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경남고 동창들이 기억하는 문재인 후보의 아름다운 모습들
게시물ID : sisa_2624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접이불루Ω
추천 : 0
조회수 : 42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01 14:46:53

 

 

경남고 동창생분들께서 직접 쓰신 글이고,

제가 문장을 다듬고, 일부 편집만 했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옮겨주세요 ^^

 

 

 

 

1.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가 된 사실 자체가 우리 동기들에겐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지.

 

나는 학창시절에 특별한 추억이나 에피소드는 없었지만,

지난 참여정부 시절에 공직에 몸담고 있었고 공식적으로 만날 기회도 여러 번 있었어.

 

내가 본 문재인은 도덕적으로 매우 깔끔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있었고

공사구분이 철저하고 사심이 전혀 없는 맑은 사람이었어.

그 때문에 동기들이나 지인들이 섭섭해 했을 수도 있었을 거야.

 

청와대 근무 시 그리고 그 이후에도

주변의 유혹을 물리치고 정치판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한 문재인을 보고

과연 다르다하는 생각에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어.

 

제발 그대로 비정치인으로 남아있으면서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일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어.

 

대통령 후보가 된 것.

재인의 표현처럼 이것도 운명이라면 할 수 없는 것이지.

 

주변으로부터 문재인이 어떤 인물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나는 한마디로 정직하고 소탈하고 깨끗하다고 말하지.

듣는 이들도 다들 동의하는 것 같아.

 

 

 

2. 재인이가 사법연수원 수료 직전에 검찰청에서 연수 받던 때일 것이다.

 

날짜도 다 잊었지만 토요일이었는데,

무슨 연유인지 내하고 같이 부산으로 같이 가기로 약속이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날 검찰청에서 바둑대회를 연 것이다.

재인이도 거기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

 

재인이는 바둑 잘 두는 검사들이 많으니

자신은 1회전에서 탈락할 것이라며

잠깐만 참여한 뒤에 같이 부산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바둑대회가 열리는 한국기원당시 관철동 대회장으로 갔다.

검사들 모임이라서 그랬던지 김수영 프로가 심판위원장이고,

한국기원 연구생 몇 명이 진행 도우미로 나오고,

이 연구생들이 초 읽기도 하였다.

 

제법 격조 있는 대회를 하고상품도 제법 후했던 것 같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1회전에서 지겠다고 하던 재인이는

계속 승승장구하여 결국은 우승을 하고,

시상식까지 참석하는 등 부산 갈 기차 시간을 자꾸 늦추는 것이다.

 

국외자인 내가 기다리다 지쳐 그만 져주고 가자고 잔소리를 하니,

김수영 사범이 내 불평을 잠재우기 위하여

연구생들에게 두 점 놓고 한 판 두어보라고 하여

내 주제에 연구생들에게 바둑을 배우는 영광도 있었다.

 

재인이는내가 두 점 놓고 둔다고 하니무신 소리냐면서같은 1급이니 맞두라고 우기더라.

 

바로이런 기질이 오늘의 재인이를 만들었지 않나 싶다.

 

이유가 무엇이든 일단 참가하니

 

최선을 다하고,

결국 우승하고,

나 보고도 -심지어는 한국기원 연구생들과맞두라고 시키는

승부사적인 기질.

 

사자는 일단 사냥을 시작하면

쥐새끼 한 마리 잡는데도 전력을 다한다는 진리.

 

참고로 그 날 저녁 우리는 밤11시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탔으며,

기차 안에서 치수 고치기 바둑을 밤 새 두어서,

결국맞 치수가 3점인가 4점인가로 벌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것은 우리 둘만의 사건이니 다른 친구들은 모를 것이기에 적었다.

이 시점 이후로 이 결과로 내 바둑은 누구와도 맞두는우기는뻥 바둑이 되었다.

 

 

 

3. 내가 기억하는 재인이는 거의 45년 전 경남중학교 3학년 때,

나와 재인이가 같은 반으로 3학년 9반 백용기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그 시절.

