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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가족회사에서 있었던 사이다 썰들12
게시물ID : soda_25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마핱
추천 : 140
조회수 : 21707회
댓글수 : 42개
등록시간 : 2016/01/16 2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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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왔습니다.
중국에서 6개월, 부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업무가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일찍이 작성했던 글에 본인의 동료와의 내기가 있었지요. 동료는 전형적인 한국형 사회초년생의 모습이었습니다.
 
제 동료. 불의를 당해도, 꾹 참고. 윗사람들 시키는 일에 고분고분 말을 들었죠. 저 역시도 사실을 그렇게 행동하는게 정상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걸 좋아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동료도 그사람들이 없을때는 과연 얘가 그 순둥순둥하던 그 애가 맞나? 싶을만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는 했습니다. 결국 저나 동료나 호불호가 같은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럼 왜 참아야 하는가.. 아마도 그게 회사에 가장 오래 살아남을 확률이 높기 때문은 아닐까 당시에 생각했습니다. 동료들이 왜 참고 있냐는 물음에
공통적으로 하던 대답이기도 했지요.
 
본인의 성격상, 업무관련 실수로 욕을 먹는다던지, 실력이 없어서 무시를 당하는 부분은 언제나 달게 받아들이고, 스스로도 납득을 합니다.
그 와중에 나오는 인격적인 모독이나, 욕이 나온다면. 혼내는 사람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 봅니다. 사실 성에 차지도 않습니다.
가장 괴로운건 그사람 때문이 아니라 밥값을 못하는 스스로 너무 부끄러워서 괴로울 것입니다.
 
상사가 있는데, 업무에대해 많이 알려주고 가르쳐 주면서 푸대접을 한다면, 스스로 참아낼 가치는 있겠지요. 욕먹는 대신 배우니까. 인생은 딜이죠.
업무는 알려주는거 없으면서, 이거 모르냐 저거 모르냐. 잔소리만 해대는 사람. 본인은 당신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있는데, 나한테는 주는거 없는상사.
저는 참지 않습니다. 업무도 다르고, 가르쳐 주는것도 없는 다른팀 상사. 밟아야죠. 자근자근...
 
자... 그럼 자근자근....다시 가보죠. ㅎㅎ
 
과거 본인이 쓰레기이던 중학 시절을 상상해보면...모든 반에는 한명씩 입담이 좋거나, 내가 볼때 참 재밌게 사는거 같은 아이.
근데 나랑은 안친해. 그런 애들보면 은근 속이 끓어오르고, 괜히 시비 걸고 싶어졌음. 다시 말하자면 배.가.아.팠.음. 내가 짱인데, 왜 쟤가 더
좋아 보이지?? 그런 애들은 반애들 겁줘서 따돌림을 시켜도 밖에서 더 잘놀았음. 그건 정말 배가 아픈일이었음. 반에서 짱인 본인도 결국 걔네들과
타협을 해야했음.
 
아마 제조팀은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나와 정신 연령이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해보았음. 하긴. 당시엔 나도 못배웠으니까..
못배웠던 사람은 못배운 사람을 알아보는 법임.
 
그래서 오히려 본인은 그 힘든 중국생활을 매우매우 즐겁게 보내려, 그들에게 즐겁게 보이려 노력했음. 대놓고 싸우는거 보다,
그러는 편이, 모자란 놈들에게는 더욱 큰 고통이 될것이라 믿었으므로...개는 개를 알아보는법...
 
중국에서 추석을 보내고, 크리스마스가 슬슬 다가왔음. 
아침에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는데, 제조팀 대리들이 우리회사 따거 한명을 붙잡고 얘기를 하고 있었음.
 
"어...진티엔 완상...워먼 취 클럽. 이치 취 클럽." (더듬더듬 오늘저녁 뭐 클럽가자. 같이가자 하는 소리)
 
당연히 본인의 숑디인 중국직원은 단 칼에 거절.
적을 알아야 전투에 이길 수 있는법. 몇달동안 그들의 일과를 관찰해본 결과, 본인을 따돌리고 당신들이 할 수 있던 일은 매우 적었음.
퇴근하면, 다같이 식당에서 삽겹살에 맥주와 빠이주를 섞어먹기. KTV가서 놀기. 발마사지 가기. 저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음.
동관의 문화가 100으로 친다면, 그들은 10%의 문화도 즐기지 못하고 있던거임.
 
