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사업이 잘 안 풀리고 여기저기서 배신당하면서 집안이 어려워졌어 그 흔한 과외 한 번 안 해보고도 나름 괜찮은 대학교도 갔지 그래서 대학 가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친구들한테는 배 안 고프다 옷 입는 데 관심 없다 하면서 그럭저럭 아껴 살았지 남들은 용돈 받아서 예쁜 옷 사 입고 비싼 레스토랑 가서 밥 먹을 때 맨날 시간 없다면서 혼자 집에 가는 건 안 서러웠어 아빠 엄마가 어떻게 벌어오는 돈인지 아는데 어떻게 그래 등록금 내는 것도 버거운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래 내 용돈은 내가 벌어 써야지
주말알바로 손에 쥐는 건 이십만 원 남짓 밥 먹기도 좀 빠듯한 돈이더라 그래도 괜찮아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사는 게 좋지 당연히 방학하자마자 아르바이트 구했어 내가 파는 음식 한 접시 커피 한 잔이 내 시급보다 비싸더라ㅋㅋㅋ 쓰레기 치우다 손을 베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남들은 방학이라고 스펙 쌓기에 바쁘잖아 토익도 토플도 몇십만 원짜리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기 바쁜데 난 꼬박 한 달을 일해야 그 돈을 겨우 벌어
영어공부? 하고 싶지 나도 영어점수 잘 나와서 교환학생도 가고 싶어 학원비는 둘째치고 생활비가 발목을 잡긴 하지만 일본어도 배워보고 싶고, 악기도 하나쯤 배우고 싶어 몸매관리에 좋다는 요가도 ㅎㅎ 해외여행도 가고 싶다 이번에 친구들끼리 몇 명 간다는데 난 왜 다 저 멀리 있는 얘기 같을까
세상 참 불공평하지 않아? 쟤들은 내가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에 공부한대 성적도 잘 나와서 장학금도 받는대 난 당장 점심 먹을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 하는데ㅋㅋ 친구가 생일 선물 달라는데 못 줬어 내 생일에도 챙겨줘서 진짜로 꼭 주고싶었는데 뭐 줄지도 생각해놨는데 선물을 주면 내가 밥을 굶어 우리 집 어려운 거 아무도 모르거든 그래서 너무너무 미안해 내가 얼마나 밉겠어 ㅎㅎㅎ 진짜로 너무 미안하다
나한테도 세상에도 너무 속상해서 막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어도 다들 내가 재밌고 밝은 앤 줄 알아서 말할 사람이 없네 다들 그러잖아, 열심히 하면 잘 된다고 어디까지 열심이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내 친구들이랑 나는 출발선부터가 다른 것 같아 희망 주는 말들이 왜 이렇게 싫은지 모르겠다 내가 배배 꼬였거나, 어린 마음에 징징대고 싶은 거겠지 뭐 긴 글인데도 읽어줘서 고맙다 울고 나니까 속이 좀 풀렸어 뭐 달라지는 건 없지만ㅎㅎ 힘내자 다들 건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