 

매주 중모의고사를 본 후 성적우수자 상위 5명의 명단을 칠판 좌측상단에 적곤 했었는데,

재인이는 항상 그 5명의 명단에 이름이 올려져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그때부터 머리가 명석한 학생이었나 봅니다.

 

그때 기억으론 키가 작아서 맨 앞줄에 앉았던 것 같은데,

요즘 보니까키가 많이 큰 것 같더군요.

 

또한 지난 1970년 경남고 3학년 때도 내가 공통반인 3학년 1반에 있었는데,

 

그때 담임은 길창순 선생님이었고,

재인이 역시 같은 공통반이었으나,

공부는 별로 열심히 안 했던 것 같소이다.

 

그렇지만머리가 영리하니사시는 빨리 합격하였더군요.

 

 

 

4. ① 중학교 1학년 때 재인이를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났다.

복도 끝 반인데 1학년 1반인지 거꾸로 1학년 8반인지는 잘 모르겠다.

 

키가 조그만 해서 같이 맨 앞줄에 앉았다.

짝지를 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앞줄에 앉은 꼬마들끼리 동류의식 하에 똘똘 뭉쳐 꼬마들끼리 즐거운 학창시절을 이어갔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대체로 꼬마들의 평균 학력이

비교적 키 큰 친구들의 학력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꾀돌이들인 셈이다.)

 

각자가 부산의 내로라는 국민학교를 대표한 훌륭한 인재들이 아니던가?

 

그 때 쉬는 시간에 모눈종이에 표시하는 방법으로

영어단어 잇기 시합과 오목 시합을 즐겨했었다.

나또한 상당한 실력으로 친구들과 오목을 두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재인이에게 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라이게 웬일인가.

그래서 아마 내가 물었던 것 같다.

그때 재인이가 한 말.

 

니는 삼삼삼사가 되지 않도록 막을 때

꼭 너에게 유리하게 똥골뱅이(o) 쳐진 쪽으로 막더라

 

벌써 상대의 수를 내다 본거였다.

 

나 또한 공부에는 자신이 있고,

수학은 누구보다도 잘 하여 논리를 즐기는 편이지만

상대의 수를 예측하는 소질은 없었으니 힘이 부칠 수밖에.

 

그 후에도 재인이의 이런 상대의 수를 내다보는 능력을 가끔씩 대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재인이는 명석하다우리 꼬마들은 다 안다.

 

 

② 재인에게서 연락이 왔다경남고 용마신문에 내 글이 났다고.

그러면서 물었다먼 길 소풍간 날울고 싶었던 그날이 기억에 없냐고.

 

이게 무슨 소린가그래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었다.

 

고등학교 1학년 소풍이었다고 한다.

목적지는 지금의 금정구에 있는 해동저수지.

 

그 당시 나는 먼 길 소풍을 갈 수 없어 빠지려고 했고,

그때도 같은 반으로 늘 가까이 했던 재인이가 도와주겠으니 같이 가자고 권유하여

용기 내어 소풍에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는 버스종점에서 모여 해동저수지로 가는 길이 그렇게 멀었다고 한다.

그 당시 재인이는 나만큼 키도 작아서 함께 앞줄에 서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뒤쳐져 어느덧 친구들은 보이지도 않게 되었고,

또한 지친 내가 걷기 힘들어 하니 재인이가 나를 업었다고 한다.

 

허나 당시 자신도 덩치가 조그맣고 힘이 세지도 않아

나를 조금 업고 가다 내려놓고

그렇게 둘이 같이 걸어가다가

또 나를 업고 조금 가다가 내려놓고

그렇게 하면서 쉼 없이 갔단다.

 

그때 재인이의 생각이

 

내가 조금 더 키 크고 힘이 세었으면 나를 맘껏 업고 갈 텐데

 

하면서 속으로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가다가 시간도 흘러 배가 고파서

중도에서 가져간 도시락도 까서 나누어 먹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결국 목적지인 소풍장소에 까지 도착했단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