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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는 폭군인가 명군인가?
게시물ID : history_263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urelius
추천 : 1
조회수 : 127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6/21 17:13:16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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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 그는 로마제국의 부활을 이룩할 뻔했던 대제로 평가하고
다른 일각에서는 국력을 불필요하게 소진하고 자국민을 학살했던 폭군으로 평가합니다.

어느 쪽이 맞는 말일까요?

그는 로마대법전을 편찬하고, 공격적인 확장정책으로 동로마의 최대판도를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는 니카폭동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동시대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로부터 악마의 자식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내에도 번역된 <로마제국의 멸망: 유럽의 탄생>이라는 저서로 알려진 로마제국사 전문가인 피터 헤더에 따르면
그는 잔인한 폭군입니다. 

그에 따르면 유스티니아누스는 집권 초반기에 부족한 정통성을 메꾸기 위해 "법전"을 편찬하고 "군사적 업적"을 획득하고자 했습니다(결국 Imperator의 지위는 그 명칭이 의미하듯이 군사적 능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런데 법전은 그럭저럭 성공했으나 그는 무모하게 페르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도발하고 패했습니다.

게다가 니카반란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해당 소요 사태 당시 3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원로원 의사당과 대성당이 불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현대로 치자면 서울시민 수십만명을 학살하고 국회의사당과 경복궁이 불탄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피터 헤더는 영국인이기에 영국 런던을 비유로 들었지만).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 그리고 국내 초유의 소요 사태. 

내우외환으로 인해 유스티니아누스의 인기와 정통성은 최저로 떨어졌습니다.

피터 헤더가 보기엔 유스티니아누스의 서로마제국 고토수복은 인기를 회복하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였다고 합니다.
마침 북아프리카의 반달족과 시칠리아의 고트족 모두 내부혼란을 겪고 있었고, 이는 유스티니아누스에게 절호의 기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최악의 정치적 위기인 상황에서 이를 단숨에 날려버릴 승부카드를 던진 것이였다고 평하더군요. 

하지만 피터 헤더는 7세기 이후 동로마의 침체와 몰락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이집트의 영토상실)의 책임을 그에게 지우지 않습니다. 그것의 책임을 유스티니아누스에게 묻기에는 너무 다양한 변수들이 있다고 말이죠.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가 잔인한 폭군이었고, 그의 팽창정책이 제국에 이득이 되었다고 보지는 않는 쪽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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