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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의병장 머리를 잘라 가마솥에 삶은 일본군 만행 공개
게시물ID : history_263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닥호
추천 : 5
조회수 : 148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6/27 17:05:17

구한말 의병탄압에 동원된 일본군이 1907년 의병장을 총살한 뒤 목을 자르고 그 두부(頭部)를 가마솥에 넣고 삶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자행한 사실의 전모가 뒤늦게 밝혀졌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박민영 선임연구위원은 28일 오후 2시부터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에서 열리는 제324회 월례연구발표회에서 이러한 요지의 논문인 “고성(高城) 의병장 권형원의 의병투쟁과 단두 ‘부전(釜煎)’ 수난”을 발표할 예정이다.


권형원이 치룬 최후의 항일전은 1907년 10월 20일 고성전투였다. 일본군의 전투상보에 의하면, 이 날 새벽 권형원이 인솔한 의병 350명이 고성읍을 습격, 5시간 동안 머물며 그곳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분견대(51연대 9중대 소속의 1개 소대 규모)를 유린한 뒤 철수했다.

이에 분풀이에 나선 일본군은 의병을 후원하던 인근 여러 마을을 돌며 지도자 12명을 동시에 집단 학살했다.

이때 송탄 자택에 숨어 있던 권형원도 일본군에게 피체되어 고성읍을 관류하는 남강(南江)의 송림(松林)으로 끌려가 총살 순국하는 수난을 당했다.

권형원의 수난은 순국 후에 더 처참하였다. 전날 고성에서 유린당한 여파로 분이 풀리지 않은 일본군은 시신에서 목을 잘랐고, 잘라낸 두부를 일본군 수비대 본부가 있던 장전항(고성 북쪽)으로 가져가 가마솥에 넣고 삶는 끔찍한 만행을 자행했다.

처참하게 수난을 당한 권형원의 두골은 그 뒤 30여 년이 지나 일본에서 발견됐다. 권형원에게 만행을 가한 일본군이 그의 두골을 자국으로 강제 반출한 것이다.

이 사실은 1930년대에 일본 이와테(岩手) 의과대학을 다니던 권형원의 14촌 아우 권증원(權增源, 강릉 관동의원 원장 지냄)이 재학시절 수학여행에서 모 신사(神社)를 찾았을 때 거기에 비치된 ‘강원도(江原道) 권형원(權亨源)’ 표식이 있는 두골을 목격하고 유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해줌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71430001&code=9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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