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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글 올라오는 게 많지 않네요
게시물ID : economy_26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ushian
추천 : 1
조회수 : 3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4/14 12:13:08

그런 의미에서 옛날에 쓰기로 했던 소설을 투척합니다!


소개글

http://todayhumor.com/?economy_193


경제학+소설(소설에 비중이 더 큽니다...)

http://cfs.tistory.com/custom/blog/33/335428/skin/images/murderer_and_the_bloody_night.pdf


음..

간략한 설명은 있어야겠군요.




우선 프롤로그에 관하여!


제가 그동안 읽은 소설 중에서 이런 식의 프롤로그 형태를 띤 소설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이런 글도 있을 거라 봅니다.

아무튼! 여기 나오는 글들에 대해 조금 해설이 필요할 거라 보는데....(일단 프롤로그를 읽고 봅시다)


이 글은 Karl Polanyi라는 경제학자가 쓴 「거대한 전환」이라는 책을 제일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프롤로그의 글은 그 주장을 거의 다 답습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맨 끝에 2049년에 구 자본주의 대 현대 사회주의의 정치 경제학이라는 거창한 책 제목 보이죠? 자본주의를 오래된 것으로, 사회주의를 현대적인 것으로 표현하였으며, 이것이 경제학에 관한 글이라는 것을 알린 겁니다. STATUS QUO는 경제학보다 정치학에서 더 많이 쓰는 용어로 아는데, 균제 상태 또는 균형 상태 또는 안정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End of가 들어갔으니, 안정 상태는 이제 끝이다! 이런 거죠.(올해는 2013년이니 저런 책이 출판되지 않길 간절히 빌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전에 소개글에도 썼지만, 2049년에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저 글은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출판된 글인 셈이죠. 마지막 자본가라는 필명을 가진 자가 안정 상태는 끝났다! 전쟁에 돌입할 것이다! 이것은 그 이유를 파헤친 보고서 같은 존재다! 이런 겁니다.


우선 자본주의의 대척점으로 굳이 사회주의를 꼽은 이유는, 칼 폴라니가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이죠. 그 외에는 특별한 이유랄 게 없습니다.


간혹 이 글의 구성에 대해서 말씀하신 분도 계셨는데요..

1989년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 유토피아가 도래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 갈등에 대한 논의 -> 이게 다 희소성 때문입니다, 여러분! -> 희소성을 극복해왔던 역사적 흐름 -> 그리고 오늘날 -> 유토피아는 어째서 도래하기 힘들까? -> 희소성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했던 시장경제 체제 -> 사회적 이중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 악마의 맷돌에 끌려들어가게 된 우리들, 여기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나니!


이러고도 읽기 힘들다면...

프롤로그는 때려치우고 Ch1부터 읽어나갑시다. 허허...



그럼 이 칼 폴라니라는 학자가 거대한 전환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였는가!


우리가 악마의 맷돌에 갈릴 지도 모르니 모두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특히 요즘 역사 교육에 대해 말이 많은데, 이 사람의 글도 형태는 경제학이되, 내용에는 역사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일단, Embeddedness라는 조금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이는 홍기빈씨의 번역대로라면 '묻어 들어있음'이라는군요. 위의 프롤로그에도 나왔지만, 경제는 항상 사회에 묻어 들어가 있었습니다. 정치나 사회 관계들에 종속되어 있었던 셈이죠. 그런데 이런 경제가 오늘날에는 대선의 향방을 결정하기까지하는 무서운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꼭 경제적인 이유로만 대통령을 뽑는 건 아니더군요. 합리... 뭐 그런 거 기대해선 안 될 거야, 아마.


근대 경제 사상의 전통 체제는, 경제를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자동적으로 조절해주는 여러 시장들의 맞물린 체제라고 생각하는 데 기초를 두었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현실에서 파급력을 가지게 되는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바로 토지, 노동, 화폐라는 허구상품이 창조되는 순간이죠.


위의 프롤로그에선 허구상품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왔습니다. 그걸 소개하기엔 너무 분량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허구상품이라, 처음 들어보시죠? 토지, 노동, 화폐는 실제로 거래되는데?

물론입니다. 이미 그렇게 변해버린 세상에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셈이니까요.

여기서 칼 폴라니의 주장을 단 한 마디로 압축시키자면,


Laissez-faire was planned! 자유방임은 계획된 거야, 멍청이들아!


