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어 항간의 화제를 모았던 유명한 심리 실험이 있다. 사실 실험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간단한 것으로, 출연자에게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에 알파벳의 대문자 E 자를 써보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여기에서 읽기를 잠시 멈추자. 그리고 자기가 출연자가 된 셈치고 자신의 이마에 E 자를 한번 써보기 바란다. 자, 당신은 어떻게 E 자를 썼을까? E 자를 쓰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우선 상대가 잘 읽을 수 있도록 E 자를 쓰는 사람이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볼 때는 E 자를 반대로 해 ∃ 자 모양으로 쓰는 사람이다. 또 다른 유형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머릿속으로 읽을 때와 같이 E 자 모양으로 쓰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어떤 유형이었을까? 나는 자신에 얼마나 주의를 쏟고 있을까? 이 실험의 목적은 사람과 마주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의식하는 정도인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을 알아보는 것이다. 자기의식이란 자신에게 주의를 쏟고 자신을 의식하기 쉬운 성격 특성을 말한다. 모든 성격 특성들이 그러하듯이 자기의식의 정도에도 상당한 개인차가 있다. 자기의식은 크게 보아 공적 자기의식(public self-consciousness)과 사적 자기의식(private self-consciousness)으로 나눌 수 있다. E 자를 반대로 쓴 사람은 공적(公的) 자기의식이 높고, E 자를 자기 머릿속으로 읽는 대로 쓴 사람은 사적(私的) 자기의식이 높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우선 공적 자기의식은 자신의 용모나 행동과 같은 외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기 쉬운 경향을 말한다. 공적 자기의식이 높은 사람은 자기의 외적 측면에 신경을 쓰는 만큼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기 쉽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 하는 데 늘 신경을 쓰며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사적 자기의식은 자신의 생각, 동기, 태도 등 내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기 쉬운 경향을 말한다. 사적 자기의식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행동한다. 그만큼 자기중심적이다. 사회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보면 자기주장이 강한 미국 사람들의 경우 사적 자기의식이 높은 사람이 많고,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일본 사람들의 경우 공적 자기의식이 높은 사람이 많았다. 앞서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얻은 의외의 결과는, 튀는 행동으로 유명해 개성적으로 여겨지던 탤런트들 가운데서도 E 자를 반대로 쓰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언뜻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로, 탤런트란 기본적으로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데 신경을 쓰는 직업이다. 따라서 아무리 개성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보여도 내적으로는 공적 자기의식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나쁜 성격은 없지만 손해되는 성격은 있다 사람이 두 가지 자기의식 가운데 어느 것 하나만을 가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것은 공적 자기의식의 반대가 사적 자기의식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공적 자기의식과 사적 자기의식은 별개의 성격 특성이다. 따라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적 자기의식과 사적 자기의식을 동시에 가진다. 다만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적 자기의식과 사적 자기의식이 모두 높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두 가지 자기의식 모두 낮은 사람도 있다. 그 외에 공적 자기의식이 높고 사적 자기의식이 낮은 사람도 있으며, 이와 반대로 사적 자기의식이 높고 공적 자기의식이 낮은 사람도 있다. 공적 자기의식과 사적 자기의식의 조합으로 네 가지 유형을 도출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성격이 그렇듯이, 공적 자기의식이 높은 것이 좋으냐 아니면 사적 자기의식이 높은 것이 좋으냐 하는 문제는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공적 자기의식이 높은 사람의 경우,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지적해두고 싶다. 가령 공적 자기의식이 높은 사람 가운데는 일대일 상황, 다시 말하면 두 사람만 있는 상황에서 자기표현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상대방이 어떻게 보느냐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공적 자기의식이 높은 사람은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하기 힘들다. 연애란 거의 모든 일이 일대일 상황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모처럼 기회가 와도 상대방의 시선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자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결국 연애 관계를 깊이 진행시키기가 어렵고, 아쉬움과 후회만 남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적 자기의식이 높은 사람은 인간관계에 문제가 전혀 없느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자기중심적이다 보니 자기의 인간관계가 좋다고 착각할 뿐인 경우가 많다. 앞서 E 자를 자기가 보는 대로 쓴 분이라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E 자를 반대로 쓴 독자라면 자기에 대한 배려를 의식적으로라도 좀 더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이루어가는 지름길이다. 좋은 인간관계의 출발은 우선 자기를 얼마나 잘 아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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