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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무신론은 안녕하십니까?
게시물ID : sisa_255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낑낑이
추천 : 3/7
조회수 : 407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06/11/24 14:44:44
이 글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몇 달을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씁니다. 물론 저는 신앙인이고 제 신앙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그렇다고 나쁜점까지 믿고 따르고 싶지는 않는 사람으로서 제 생각을 좀 적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신론'을 설파했습니다. 다양한 무신론이 있고 모두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티 기독교도 무신론자와 비판론자가 있고, 양자는 합쳐서 무신론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기독교 비판을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대한 부분입니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그리스도교의 성경은 총 70여권으로 프로테스탄트, 가톨릭, 동방교회, 그리스 정교회, 영국 성공회 등의 교파와 학설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는 크게는 몇 천년의 시간 간격을 둔  다양한 저자가 당시의 사회상과 저자 자신의 가치관이 개입된 각 권의 독립 문서들 한데 모은 종교적, 문화적, 통계적, 문학적, 역사적 텍스트 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이것은 종파를 초월해 모든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같은 복음서라 하더라도 님께서 마태오 복음의 내용과 요한 복음이 내용을 뒤섞어 신앙에 대한 비판을 하신다면 그것은 일종의 논리적 장난질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판하실 분께서는 일단 비판의 대상이 될 그 권을 정확히 읽어보신 후 각 권의 내용에 대한 비판, 그리고 성서의 이 권과 다른 권의 비교 비판 등의 합리적 방법을 채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합리적인 종교기관에서는 누구도 비 종교인에게 성서를 들이대며 믿음의 순환논리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개독교 논리라고도 불리우는 악질적 독선주의는 이미 정상적인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조차 없습니다. 만약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 전도사님, 신부님 등이 이런 소리를 하신다면 그냥 발걸음 돌려 나오십시오.


둘째, 기독교(프로테스탄트 + 가톨릭 + 기타) 가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역할에 대한 비판 입니다.

오유에 있는 자칭 무신론자 혹은 종교 반대자 분들의 모티브도 여기서 출발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을 이야기하면서 교모히 교리나 신앙에 관한 부분을 끌어들이는 것은 부적당합니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그 교리에는 필연성 보다는 어느 정도의 개연성만이 존재합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교 사상과 기독교 특히 한국 기독교 사이에는 엄연히 시스템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전자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정신적 윤리적 종교적 체계라면 후자는 특정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을 가지고 제도화된 사회 조직입니다.

그러므로 법조계, 경제계, 교육계, 의료계 등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 구성 요소의 하나로서 종교계 특히 그 중 기독교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만이 사회적 구성요소에 대한 비판으로 적합합니다.

예를 들어 공격적인 가두 선교나 자택 방문 선교라던가, 사회적 공인으로서 종교를 지나치게 어필하는 공과 사에 대한 종교의 탈 종교적 월권행위(정치적, 문화적) 등등이 이러한 비판에 속합니다.

물론 갈수록 불거져나오는 성직계급의 사회적 일탈 행위와 도덕적 타락, 집단 이기주의와 정치적 행보, 종교적인 교세를 남용한 압력집단으로의 괴변 등등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접근해야 마땅합니다.


셋째, 역사적 비판에 대한 것입니다.

흔히 유럽의 중세 시대를 "기독교 문명 사회" 라고 합니다. 그냥 종교가 판치던 사회~ 라고 쉽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기실 그렇게 나누어 버리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싫음'의 기준으로 모든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기 쉽습니다. 봅시다. "기독교 문명 사회" 란 "그리스도 사상 + 종교 + 지리적 문화적 문명 + 사회" 라는 굉장히 복잡한 여러 요소가 혼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세 사회와 기독교와의 상관 관계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종교의 역사적 정체성과 오늘날의 그들의 활동을 연루시켜 정당성을 박탈시키려는 태도는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비판에 대한 부분은 일정부분 그리스도교 사상과 함께 종교 자체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 그리고 유럽 문명 특유의 역사성과 이슬람과의 관계 등을 자세히 논하되 이 비판이 다른 주장의 근거가 된다거나 악감정을 유발하여 편가르기를 하여 묻어버리려고 발뺌한다거나 하는 비판은 정치적 도구나 다름없습니다.



먼저 첫째 기준에 의거한 무신론을 살펴봅시다.

서양 근대의 서막이 울림과 더불어 나타나 현대까지 이어온 무신론적 사조는 기독교 신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이 아니라 부분적 부정 혹은 불가지론에 입각한 무신론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스피노자와 칸트, 헤겔과 같은 사상가들에게 있어서 "신"이란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성격이거나, (대표적으로 인격신 부정) 우리는 신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자기 고백적 무신론이었습니다. 이는 엄밀히 말해 안티 기독교와는 틀립니다. 

