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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왜 말을 듣지 않느냐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무서워서
더 깊이 잠든 척했다,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그가 원하면 나는 편히 쉴 수 없었다.
네가 한 번 혼나 봐야 알겠구나!
머리채가 끄집어진 듯 벌떡 일어나졌다.
그리고 맨발의 잠옷 바람으로 정월 야산에 올라
얼음 이빨이 돋친 계곡을 깨뜨려
시퍼렇게 찬물을 퍼 온몸에 끼얹었다.
그만, 그만요! 목 놓아 외치며
정신 차려봐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몸은 저절로 움직였고, 그건
신을 따르지 않아서 받는 벌이었다.
신이 나를 조종하여 말 좀 들으라 경고한 거다.
제발, 설경 한복판에 웬 미칀놈이란 말이오.
옛사람이시여, 이 길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 거 아입니까?
그런데도 의식이 흐려갈라치믄
신이 눈앞에 서 있어 다시 일으켰고
또 찬물을 붓고,
한월寒月도 제 춥다고 구름 덮어가 잠든 밤에
문득 깨고 보니 어마한 몸살이 죄여왔다.
마음에 냉괴冷塊가 생기고
이길 수 없는 열병이 오리라,
생각했다.
뭣이 닿은 것인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어머니셨다.
시골에서 오시자마자 마당에 소금을 뿌리셨고
나는 그 해 낫지 못할 열병이 깊었다.
밤낮도 모르게 몸져누워
입술은 말라 가고
그 옆에 신이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병 주고 약 주시는 겁니까...
그러다 죽어서도 편치 못한다.
제가 살아서도 편치 못할 겁니다...
결국 각혈을 토했고
이길 수 없는 병세가 더 깊어 지리라,
생각했다.
어머니, 전에 소금은 왜 뿌린 거예요?
말이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네게로 가야겠지 싶어 도시에 오니
어떤 사내 셋이 길을 묻길래
무슨 사정인지를 듣는데
꼭 우리 아들 사는 곳 말하는 거 아니냐
미쳤지, 의심도 못 하고 길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놈들을 뒤에서 보니 다리가 안 붙고
가슴이 뻥 뚫려 있는 것이라
그래서 바로 밤차를 타고 왔단다.
아들? 아들! 왜 그러냐, 정신 차려라, 해호야, 아들아!
나는 소리도 낼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고
혼이 몸 밖에 떠 있었다.
어미가 우는 걸 신과 함께 내려다본다.
네 팔자를 정녕 불효로 여기거든
죽어서 더 큰 불효할 거면
차라리 살아서 불효자 죄를 갚는 게 낫지 않겠느냐.
요즘이 어떤 시대인지 아시잖습니까...
사람들이 당신을 믿지 못하고 나를 미친 자라 부를 것입니다.
어머니,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도사님을 불러주셔요.
그리고 머잖아 큰 굿을 치르며 각오했다,
나는 나의 이 끔찍한 대를 물리지 않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