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선택의 기로에서서 헤메이고 있다.
그것은 선택당하는 자 -것- 와 선택받지 못하는 자 -것- 모두에게
참으로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떠나오고 떠나보낸 모든것들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몇십통의 전화가 왔는지 모른다.
일 하는 내내 몸서리 치듯 울리는 진동을 무시하며,
애써 내가 잡은 일에 몰두를 한다.
죄없는 팬을 탓하며 괜한 신경질을 부린다.
정작 화가 난건 내 자신에게 일진데.
신규음성 3개가 도착해있습니다.
확인은....
휴대폰속 여자의 안내에따라 버튼을 누른다.
나야 잘들어갔니?
날 추운데.. 미끄럽구. 돌아가는 길이 내리막길인데
걱정된다.
전화기 진동으로 해서 몰랐나봐?
듣고 연락 해줘.
어젯밤에 울리던 벨소리 못들었던듯 하다.
하긴 내가 빠르게 손으로 막기는 했었지만..
나..왜 전화 안받니?
일어났구?
걱정이네..
연락 줘.
나 하나에 신경쓰면 다른것 못하는거 알잖아.
연락해...
잊고있었다.
하나에 얽메이면 다른것에는 손도 대지 못하는 너란걸.
또 나..
기다릴께.
연락도 안되구 그래서 내가 회사앞에서 기다릴께.
정시퇴근 맞지?
그럼 기다린다.
만나면 죽었어!...
걱정섞인 화풀이가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닫았다.
5시20분
퇴근 10분전이다.
서류정리를 하고 내일을 위해 자리를 정리한다.
마치 어제를 정리 하듯 꼼꼼히 돌아본다.
평소에 이랬다면 팀장한테 욕먹지 않았을텐데.
빈 종이컵과 함께 의미없는 생각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문을 연다.
민아..
희미하게 그리운 향을 담은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너 였다.
어제 잊기로 했던 너 였다.
응?
왠일이야.
나 퇴근 하는 시간에.여기 와있구?
애써 음성을 못들은척
반문을 한다.
문득 어리는 슬픔. 세상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이러면 안돼는데..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안경을 벗고 눈을 닦는다.
잠깐..
나 눈에 뭐 들어갔나봐.
괜찮니?
내가 봐줄까?
역시 넌 내걱정이 먼저다 자기 추웠던것은 의식도 못한체.
아니 다 된것 같아.
안경을 쓰며 앞을 바라보니 늘 바라보던 네가 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다.
걱정스런 눈으로 손수건 하나 꺼내든체.
순간 흐린 내 눈에 띈 분홍색 벙어리 장갑이 괜히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잡지못하는 벙어리 장갑.
병신 장갑.
나 하나밖에 바라볼줄 모르는 널 닮은 것 같아 불쌍하다.
차마시러 갈래?
어젯밤 혼자 생각한 대사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말았다.
이게 배려인가?
응.
팔짱을 껴온다.
샴푸향이 그리고 너만의 독특한 향이 그새 얼었던 코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볼에 하는 키스.
애써 고개를 돌린다.
마치 니가 키스를 할줄은 몰랐다는 듯이.
물어보고 싶은것이 많을 너 이리라.
어젯밤 부터 오늘 하루 왜 연락이 없었는지.
그리고 나의 소소한 - 매일 이어지는 - 하루 들이.
머릿속으로 대답꺼리를 찾고 있다.
어젯밤 준비했던 말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어색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바보.. 아직도 모르니..
그꽃이 뭔지.. 아직도 모르는거니?'
녹차 랑 커피주세요.
네.
민아.
왜 연락안한거야?
바빴어?
아님 어떻게 된거야?
뭐?
전화말이야. 한통두 없구 걱정 했잖아.
그랬어?
주섬 주섬 가방을 열어본다.
가방 아래쪽에서 전화기가 눈에 들어온다.
급히 가방을 닫으며.
나 안가져왔나봐.
어젠 너 바래다 주고 피곤해서 잤구.
그래서 몰랐나봐.
이따 가서 확인 할께.
급조한 거짓말 치고는 꽤나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래서 그랬구나. 걱정 했잖아. 밉다 너..
담에 또 그럼 죽는다.
착하게도 넌 믿어준다.
가방을 열면 바로 보일 내 거짓말인데.
넌 의심없이 믿어준다.
이어지는 질문들.
왜 갑자기 혼자서 울리는 오르골 인형이 생각이 나는 걸까.
오늘 뭐했어?
팀장님이랑 또 싸운거 아니구?
밥은?
점심은 뭐 먹었어?
뭐가 그리 궁금한걸까.
며칠뒤면 난 떠날텐데.
연락처 하나 남기지 않고 회사도 그만둘텐데.
그때는 내가 궁금해서 너 어떻게 살래?
나야 뭐 매일 같은 연속이지 뭐.
'참 힘들었어 메세지로 듣는 너의 목소리 때문에.'
가슴으로 너에게 대답했다.
들을리 없지만, 들을수 없지만,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과 하루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체 일어났다.
정을 떼야 한다.
어쩜 지금시간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것이란것도,
너의 그 벙어리 장갑이 버스 손잡이를 쉬이 잡지 못할것이란것도,
가는 내내 흔들릴 작은 너의 몸이란것도.
알면서도 그냥 버스에 올라타는 너를 바라보고,
평소보다 일찍 고개를 돌렸다.
움직이는 버스에서 내내 창밖으로 날 찾겠지.
다른것에 가리워져 보이지않을때 까지 날 찾겠지.
내가 늘 그러했듯이..
아..아..
온통 회색이다.
이른 저녁 - 그러나 밝지 않은 - 풍경은 회색이다.
겨울은 온통 회색이다.
너와의 두번째 이별의 순간인것이다.
이별의식인것이다.
이제 몇번남지 않은 연습후엔 진실로 이별이겠지.
돌아선 발걸음은 너와의 기억이라는 수렁을 찾아 헤메는 발걸음인듯,
한걸음 한걸음 채이는 모든 것 들이 너였다.
헤아릴수없이 많은 너 였다..
ps
1
기억 나지 않던것이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삼 떠오릅니다.
마치 새로운 , 없었던 일인마냥.. 그렇게요.
짧게 쓰려 했는데,
아직도 내가 알지 못한 아쉬움이 많았었는지.
잊혀졌다 생각했던,
그러나 가슴속에 숨어있던 그 기억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나도 적혀지게해줘. 잊혀지지 않게 말야.."
참 잔인한 녀석입니다. 그리움이란것은..
2
비.
비.
비.
의미를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맴돕니다.
비.
비.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