이러한 계획, 시장논리와 그에 따르는 온갖 위험들을 시민들에게 강제하려면 국가 통치의 기술과 억압이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 사회에서 경제를 뽑아내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만나게 되므로, 시장 사회란 반대 방향의 두 운동으로 구성되게 됩니다. 한 쪽은 시장 만세! 자유방임! 다른 한 쪽은 사회 보호!(이 사회 보호 운동이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유 방임 반대하면 전부 다 붉은 군단이냐?!)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말이 있는데요.


양쪽 운동 모두가 위기에 대한 각자의 해결책을 강제할 수 있는 상태라면 긴장만 증가하여 마침내 파시즘이 권력을 잡게 되고 자유 방임과 민주주의 양쪽 모두와 단절하게 됩니다.


이것은 칼 폴라니의 글입니다. 저로서는 후덜덜하더군요. 자유방임을 외치던 사람들 때문에 자유방임과 민주주의 모두를 놓치게 되며, 급기야 파시즘이 권력으로 앉게 된다니?!


여기까지 거대한 전환에 대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간략한 설명의 전부입니다. 자세한 것은 직접 도서관에 달려가서 그 책을 보시거나, 없으면 사서 보시거나, 돈이 아까운데 영어는 할 줄 안다면 구글링을 해보시죠. 의외로 나오더군요.

그런데 왜 많고 많은 경제학자들 중에 칼 폴라니가 하필 프롤로그, 그것도 1권 서두를 장식하는 결과가 나타났는가?

1권에서 경제 원론 수준의 내용을 은유적으로 담았습니다.

그런데 경제학 원론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테지만,

경제학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수요와 공급을 배우게 되고, 규제가 갖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그럼 규제란 나쁜 것이란 생각이 금방 들게 되지요.

규제란 참 나쁜 것인데 어째서 정치가들은 규제를 만들어 내지 못해 안달일까?

그런 생각 안 해보셨나요?

하지만 칼 폴라니의 글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규제가 갖는 사회적 의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규제란, 사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진 장치였을 뿐입니다.

물론 그 장치에 힘을 너무 실어주면 경제를 억압하는 괴물이 될 지도 모르죠.

그러나 사회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말의 수단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버리면, 무방비 상태의 사회는 경제에 종속되어버려, 어쭙잖은 경제 논리에 우리의 삶은 피폐해질 겁니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안겨준 과실을 열거하고, 피폐해질 거라는 환상에 일침을 날리려는 분들을 소개하고 싶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유용성은 오히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구구절절 드러나 있으며,

덕을 본 사람이 있듯이 피폐해진 사람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제가 마치 사회주의자이며, 그 논리를 옹호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저는 어떤 주의에 종속될 만큼 많은 걸 알지 못합니다.

2권 프롤로그에선 누구를 내세울 작정인지 아십니까?

바로 자유시장경제의 신봉자, 하이에크의 글을 실어버릴 작정입니다!

저 또한 하이에크의 글은 몇 편 읽어봤거든요.

3권 프롤로그는 케인즈, 4권 프롤로그는 밀튼 프리드먼(...)

프롤로그에 경제학자의 주장을 담는 것은 딱 4권까지에요.


그래도 오해할 것 같은 사람을 위한 마지막 일침!

저는 제도주의 학파가 좋습니다. 베블런 최고!




저기 pdf는 아직 수정이 다 안 된 상태인데, 틀린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어디가 틀렸는지 알아내시는 것도 재밌으실 테구요...(???!)


문장이 틀린 게 있는데,


세계경제의 질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근본적이고 급속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처음부터 틀렸군요. 세계경제의 질서는 무생물입니다. 경험을 할 수가 없죠.

세계경제의 질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근본적이고 급속하게 변화하였다.

정도로 고치면 될 듯합니다.

 

그러나 허구적 청사진은 현실과 오버랩이 될 수 있을 수 없다.

->이걸 제가 어째서 넘어갔는지 모르겠군요. 될 수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허구적 청사진은 현실과 오버랩이 될 수 없다.

'있을'을 괜히 붙인 듯합니다. 단순한 오타인 듯..


이런 것들 찾아보면 좀 됩니다.......(...)




그리고 이건 위의 글과 그다지 상관 없지만, 생각나서 써봅니다.

일전에 베오베에 댓글을 하나 썼는데 묻혔더군요.. 사실 그 글의 주제랑은 아무 상관없는 내용이어서 묻힐만 했습니다.

제 댓글 위아래로 다 푸르딩딩인데 저만 추천/반대 0/0 달성!(...)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가장 마지막 줄이었어요.



우리는 어쩌면 민주주의와 단절된 상태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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