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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으로 가는 인도여행 - #2. 심라에 갔다 part3
게시물ID : travel_264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는소
추천 : 3
조회수 : 5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22 14:20:31



--------------------------스압!!!!!!!!!------------------------------


의식의 흐름으로 가는 인도여행 - #2. 심라에 갔다 part3



인도에서 생기는 신비로운 일 중 하나는 아무리 먹고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그날 아침도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 원숭이떼를 뚫고  몰(광장)로 가는데 허름하지만 왠지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보였다. 아침 일찍부터 주방장이자 주인인 남자가 열심히 식탁을 닦고 계단을 쓸고 있었다. 인도 4일차의 초보지만 그래도 굉장히 신선한 광경에(심지어 식탁을 닦는 행주가 깨끗해 보였다. - 걸레가 아니라 행주인 것이 분명하다!!) 홀린 듯 가게로 빨려 들어갔다. 합리적인 가격의 메뉴판을 훑어보고 흐뭇하게 아침메뉴를 달라고 했다.


 테이블이 3개 밖에 없는 작은 가게였는데 내가 자리에 앉고 얼마 되지 않아, 대학생들로 보이는 인도인들로 남은 2개의 테이블이 가득 찼고 내가 앉은 테이블 역시 다른 인도인과 함께 나누어야 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인도인도 여럿 보이는 것이  느긋하게 밥 먹긴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분쯤 지나 아침식사가 나왔다. ‘알루 프란타와 짜이.’ 그날 이후 나의 단골 아침메뉴가 되어 버렸다.


*알루 프란타는 차파티 안에 마살라와 감자 볶음이 들어 있는 음식으로 망고피클과 함께 먹는 북인도의 대표적인 아침식사다.  


나와 테이블을 공유하게 된 인도인 커플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빠르게 아침을  주문했다. '성격 참 급하시군요.'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두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는데, 남자가 자리를 뜨자 여자는 갑자기 안절부절 불안해 보였다. 너무 불안해 보이는 모습에 괜히 안쓰러워 오지랖이 발동했다. (그렇다. 어른들이 오지랖 부리는 건 다 내가 안되 보여서 그랬던 거다.) 하지만, 아무리 안절부절 해도 인도인은 인도인. 그들의 본능은 숨길 수 없다.

“굿모닝!” 먼저 말을 건 내자 내 앞의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아차 싶었다. 나는 저 눈빛을 알고 있다. 어제 토이트레인의 기억이 플래시백된다. 팔에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아… 괜히 말걸었다.' 이래서 오지랖은 함부로 부리는게 아니다. 세상에 프로 오지라퍼라는 단어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인사로 시작된 대화는 걱정했던 것과는 (어제와는) 달리 전혀 거부감이 없이 서로 적당히 주고받으며 이어졌다.      



바람같이 사라졌던 남자는 바람같이 돌아왔다. 그는 식사가 준비되는 틈을 타 영화표를 사왔다고 했다. (이 커플을 통해 얻은 새로운 정보. ‘인도인들은 휴가를 와서 영화를 본다.’) 그는 오후에는 사람이 많아서 표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침에 영화를 봐야 한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돌아오자 생기가 돌아온 여자는 커플로 합심해서 더욱 공격적으로 내 신상을 털었다. 나는 2:1의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조용해 보였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 보다 4.5배는 말이 많았고 헛점을 노리고 들어오는 노련함 까지 가지고 있었다. 능력치가 남다른 남자의 공략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 커플과 함께 저녁에 마술쇼를 보러 가는 약속이 잡혀 있었다. 마술쇼 쯤 같이 보는게 뭐가 대술까? 예정에 없던 일정이지만 예측불가능한 일은 많을 수록 즐겁다.   


커플과 헤어지고 호텔로 돌아가 카메라를 둘러 매고 본격적인 심라 탐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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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루 종일 심라를 들쑤시고 다녔더니 마술쇼를 보러갈 생각이 사라졌다.

마술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점심을 먹으며 마술쇼 광고판을 봤는데 tv에서 보던 50년대 영화관 간판 같았다. 정말 기대가 하나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를 방안 침대로 끌어당기는 그 힘을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아… 아침에 연락처를 주는게 아니었는데…’, ‘애초에 먼저 말을 거걸지 말았어야 했는데…’

경솔했던 아침을 반성하며 침대에 누워 마술쇼를 가지 않을 핑계를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결국 정공법(?)으로 가기로 했다. ‘아직 밖에서 들어오지 않은 척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숨을 죽이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똑똑 똑똑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 세상에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는가. 나의 대뇌는 이제 완전히 일하는 것을 포기 한 것 같다. 내가 방에 없다면 방문에 자물쇠가 잠겨 있어야 하는데, 자물쇠가 문에 걸려 있지 않다면 내가 100%방안에 있는 것이 너무 분명하지 않은가. 커플은 내 방까지 직접 나를 데리려 왔다. 
 


