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씨는 고딩 때부터 락빠였습니다.
학창시절엔 청소시간에도 친구들과 밀대걸레와 빗자루를 들며 기타치는 모션을 취하며 이건 헤비메탈이네 스래쉬 메탈이네.. 논쟁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었구요..
그러다가 부활이라는 그룹의 팬임을 자청하고 김태원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그 때 부터 시나위, 들국화 등의 공연들을 관람하며 성장해왔죠.
물론 다 하늘같은 선배님들로 모시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습니다.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과 그리고 김종서의 커피 심부름 전담이었구요..
그리고 본인 또한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듯, 자연스레 음악에 더 깊게 빠지게 되고 대학을 포기한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신해철의 부모님이 제발 대학은 가라고 끊임없는 설득에 약 두달간 공부해서 서강대 철학과로 입학하게 되죠.
대학을 다니는 동안 취미삼아 다른 대학생들과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해왔습니다.
그 때 당시 함께 했던 멤버가 015B의 리더 정석원과 객원싱어 윤종신, 넥스트 전멤버 드러머 이동규가 있었죠.
이 사람들이 모여 무한궤도란 팀을 만들어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신해철은 음악의 길을 포기해야 하나?라고 망설이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들은 한국에선 지극히 비주류였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부모님이 원하는 길로 가야하느냐.. 또는 음악을 계속 해도 될까?
그러던 찰나에 무한궤도가 88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타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의 음악인생이 시작되었지요..
서울대생 필두로 이루어진 대학생밴드 무한궤도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해철은 엘리트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음악이 왜곡되게 평가받는다고 생각하여..
서강대를 자퇴하고 엘리트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집니다.
그리고 무한궤도는 정석원 및 기타 멤버들과의 의견마찰로 해체되고, 본인의 솔로활동이 시작되죠.
그 당시엔 꽤 잘생겨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2집 때까지 활동하다가 N.EX.T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되죠.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그런 진보적인 음악을 하겠다라는 취지에서 팀명이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퀄리티는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으니까요.
그래서 한국 대중음악도 이정도는 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친듯이 음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 전에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도 되고 하긴 했는데.. 큰 이슈는 되지 않았었습니다.
넥스트의 1집에는 유년의 시절의 추억들이 담긴 곡들이 주를 이룹니다.
증조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어린 날 아버지를 바라다 본 모습이라던가 어린시절 소꿉친구와의 사랑..
어린 시절 음악을 들으며 전율을 느끼고 처음 기타를 사며 흥분했던 그의 모습이 담겨져 있죠..
흔하고 진부한 사랑얘기만 해대는 가식적인 가요시장에 파란을 일으키나.. 했는데..
머지않아 또 대마사건이 터져서 넥스트의 음악은 이제 접하지 못하게 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1. 비잉> 이라는 앨범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 다음 파트 2로 월드라는 앨범이 또 나오게 되죠.
이 이후부터 넥스트의 골수팬들이 많아졌습니다.
넥스트의 진정한 팬들은 이 두 앨범을 명반으로 꼽습니다.
자신의 사상과 철학들이 이 두 앨범에 집대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음악의 질적 퀄리티 또한 상당해서 해외에서도 한국의 드림씨어터라는 평까지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한국 내에서 절대 구현해낼 수 없었던 사운드였으니까요.
그 것을 신해철 특유의 철학적이고 자아성찰적인 가사들을 담아서 멋지게 만들었죠.
비잉이라는 앨범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자아에 대한 고찰을 담아냈습니다.
이 앨범에서 제일 알려진 곡이 날아라 병아리라는 곡인데 통닭을 먹다가 곡을 쓰게 되었습니다.
유년의 시절 자신이 기르던 병아리가 죽는 모습을 보고 어린 나이에 죽음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된 동기성을 부여시키는 곡입니다.
불멸에 관하여라는 곡은 가사내용 때문에 특정 기독교 단체에서 지탄 받은 바 있으나, 태어나서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서 느끼는 그만의 고독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월드라는 앨범은 가족을 중심으로 세상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대표곡은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인류가 발전해오면서 저지른 만행들이 과격한 사운드 속에 신랄하게 박혀있습니다.
그리고 아가에게 같은 곡은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에게 축복을 내려줌과 동시에 우리가 만든 세상 속에서 살아나갈 때의 절망적인 느낌까지 부여해줍니다.
또 동성동본 연인들을 위해 만든 곡 또한 인상적이죠. 어떻게 보면 그뿐 아니라 성소수자들을 위한 곡으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삶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그런 곡들이 많습니다.
마왕의 콘서트를 자주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콘서트의 휘날레를 장식하는 곡 중 하나로 꼽히는..
호프라는 곡 또한 이런 세상 속에서 바닥 끝까지 떨어졌다 생각해서 낙심하지 말고 그냥 짚고 일어서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암튼 이 두 앨범은 지금 들어도 촌스럽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후 신해철은 테크노 음악에 심취하게 됩니다. 제대로 된 테크노 음악을 만드는 것이 본인의 숙원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향상을 위해 항상 각고한 노력을 해왔었기에 이에 대한 욕심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수도 없이 자살충동을 느꼈을 만큼이요..
그러다가 본인의 음악적 취지가 비슷한 윤상을 만나게 되어 노댄스라는 앨범을 동반 제작하게 됩니다.
물론 큰 인기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대중들은 모험을 싫어하고 현재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보수계층이 많기 때문이죠.
그리고 정글 스토리, 넥스트 싱글 등을 만들어 활동해오다가 오케스트라를 동원하고 합창단을 동원한.. 락과 오페라를 합쳐놓은 듯한 웅장한 앨범을 내놓습니다.
메탈리카의 SM버젼이나 퀸 공연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그런 웅장한 음악을 한국 밴드 넥스트가 해냈다는 것이죠.
이 이후 넥스트는 고별 콘서트를 하고 해체를 하게 됩니다.
가수 윤상이 본인의 음악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고 유학을 갔다 온 건 기억나시죠?
신해철도 마찬가지 영국으로 가버립니다.
그리고 크롬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테크노 기반의 사운드를 가진 음반을 내게 됩니다.
그 다음 돈없는 후배 음악인들에게 100만원으로도 멋진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이란 음반을 내기도 했죠.
아...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아침부터 계속 울었더니 눈이 퉁퉁 부었네요..
여튼 그의 음악은 저의 인생의 스승으로 다가왔고..
제게 삶의 지표를 가지게 해줬고 가치관을 심어줬습니다.
앞으로도 마왕의 음악을 사랑해주십시오..
네이버 지식 펌 (아이디 Raging Bull(mc_heeb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