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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림
게시물ID : readers_259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빗속을둘이서
추천 : 0
조회수 : 2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04 16: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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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놈아, 왜 말을 듣지 않느냐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무서워서

더 깊이 잠든 척했다,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그가 원하면 나는 편히 쉴 수 없었다.

네가 한 번 혼나 봐야 알겠구나!

머리채가 끄집어진 듯 벌떡 일어나졌다.

그리고 맨발의 잠옷 바람으로 정월 야산에 올라

얼음 이빨이 돋친 계곡을 깨뜨려

시퍼렇게 찬물을 퍼 온몸에 끼얹었다.

그만, 그만요! 목 놓아 외치며

정신 차려봐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몸은 저절로 움직였고, 그건

신을 따르지 않아서 받는 벌이었다.

신이 나를 조종하여 말 좀 들으라 경고한 거다.

제발, 설경 한복판에 웬 미칀놈이란 말이오.

옛사람이시여, 이 길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 거 아입니까?

저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제가 될 수 없소. 부디, 나를 놓아주세요.
차디찬 세례를 얻으면서도 나는 거부를 되뇌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의식이 흐려갈라치믄

신이 눈앞에 서 있어 다시 일으켰고

또 찬물을 붓고,

한월寒月도 제 춥다고 구름 덮어가 잠든 밤에

문득 깨고 보니 어마한 몸살이 죄여왔다.

마음에 냉괴冷塊가 생기고

이길 수 없는 열병이 오리라,

생각했다.


뭣이 닿은 것인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어머니셨다.

시골에서 오시자마자 마당에 소금을 뿌리셨고

나는 그 해 낫지 못할 열병이 깊었다.

밤낮도 모르게 몸져누워

입술은 말라 가고

그 옆에 신이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병 주고 약 주시는 겁니까...

그러다 죽어서도 편치 못한다.

제가 살아서도 편치 못할 겁니다...

결국 각혈을 토했고

이길 수 없는 병세가 더 깊어 지리라,

생각했다.


어머니, 전에 소금은 왜 뿌린 거예요?

말이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네게로 가야겠지 싶어 도시에 오니

어떤 사내 셋이 길을 묻길래

무슨 사정인지를 듣는데

꼭 우리 아들 사는 곳 말하는 거 아니냐

미쳤지, 의심도 못 하고 길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놈들을 뒤에서 보니 다리가 안 붙고

가슴이 뻥 뚫려 있는 것이라

그래서 바로 밤차를 타고 왔단다.

아들? 아들! 왜 그러냐, 정신 차려라, 해호야, 아들아!


나는 소리도 낼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고

혼이 몸 밖에 떠 있었다.

어미가 우는 걸 신과 함께 내려다본다.

네 팔자를 정녕 불효로 여기거든

죽어서 더 큰 불효할 거면

차라리 살아서 불효자 죄를 갚는 게 낫지 않겠느냐.

요즘이 어떤 시대인지 아시잖습니까...

사람들이 당신을 믿지 못하고 나를 미친 자라 부를 것입니다.

인두겁으로 왔으면 이 세상은 원래 미친 척 억지로 춤추어야 하는 게다.
사람들이 당신을 믿지 못하여도...
아직도 업을 모르겠느냐? 나는 너의 신이지, 남 겨를은 없다.
업이라... 제가 이대로 어미 가슴에 못 박으면 다음 생에는 더 큰 과보를 치루겠죠.
마음의 냉괴가 해동하는 눈물이 흐르고 다시 빛을 떴다.

어머니,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도사님을 불러주셔요.

그리고 머잖아 큰 굿을 치르며 각오했다,

나는 나의 이 끔찍한 대를 물리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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