반면 본인에겐 이런 저런 이벤트가 많았음. 한국의 여자친구가 교회 오빠와 바람나서 깨진건 제외하고...
중국에서 당시 비자로 1달이상 체류할 수가 없었음. 다른 나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야함.
당시 출장자들은 심천을 통해 홍콩으로 나갔다가 다시 입국비자에 도장을 받고 중국으로 들어갔음.
 
그 와중에 본인은 중국에 처음 도착한날 본인을 등처먹은 택시기사를 만나게 된거임.
당시 본인을 못알아보고 웃고있길래
 
나: "어이 꺼거. 나 기억안나? 4개월전에 광저우 공항에서 내등 처먹었지? 기억안나?"
 
택시기사: "헐...그때는 중국말 못했었는데? 이봐요 형님. 다 지난 일이니까 함 봐줘요. 돈은 돌려드릴께."
 
나: "돈은 됐고, 나를 무사히 데려다 준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해.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음료나 한잔합시다. 내가 살께."
 
당시 나는 중국에 너무너무 호감을 가진 상태라.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음. 사실 홍콩 갔다 바로 돌아오면 시간은 남는데
할일이 없음. 심심함. 그래서 같이 놀았음. 택시기사는 본인을 태우고 심천을 지나 다시 호텔로 돌아왔음.
택시기사는 본인과의 대화를 통해, 본인이 생각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평가와,
자신을 용서해주고 오히려 고맙다는 얘기를 들은후로, 본인의 넓은 도량(?)에 반해 또하나의 숑디가 되었음.
 
그동네 택시기사들의 식사모임에 초대되어 한궈 숑디로 소개를 받았고, 택시기사들과 친분을 다졌음.
특히 본인이 중국에 들어온 첫날 등을 처먹었고, 4개월후에 다시 만났다는 얘기에 중국 택시기사들이 무척 재미있어 했고,
당시 중국말 하나도 못하던 본인이, 자신들과 이야기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대단하다고 여겼음.
 
택시기사들: "그래 형제. 형제는 중국이 좋아?"
 
나: "좋으니까 중국말 하고있잖아~"
 
거기서도 으레 하듯이 중국의 현 상황과, 당시 신장위구르에서 쿤밍 대학살이 일어났을때인데, 제 3국의 사람으로써 바라보는
시각.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함께 얘기하며 친분을 다졌음.
 
그뒤로 본인은 중국에서 돈내고 택시를 탄적이 없음. 항상 무료봉사였음. 퇴근하고 호텔에 있으면, 본인의 숑디가된 택시기사가 호텔에
자주 찾아왔음. 본인이 공장에서 어떻게 생활한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본인을 많이 챙겨주었음. 새벽에 같이 동관을 벗어나서
같이 드라이브를 가거나, 동관안에 여러 지역. 남청, 동청, 완쟝 등등 유명지역 명소들을 구경시켜 주었음.
 
저녁에 택시기사와 드라이브 가는건 무척 기분좋았음.
 
또하나, 중국에서 여자친구를 새로 사귀었음. 화장품 샵에서 일하던 친구인데. 너무너무 예뻤음. 어차피 중국이니까 대담해져서.
같이 편의점에서 레드불이나 한잔 하자고 꼬셨음. (중국인은 커피를 안마셔서....) 그리고 같이 밥도먹고, KTV도 가고.
본인보다 노래를 잘부르는 일반인 여자는 그때 처음 봄..
21살 정도로 봤었는데, 본인보다 연상인건 함정. 진짜 개동안이었음. 미친 동안이었음. 본인이 헌팅한게 아니고 헌팅 당한거임.
 
연장자의 노련함에 완전 말려들었음.
 
교통이 프리패스로 뚫린뒤로...
본인은 동관을 훤히 꽤뚫게 되었고, 택시기사들이 발이 넓다보니 여러 식당 사장들이나, ktv사장, 영화관 사장, 술집 사장들을
알게되었음. 점점 동관의 마당발이 되어버린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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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쉴게요. ㅎㅎ 저런 일들은 참 제약된 시간안에서 벌어졌지요. 대부분 저녁 9시 후에 벌어진 일들이라.
그래서 당시에 단 하루라도 휴식하고싶은 욕구가 간절했던거 같네요. 할 수 있는일이 너무나 많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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