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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hil_23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자기사★
추천 : 1
조회수 : 82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3/02 19:52:33
3편에서 언급했듯이 죽음에 대한 태도 변경 이외에 전쟁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유를 프로이트는 문명인의 타락한 도덕이라고 지적합니다.
한 인간이 도덕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 중 성선설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성선설이란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량하다는 말입니다.
성선설에 대한 프로이트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1차 대전이라는 잔인한 살육전은 성선설을 무색하게 합니다.
다음으로 성악설이 있습니다.
악랄한 본성으로 불완전하게 태어난 인간이 환경의 영향으로 자신을 고결하게 만든다는 주장이지요.
하지만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에서 악의 어두움을 감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인간은 선량하거나 악랄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결부된 본능적 충동을 갖고 태어납니다.
이러한 충동이 그가 소속된 사회를 불안하게 할 경우 악으로 규정되고 반대의 경우 선으로 규정됩니다.
결국 도덕성이란 사회적 불안에 불과하다고 프로이트는 주장합니다.
한 사회를 불안에 떨게 하는 충동 중 대표적인 것은 이기적인 충동과 공격 충동입니다.
이러한 충동을 변화시키는 경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적 강박과 외적 강박.
예컨대 타인에 대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희생을 감수하게 하는데 이러한 내적 동기는 이기적 충동과 공격 충동을 변형 시키게 하는 내적 강박의 사례입니다.
한편 교육 따위의 외부적 제제는 이기심과 공격성을 자제하도록 인간을 유도하는 외적 강박에 속합니다.
문명의 과제는 외적 강박을 내적 강박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존을 위해 외부에서 가해지는 제제를 내적 동기로 변형시켜 스스로 이러한 다수의 과제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문명인은 교육과 환경의 영향으로 외적 강박을 내적 강박으로 전환시켰고 도덕적으로 성숙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지나치게 낙천적입니다.
우리는 보통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이기심을 자제할 줄 알고 함부로 상대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도덕적으로 성숙한 행동에 대해 우리들의 엄격한 도덕 교사들은 섣불리 그 도덕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행동에 대한 동기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도덕 교사들은 오직 선량한 동기에서 나온 선량한 행동에 대해서만 긍정적인 평가를 합니다.
모든 사회에서 이타적인 행동은 장려됩니다.
교육은 이타적 행동을 장려하기 위해 상과 벌이라는 수단을 활용합니다.
따라서 개인은 이타적 행동을 함으로써 보상을 받고 벌을 피할 수 있지요.
그런데 자본주의와 같은 실용주의 사회의 교육은 선량한 행동이 근거한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태여 따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회의 개인은 보상을 받고 벌을 피할 수 있다는 이기적 동기에서 이타적으로 행동합니다.
이기적인 본성을 이타적으로 바꾸는 수고를 하지 않고 이타적으로만 행동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때 본성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 말고 겉으로 드러나는 이타적 행동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실용적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에 적합한 경제적인 판단입니다.
이런 토대의 사회에서 개인들은 이기적 동기에서 이타적 행동을 하기 때문에 도덕적 성숙에 쉽게 도달합니다.
실용주의 사회의 도덕 교육은 그 효율성에 도취되어 박차를 가하고 개인들은 자신이 행한 이타적 행동에서 더욱 소외됩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우리 문명의 토대를 프로이트는 위선적이라 평가합니다.
앞서 프로이트는 1차 대전이 문명인에게 준 고통의 첫 번째 원인을 도덕적 타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도덕적 타락에 대해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우리를 위로합니다.
문명인은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본성이 한 번도 고결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기적 충동과 공격성은 겉으로만 자제됐을 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사회적 감시가 느슨해 진 틈으로 이기적 충동과 공격성이 튀어나온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지요.
문명인이 자신에 대해 가정했던 높은 도덕성은 환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전쟁을 언뜻 긍정하는 듯한 위태로운 프로이트 주장의 의도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공격과 파괴에 대한 본능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공격 충동은 제거할 수 없으며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격과 파괴에 대한 본능은 변형시킬 수 있고 이는 전쟁이라는 파국적은 결과를 피하게 합니다.
환자가 병을 고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병을 부인하지 않고 대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닌 공격과 파괴에 대한 강렬한 충동, 타인의 죽음에 대한 무관심, 성적 태도 등등의 심리학적 진실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러나 위선적 사회는 드러난 행동과 내적 본성을 대립시키고,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심리학적 진실에서 소외됩니다.
진실을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변경시킬 수도 없습니다.
전쟁을 인정해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우리의 심리학적 진실을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비록 제거할 수는 없지만 변경 가능한 충동은 전쟁이라는 파국적 결론으로 터져 나오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은 아마도 진실을 대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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