   첫 만남의 정신 사나움이 떠올라 아까 말하는 것을 잊었는데 놀랍게도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이 커플은, 우연히 나와 같은 날 심라에 도착해, 우연히 나와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이정도 우연이 겹쳤으면 심라를 떠나기 전 결국 만날 관계였을 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내가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내게 있는 선택지는 자발적으로 그들의 수다 노예1호가 될 것인지, 아니면 강제로 그들의 수다 노예1호가 될 것인지. 이 두가지 뿐 이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내발로 웃는얼굴로, 즐겁게 따라 나가기로 했다.     


아침에 이름을 들었지만 인도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정확하게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마술쇼를 보러 가는 길에 다시 커플의 이름을 물었다. 남자는 ‘나지르’, 여자는 ‘아누’라고 했다. 미안하게도 그들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만약 둘이 자식을 나으면 남자든 여자든 내 이름을 붙이겠다고 까지 했다.(인도인들의 말 빨이 이 정도다. 비벼보겠다는 생각따위 애초에 해서도 안된다.)


몰로가는 시간 15분, 그 잠깐 동안 귀가 먹먹해 짐을 느꼈다. 혼자 피를 흘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내가 주도권을 쥐고 대화를 이끌어가기로 했다. 영어가 유창한 커플이었고 올해로 4년째 매년 여름휴가 때마다 심라에 온다고 했기에 부자집 사람들이라고는 예상을 했지만 이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방향의 스토리가 있었다.



아누와 나지르는 같은 마을 출신이었다. 아누는 넉넉한 집안의 넷째 딸로 태어나 찬디가르 펀자브대학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을 마치고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반면 나지르는 홀어머니 밑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동네에서 소문난 양아치 였다. 전혀 접점이 없었을 것 같은 두 사람 이지만 만날사람은 만난다고 아누의 동창 이자 나지르의 친구인 남자의 소개로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 나지르는 아누를 만나 아누의 부모님 앞에서 앞으로 성실히 살 것을 맹세 했다고 했다. 그는 양아치 생활을 청산하고 지금은 아누의 부모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두바이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 둘의 러브스토리는 인도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긴데.. 남의 연예사... 것이 뭐시 중한디??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몰에 있는 마술쇼장에 도착했다. 마술쇼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마술 트릭은 기대하지 마세요. 하지만 인도인의 열기는 대단하답니다.’이다(아차...두 문장이다) 마술 트릭은 초등학생이라도 알만한 그런 것들 이었다. 그런데 인도인들의 이 공연의 마술사에 대해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열광했다. 특히 아누는 마술사의 손짓 하나하나 마다 나를 때리면서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라는 표정을 지었다. 영문도 모른채 얻어맞던 나는 억울함이나 호소할까 하는 마음에 주위 인도인을 둘러보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를 제외한 인도인들은 모두 쇼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인도인이 아누와 비슷한 상태였다. 아누는 저 마술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술사라는 말과 함께 마술사의 이력을 나열했고, 이런 쇼를 볼 수 있는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어?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익숙한 스멜이 느껴진다.’




마술쇼가 열기를 더해갈 무렵 아누는 마술 참가자를 뽑는 다는 말에 펄쩍펄쩍 뛰며 지원을 했고,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끼어 나란히 마술도우미 역할을 차지했다. 아누가 가슴팍에도 오지 않을 정도의 아이들과 함께 나란히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관객과 함께하는 마술 트릭이 끝나고 마술사는 모든 참가자에게 카드를 한 장씩 선물했다. 아누는 카드를 두손으로 꼭 쥐고 가슴에 끌어안고 울 듯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 왔다. 자리에 앉아 거의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이 된 아누... 이 황당한 상황은 뭐지? 이게 뭐라고 눈물까지 글썽인단 말인가? 그런데 여기에도 사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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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누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러니까 거의 20년전. 아누와 나지르의 마을에 저 마술사가 공연을 왔다고 한다. 그때 마술사의 공연을 보고 마술사에게 한눈에 반한 아누. 그날 이후로 이 마술사는 아누의 영웅이 되었다고 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누는 마술사를 다시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만남이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아누와 나지르는 일부로 이 마술공연을 보기 위해서 휴가날짜도 바꿨다고 했다.)

