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혜원 기자]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은 지금 세탁소에서 허리를 줄여온 남편의 양복을 입고 외출을 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 남편이 입고 다니던 10년 된 회색 홈스펀 양복입니다. 곱게 입어서 티는 나지 않지만 잘 살펴보면 고운 털들이 다 빠지고 손을 넣었던 바지 주머니 입구와 소매단의 천이 닳아 하얗게 바래 있는 양복입니다.
이 양복은 남편이 과장 진급을 하고 첫 출근하는 날 입히려고 목돈을 들여 큰맘 먹고 장만했던 옷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남편이 그리워하는, 한참 열심히 일하던 시절인 과장과 차장 시절을 함께 보낸 가장 아끼는 양복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남편은 당시에 유행하던 폭이 넓고 긴 깃이 어색해 보이는 그 양복을 몇 년 전까지 가끔씩 꺼내서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삼 년 전부터 남편이 배가 나와 바지허리를 더 늘일 수 없는 지경에 와서야 그 양복은 화려한 전성기를 끝내고 옷장 안에서 휴식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하면서도 좁은 옷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양복을 버리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그 양복과 함께 한 남편의 화려했던 시절이 함께 버려질 것이 두려워서였을 것입니다.
며칠 전입니다. 이래저래 늘어나는 옷들 때문에 비좁아진 양복장을 정리하기 위해 걸어 두었던 회색 홈스펀 양복을 꺼냈습니다. 비록 털이 빠지고 유행에 뒤진 디자인이긴 하지만 버리기 정말 아까운 옷이라 다른 옷을 정리하는 동안 잠시 옷걸이에 걸어 두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린 남편의 양복을 보고 멋지다고 감탄을 하는 겁니다. 저는 웃으며 "이제 아빠에게 맞지 않아 버리려고 한다"고 했지요. "아빠는 이 옷을 입었을 때가 가장 멋있었다"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아들이 눈을 반짝이면 제게 묻는 겁니다.
"그럼 이거 내가 입어도 되는 거예요?"
저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니가 어떻게 아빠 옷을 입어? 아빠 옷이 얼마나 큰데. 너한테 맞을 리가 있겠어?"
아들은 엄만 잘 모른다는 듯 어느새 아빠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었습니다.
어쩜….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남편 옷을 입은 아들의 모습이 마치 20년 전 남편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저렇게 자랐을까? 교복 대신 양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엄마, 이거 허리만 조금 줄이면 내가 입을 수 있겠는데… 줄여주세요."
"정말 아빠 양복 입으려고?"
"나한테 딱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아빠보다 더 멋있지 않아요?"
졸업을 하루 앞둔 오늘 아들은 허리를 줄인 아빠의 양복을 입고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나갔습니다.
아들에게는 아직 서툰 넥타이를 대신 매어 주며 새삼 남편의 키만큼, 남편의 자리만큼 커진 아들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역시 아들의 영원한 우상이 맞는 모양입니다. 오래 되어 약간은 낡고 유행이 지난 양복이지만 아버지가 입었던 것이기에 아들에겐 저리도 대단한 모양입니다.
남편의 양복을 줄여 입고 나가는 아들은 마치 아버지라도 된 듯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하며 저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앞으로 남편이 일생에서 가장 열심히 일할 때 입었던 양복을 입고 열심히 공부를 할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저는 팔불출인가 봅니다.
/김혜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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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빠양복하나 물려받아나야겟는데....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