이들의 등장으로 종교는 신앙과 신화의 영역으로 그리고 인간의 삶은 자연학과 인문학으로 설명 가능한 이성적 세계로, 나아가 종교와 정치의 분리 라는 형식으로 "종교의 탈권력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순수한 종교의 보존운동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달리 기독교적 세계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타 종교인들 입니다. 그들은 현실세계에서는 같은 세계를 살지만 신앙적 영역에서는 서로 적입니다. 이슬람, 유태교, 불교, 그리고 각종 컬트들과의 대화, 종교적 다원주의는 오직 보편적이며 윤리적인 가치에 대해서만 가능합니다. 서로의 신을 죽이려 하거나 파괴하면 그것은 이미 전쟁을 거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가장 호전적인 종교는 역시 기독교입니다만, 악을 악으로 갚는다고 해야할지 특히 토착 컬트(기나 도를 찾는 그런 분들)는 안티 기독교 세력에 합세하여 기독교를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영업상의 경쟁자"를 괴롭힙니다. 


둘째 기준의 무신론은 사회학적 무신론자들, 즉 예수가 아니라 예수교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맑스와 공산주의자들이 종교에 반대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맑스는 어땠는지 몰라도 공산주의자들은 신을 죽이고 자신들이 그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이들의 문화 안에서는 마치 로마가 그랬었던 것 처럼 인간이 인간에게 신(Homo homini Deus est)일 뿐입니다. 숭고하고 장엄한 음악과 동상은 위대한 동지들을 위한 것들로 변질되어 갔지요.

반대로 가장 건강한 종교 비판론자들도 역시 사회적 무신론자들입니다. 교회는 그 역사상 완전한 신을 닮으려기 보다는 끊임없이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에 충실해 왔습니다. 돈과 권력을 통해 자기 세력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그래서 결국은 그 사회 전체를 잠식하는 암적인 자기증식에 열을 올렸던 것이지요. 한국사회에서도 특기 개신교의 이러한 성향은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첫째, 말씀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선교의 중심지이자 신앙인들의 공간이고, 둘째, 하늘나라와 초기 교회의 이타적인 공동체 구현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땅에 구현하는' 미메시스적인 봉헌입니다. 즉,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 그 자체가 바로 신에 대한 찬미와 감사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구현이 꼭 양적으로 많거나 규모가 거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에서 가지는 좋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모든 기독교 단체는 비판의 여지가 있습니다. 욕먹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가두선교나 강력한 권고를 통해 선교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삶으로 신앙의 고귀함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는 것은 애초에 바울과 야고보 사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세 번째 기준의 무신론자들은 기독교가 가지는 악마적 역사성을 근거로 합니다.

이는 두 번째 기준과 그리 다르지 않은 비판같지만 사회적 무신론이 공시적 비판이라면 역사적 관점에 의거한 무신론자는 통시적 비판을 주창합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이체는 목사의 아들이며 신학도였고 신교와 구교간의 싸움으로 피폐해진 신성로마제국이 나폴레옹의 군대 앞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존중했으나 교회는 증오했습니다. 교회가 가지는 역사적 악마성은 그들 교회의 자기유지를 위해 스스로의 모든 노력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고질적 태도로부터 기인하며 이것은 종교 개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많은 무신론자들도 역시 십자군 전쟁과 종교 전쟁, 그리고 현대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문명간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 하며 교회의 존재 근거를 비판합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특히 한국교회는 이런 역사적 과오들과 그다지 직접적인 연관성도 가지지 않거니와, 한국 기독교가 갖는 호전적 성향은 역사성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그저 잘못된 신앙의 한 형태임을 주장한다면 그 비판의 기반 마저 무너지고 맙니다.

故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시인하고 사과한 대로 교회의 악마적 과거에 대한 과거 청산은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두움의 역사 만큼이나 복지와 봉사와 같은 역사적 공헌도 해 왔습니다. 따라서 단점을 보완하고 고쳐가는 건설적 태도가, 파괴적 태도보다는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를 모함함으로써 이득을 보려는 일부 저열하고 간악한 무리들로 인해
건강한 종교적 비판이 그 정체성에 위협을 받는 것은,

일부 교회를 도구 삼아 자기 이득을 꾀하려는 저주받을 종교인들 때문에
전체 기독교가 욕먹는 것 만큼이나 아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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