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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소크라테스 그리고 돼지
게시물ID : readers_263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과그림자
추천 : 0
조회수 : 39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9/12 01: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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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공시생이란 것은 그런거였다. 지금은 종강 시즌, 문득 친구가 너무 만나고 싶어서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다들 토익이니, 남친이니, 알바니 바빴다.

 긍정적인 답변은 하나였다.

[구랴, 만나자!]

 그렇게 약속을 잡았다.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눈을 휘며 웃었다. 인조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친구는 몇 마디를 더 나누고 내 손목을 끌고 별다방에 들어갔다. 에둘러 거절해도 듣지 않았다. 별다방의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지갑에 있는걸 헤어보다가 생각을 관두었다.

 '그래, 오늘만이야.'

 속으로 괜찮다고 달래며 주문대 앞으로 갔다. 네 장짜리, 네 장 반짜리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쯤 친구가 먼저 주문했다.

 "카라멜 마끼아또에 클래식 크루아상. 음..... 블루베리 베이글도 시킬까나."

 나는 낡은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지퍼는 낡아 잘못 맞물려있어 잘 열리지 않았다. 

 "야, 지갑 좀 바꿔라."

친구는 의미 모를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내 것도 같이 주문해 계산해버렸다.

 블루베리 베이글과 카라멜 마끼아또, 클래식 크루아상이 친구의 앞에, 내 앞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가 내 앞에 놓여졌다. 그 앞에서 나는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잘 가.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다."

 예의상의 인삿말을 기계적으로 내뱉었다. 친구가 대답했다.

 "아, 난 다음 달 부턴 바빠져서 못 만날지도."


 그래, 잘가. 

 나는 친구를 보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애꿎은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망할 지퍼는 잘만 열렸다. 컵라면을 사고 남은 동전이 쨍그랑 떨어졌다. 

 마셨던 아메리카노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내가 뭘 살지 돈을 헤아리며 고민할 동안, 친구는 칼로리를 헤아리며 고민하는 것이 나는 못내 억울했다. 네 장에서 네 장 반을 고민할 때 친구는 몸에 붙을 살을 걱정하는 것이 억울했다.

 그러나 억울하기 이전에 내 낡은 지갑에 남은 돈들에 안도했다. 네 장에서 머릿속에 지나간 얍삽한 계산들-네 장이면 삼각김밥에 컵라면, 호화롭게 컵라면 위에 스트링 치즈-이 머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돼지였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 낫다는데, 나는 배부르지도 못한 돼지였다. 컵라면 국물을 가득 위장에 채워넣은 돼지였다. 부모님의 등골을 빨아먹는 돼지였다. 

 그러면 우리 부모님의 골수는 컵라면 국물인걸까. 머릿속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나를 향해 낄낄대며 손가락질했다.

 "우웁..."

 이윽고 배고픈 돼지가 석양을 등지고 엎드려 아메리카노를 토했다. 토하면서도 그것이 아깝다는 글러먹은 생각을 했다.
출처 くコ: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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