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투덜대면서 자신이 더 못났다고 마치 자랑질이라도 하는듯 하는 글들.. 처음에는 그런 글들을 보며 그들을 동정하고 "이런 환경도 있구나.." 하면서 내 환경에 더더욱 고마워하고 엄마아빠한테 더욱 더 잘해줬었고 편지로 감사의 글들을 남겼었다. 평생 가난을 모르고 살게 해줘서 감사하고 너무나 좋은 가정환경에 고맙다고.. 그리고 가족여행 다니면서 맨날 웃으면서 행복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근데 가난을 토로하는 글들이 너무 많아진다. 왠지 서로 가난하면서 자신이 더 불쌍하다는 콘테스트를 열어서 더 불쌍한 사람이 그 글 전체의 리플 분위기를 주도할 권위가 주어지는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그런 글에서 배우기보다는 참 찌질해 보인다. 근데 이젠 이미 그런 글들에 질려버렸다.
우리집은 충분히 부자다. 부자중에서도 부자측에 낀다. 하지만 늘 느끼는 거지만 행복과 돈은 별개다. 돈 없는 서러움은 겪어보진 못해지만 인생은 늘 비교다. 나보다 남이 더 잘 살면 서러워진다. 배가 아파온다. 의식주가 안되는 가난만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다. 주변에서 똑같은 환경에 빵 한쪼가리라도 더 얻어먹으면 그 날은 자신은 불행해하며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으로 생각하게 되는 날이 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충분히 갖출것도 갖췄고 첫 차도 원하는 차를 가졌다. 하지만 원하는 차를 갖자마자 3달만에 다른 차로, 더 좋은 차로 눈이 돌아간다. 그 전까진 그 첫 차만 갖는다면 원이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결국엔 최상의 최상중의 최상 모델에 근접하니 최상의 최상중 최상 모델을 바라보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모델을 모는 내 친구를 보자면 아빠한테 가끔 힌트를 준다. 그 친구는 그 차를 몬다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만족하기로했다. 그리고 결국 인간이란 가난하건 부자건 주위를 보며 비교하며 그 비교에 맞춰 행복감을 찾는 교활한 동물이란걸 알았다.
그래서 람보르기니 무르실레아고를 끄는 그 친구 관점으로도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해외를 보면 그 친구의 시선은 해외 대기업아들들에 맞춰져있고 페라리 엔쵸를 모는 사람 눈에 가있었다. 이미 트럼프 타워를 운영하는 딸내미는 뭐를 몰고 페리스 힐튼은 어떤 차를 갖고.. 눈이 한 없이 높아졌다.
사람마다 레벨이 있는듯 하다. 하지만 그냥 만족하고 좀 살아라 제발 투덜좀 그만하고.
나도 상위권안에 낀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행복은 돈과 비례하지 않는다. 상위권 중에서도 레벨이 있고 그 중에서도 누가 더 많네 적네를 토로하면서 친구끼리 비교도 하고 농담삼아 까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 가보면 늘 중간측에 끼면서 돈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고 돈이 있고 철부지인 애들은 그 애한테 더 환심을 사려고 발악을 하고 부러움을 사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사람은 언제나 현실에 안주하게 되있고 적응하게 되어있다. 부자가 가난해져도 언젠간 행복도는 자신의 성격에 따라 그 행복도는 다시 조절될것이다. 돈이 없어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거다.
돈은 돈일 뿐이다. 물질적 가치를 가져오지만 더욱 성숙한 정신적 가치를 가져오진 못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무서웠었다. 혹시나 나중에 경쟁에서 마주쳤을때 그들은 더욱 더 높은 정신적 가치로 나를 이길꺼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전혀 그런 생각이 안든다. 그들은 정신또한 피폐하다. "내가 조금만 더 가졌더라면"이란 생각으로 정신적인 지주를 찾기보단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가난'이란 것에 모든걸 탓한다.
학자금 몇 천만원 자기 앞으로 빚이있는게 대수인가? 그래서 불행하다고 느껴지는가? 학자금을 다 청산하고 나면 자신은 앞으로 행복해지나? 행복은 금전적인 시점에서 모든게 해결 됬을때 갑자기 그때부터 찾아오는게 아니다.
자기의 환경에서 얼마나 만족하고 감사하는가.. 에서부터 찾아온다. 그리고 그건.. 성격차이 같다.
학자금 다 갚아봐라. 갚자기 행복해지나... 결국엔 그 거지근성 어디 안간다. 언젠간 또 남에게 빚지면 그거에 불행해하면서 자학한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자신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한 평생 자책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