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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1일 1문구] 페스트
게시물ID : readers_263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프대위
추천 : 2
조회수 : 28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9/15 02:19:15
"...... 그러나 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 만큼, 아마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네." 타루가 끄덕거렸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죠."

리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언제나 그렇죠.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추어야 할 이유는 못 됩니다."

"물론 이유는 못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존재일지 상상이 갑니다."

"알아요." 리유가 말했다. "끝없는 패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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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로 알베르 카뮈(익숙하지만 읽어본 사람은 몇 되지 않을)의 <페스트>가 나왔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기대를 했습니다만
시놉시스의 내용을 몇 줄 읽고 나서 그 기대를 버렸습니다. 세계는 오랑 시티라는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고... 음모를 밝히려는 정의의 의사 리유...

원작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카뮈의 <페스트>에서 역병은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자연 재해입니다.
의사 리유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페스트를 막고자 노력하지만, 그 시작에서 그러했듯 페스트의 전개에서도, 그리고 그 종말에서도,
인간들의 노력은 부질없어 보일 뿐입니다. 페스트는 멋대로 왔다가 멋대로 사라질 뿐이죠.
무시무시한 음모가 도사리는 오랑 시티 이야기에 비교하자면 카뮈의 원작은 시시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카뮈의 <페스트>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우리가 역병을 앞에 두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역병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겠지요. 설령 그것이 끝없는 패배일지라도요.

하나의 절대적인 악이 존재하는 세상은 어쩌면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일지 모릅니다.
하나의 악만 사라진다면 세상은 선함으로 가득 찰 테니까요.
그러나 정말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을까요?

그 악은 어쩌면 인간의 부정함일 수도, 자연의 냉엄함일 수도 있습니다.
인류는 언제나 수없이 많은 악을 물리쳤지만, 언제나 그 빈 자리를 새로운 악이 다시 채웠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의사는 말합니다.
이번 페스트가 언젠가 물러나더라도, 또다른 역병이 언제 다시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그때는 또 수많은 인간들이 무고한 목숨을 잃게 되겠지요.
싸움은 영원한 패배일지 모르지만, 의사는 또다시 싸움터로 나갑니다.
죽음을 무찌를 수 있기 때문일까요? 그런 헛된 기대를 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죽음에 맞서 싸우는 게 옳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가 선을 좇고 악에 대하여 투쟁해야 하는 것은,
악을 무찌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설령 영원히 악을 이길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악에 맞서싸우는 것이 옳기 때문일 겁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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