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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계단에서 본 개미를 밟기 싫은 날이 있었더랜다.
게시물ID : readers_261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빗속을둘이서
추천 : 3
조회수 : 31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8/25 00: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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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선로를 따라 그냥 편하게 몸을 맡기면 될 일

그늘뿐인 지하철은 덧없이 빨랐고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찾게 된다.

씨앗에서 발을 내민 꽃처럼 눈과 비가 다 나의 것이며 센 바람이 불면 오직 흔들려야 할 지상의 뜨거운 빛을 쫓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작부터 굴곡과 오르막의 형상인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익숙한 1호선에서 나는 유년기란 게 그렇다고 생각했더랜다.
앞으로가 지금이 된 여기까지 그늘뿐이었고 그 품에 묻혀 몰랐던 나 자신의 그림자 크기를 마침내 확인한다고.
머리가 무거워진 탓에 인파 속에서 잠시 멀거니 서 있기로 한 그 녀석은
진과 면티, 모던한 백팩을 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청년이었고
예정대로 목적지 역에서 내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흔한 순간도 왠지 *습관적으로 의도한 바지만, 아련해져 오는 사유가 섞이면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그리움이란 무겁다.
작은 몸짓도 결코 가볍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달래려, 사유를 거듭하는지도 모르겠군요.

사람들은 웅성거린다.
제각기 다른 사연들이 섞여 무슨 말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 소리가 사는 게 바쁘다고 대변하는 것만은 하나의 길로 통한다.
드디어 계단을 오른다.

경사 위쪽으로 언뜻 비추는 여름 하늘이 눈부셨다.
벌써 그늘이 그리워 고개를 떨구자, 어이쿠, 밟을 뻔한 개미 한 마리와 마주했다.
단지 본 게 아니다.
엄연히 존재 대 존재로 마주하게 된 거다.
조그만 곤충에 불과하지만, 그땐 그랬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의 초석에서 만약 개미 한 마리라도 죽였다면 나는 눈물을 흘렸을 테다.
갈 곳 잃어 이리저리 몸통 박치기하느라 무리가 없는 외로운 녀석이기에 도와주고 싶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르는 계단에서 본 개미를 밟기 싫은 날이 있었더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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