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국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네요. ㄷㄷ
당시 추모인파 많은것에 대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첫째로, ‘넘버원 맨’으로서 12년 동안이나 군림했던 노독재자가 끝내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이역에서 죽은데 대한 인간적인 동정심.
둘째로, 구경거리라면 밥먹기보다 좋아하는 국민의 호기심.
셋째로, 생전에 신격화되어 도저히 접촉할 수 없었던 독재자에 대해 사후라도 접촉해보았으면 하는 서민의 열등자 의식.
넷째로, 이박사 통치시대가 적어도 지금보다 좋았다는 중년층ㆍ노인층의 회구감.
이상 네 가지 사유를 관통해서 그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것은 국민의 낮은 정치의식이다. 죽음은 가장 엄숙한 사실이기 때문에 생자로 하여금 사자 생시에 대한 은원ㆍ애증의 감정을 초월케하고 한없는 관용심을 자아내게 한다
출처 -
신상초, <밖에서 본 이승만 박사>, <신동아>, 1965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