이정도 사연이면 눈물이 날만도 하다. 나도 내가 좋아하던 아이돌이나 밴드를 20년 뒤에 만난다면 울지도 모르니까…(그러니까 오아시스가 재결합해서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눈물이 나겠지...) 아까의 수상한 냄새는 역시 ‘덕후의 냄새’ 였던 것 같다. 그럼그럼, 동료는 동료를 알아보는 법이다. 갑작스럽게 아누에대한 애정이 샘솟는다.    


영원할 것 같은 마술쇼가 끝나니 밤10시가 가까운 시간 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계가 아직도 영업 중 이었고,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리고 나는 허기를 느꼈다.  
   


해외 맛집 공식 하나. 진짜 맛집은 현지인들로 북적이는 집이다.

나는 이 말에 131%로  공감한다. 나지르가 나와 아누를 몰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탄두리 치킨 집으로  데려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내 30년 인생 최고의 치킨을 맛봤다. 4년만에 먹은 닭고기이자 태어나서 처음 맛본 탄두리 치킨은 아직까지도 잊을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 부드럽고, 매콤하면서 담백할 수 있을까? 마술쇼에 끌려간 보람이 있었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서 계산을 하려는데 고민이 생겼다. 인도 어디를 가나 인도인들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한다. 손님이 약간이라도 불편함이나 불만을 가지면 호스트로써 수치심을 가진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오늘만 해도 아침, 마술쇼, 저녁까지 전부 나지르가 계산했다. 내가 힌디를 할 줄 모르니 나지르가 직원에게 몇 마디 하면 직원은 내 돈을 받지 않았다. 이렇게 얻어먹기만 하면 나도 불편하다. 결국 나의 간곡한 부탁에 카페에 가서 함께 커피를 마셨다. 커피 세잔 값이 탄두리 치킨과 마술쇼 3인분 보다 비쌌다는 것은 충격적 이었다.     



카페를 나서서도 셋이서 한참을 몰에서 놀다 자정이 돼서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에서도 우리의 수다는 끝나줄을 몰랐다. 과일과 과자를 풀어 놓고 놓고 밤새도록 놀았다. 한국을 떠날 때만해도 내가 인도인과 이렇게 밤을 새가며 노는 장면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아니 오늘 아침만 해도 인도인들과 대화하는 것이 지겹다고 생각했고,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특히나 범죄, 경제, 사회문제와 정치가 대화의 주된 주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여기서 밝혀진 또 하나의 우연. 이들의 고향은  다람살라. 내가 심라에서 다음으로 이동하는 장소였다. 아누는 학교로 돌아가야 하기에 찬디가르로 가고, 나지르는 아누를 찬디가르로 데려다 주고 다람살라로 돌아간 다고 했다. 다람살라에서 나지르와 다시 만나기로 하고 동이 틀 무렵 내 방으로 돌아왔다.     



해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봤다. 밤새 아누와 나지르와 수다를 떨며 보낸 시간이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즐거웠다. 지난 3년간 일부로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외로웠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고, 친구만 잃었다. 아무 이득도 없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지난 몇 년간의 고독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날이 오게 될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심라에서는 비싼 방값에도 불구하고 5일이나 있었다.

심라는 정원같이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맛이 있는, 모든 면에서 정말 인도스럽지만 인도스럽지 않은 장소였다. 도시 자체는 그렇게 기억에 남는 곳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심라가 나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심라에 머무는 동안 만난 많은 사람들 덕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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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라는 것이 정말 신기하긴 신기하다. 심라에서 머문 4박5일 동안 대화를 나눈 인도인은 과장하면 고교 동창 만큼 많을 것이고, 함께 놀러 다니고 연락처를 주고받은 인도인은 내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런데 그 많은 인도인들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내가 거의 일방적으로 연락을 받고 있지만) 연락을 주고받는 건 아누와 나지르 뿐 이다.     



 어제도 나지르에게 연락이 왔다.

“헤이 뷰티풀 ~뭐해? 어디야?”

“한국”

“인도는 언제와?”

“2달 있다가...”

“그럼 올 때 소주사와!!!”

“.............”

우리는 이런 관계다.     


https://brunch.co.kr/@damyi1014/

에는 11편까지 진행중..

출처 https://brunch.co.kr/@damyi1014/

에는 11편까지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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