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해철이 디제이하는 라디오에 이런 사연이 온 적이 있습니다.
어떤 소녀가 보낸 사연이었는데요 그녀의 오빠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오빠의 나이는 이십대 초반이었던 거 같아요.
병명은 기억이 안나네요. 어쨌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당연히 입원해서 항암 치료를 받고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고민하던 오빠는 입원을 거부하고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답니다.
소녀는 신해철에게 그런 오빠를 설득해달라고 사연을 보낸거였어요.
신해철은...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러웠지만 망설임 없이 힘있는 말투로
'사람이 자신의 죽는 날을 안다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축복일 수도 있다.
자신의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의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면에서 말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요지의 말이었다.
'오빠에게 여행을 허락해주세요.
그가 마지막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나는 십수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신해철의 저 말들을 기억한다.
솔직히 문장들은 전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했던 말들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의 죽음이 원통하다.
그가 방송을 통해 이전에 가족들에게 전한 유언장이 있다지만
그가 소녀의 오빠에게 허락되길 원했던 그 시간을 갖지 못하고 떠난것이 나는 너무 원통하다.
그가 뮤지션으로서 또 디제이로서
나와 내 세대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준 그 수많은 선물들을 생각하면
그에게는 당연히 그 행복한 시간이 주어졌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게는 마왕 이전의 음악도시 시장이었던 해철이형.
부디 좋은 곳에서 영면하세요.
비겁하지 않게 살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