 행복감을 억지로라도 있다고 믿지 않으면 무력감에 잠기는 몸을 가누기가 참 힘들었다.


 학원은 열한 시 반에 끝났다. 올 때 처음으로 차를 타는 동호는 집에 갈 땐 마지막으로 내린다. 딱히 친구랄 사람이 없는 탓에 한 명씩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며 내리는 학생들 속에서 동호는 조용히, 그림자처럼 앉아 있었다. 동호를 제외한 모두가 내리면 열두 시가 약간 넘었다. 그러면 동호는 누가 있을 때엔 절대로 앉지 않는 문 옆 자리로 나와 앉는다.
 처음엔 기사 아저씨가 혹시나 자기가 있다는 것을 까먹을까봐 앞으로 나왔지만 요새는 아무도 없는 넓은 차 안에서의 드라이브가 퍽 즐거워졌다. 동호는 창문을 살짝 열어 바람을 맞았다. 히터로 불쾌하게 달궈진 동호의 양 볼에 차가운 바람이 세수하듯 스쳤다.

 “안녕히 가세요.”
 “어어. 그래.”

 형식적인 인사를 마친 동호는 교복 옷깃을 여미며 집으로 들어갔다. 내일 아침 동호보다 일찍 출근할 아빠는 이미 잠들어 있을 것이었다. 동호는 아직 ‘사랑과 전쟁’을 보고 있는 엄마를 보며 부러운 한숨을 삼켰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어 독립하고 싶은 동호의 욕구엔 잠깐이나마 저렇게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제일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들 왔네? 밥 안 먹고 가서 어떡해.”
 “어, 괜찮아요. 그냥 잘래.”
 “냉장고에 LA갈비 있어. 구워 줄까?”
 “아니, 됐어요.”

 동호가 재차 거절하자 엄마도 굳이 더 권하지 않았다. 슬슬 나이가 들어가는 동호 엄마에게, 이젠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밥을 먹일 만큼의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동호는 문득 엄마의 눈에 아프지 않게 들어가기엔 자기가 너무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이런 생각이 잠깐이라도 든 날이면 그 날은 걷잡을 수 없이 피곤하고 외로워지기 마련인데도.
 자연스럽게 다시 텔레비전 속으로 빠져든 엄마를 뒤로 한 동호는 자기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켰다. 다 본 참고서만 가득한 책장, 조그마한 달력, 2년 묵은 컴퓨터, 그리고 침대와 책상. 암만 봐도 개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방이었다.


 “으음….”

 컴퓨터를 켤까 말까 고민하던 동호는 결국 침대에 걸터앉아 교복을 벗어던졌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열두시 반이었다. 대충 씻고 나면 컴퓨터를 안 켜도 한 시는 될 것이었다. 만약 게임이나 좀 하다가 두세 시에 잠들고, 내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날 생각을 하니 정말이지 끔찍했다. 게다가 엄마의 잔소리는 분명 딸려올 것이었다.

 “아, 모르겠다.”

 동호는 머뭇대다가 결국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화장실로 향했다. 어쨌든 책상 위에 먼지 쌓이듯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이것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자. 동호는 하품을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눈 밑으로 그림자처럼 길어지는 다크서클이 살을 당기는 것만 같았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