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시위’ 긴급체포…느닷없이 ‘범법자’로
ㆍ‘달라진 2009년’ 평범한 회사원 가상 시나리오
ㆍ‘비난 댓글’ 사이버 모욕죄 해당…고소 없이도 처벌
ㆍ휴대폰 감청도 합법…무차별 감시 ·인권침해 ‘오싹’
한나라당이 임시국회에서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민통제의 우려가 있는 사회분야 문제 법안들의 일괄 통과 방침을 확정했다. 국민의 생활필수품인 인터넷과 휴대폰이 감시수단이 되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시위는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국익’을 명분으로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사실상 무한대로 늘려 ‘안기부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쟁점 법안들이 시행될 경우 어떠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지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알아본다.
# 인터넷을 통한 국가의 시민 통제
2009년 ○월 ○일. 모처럼 일찍 귀가한 회사원 김모씨는 오랜만에 컴퓨터를 켰다. 포털사이트의 ‘오늘의 뉴스’는 코스피 지수가 800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주요 기사로 다루고 있었다. 침체된 경제 상황으로 매일 수 천 명씩의 퇴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은 남의 일 같지가 않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부에서 경기 활성화를 위해 4대 강 하천 정비사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는 뉴스도 보였다. 김씨는 기사 아래에 댓글을 달았다. “삽질만 하면 경제가 사냐. 쥐박이 정말 짜증난다.”
그로부터 며칠 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김씨는 우편물 내용을 확인하고서는 깜짝 놀랐다.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을 위반했으니 경찰서로 출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통지서에 적힌 ○○경찰서로 전화해 어떤 영문인지 알아봤다.
그는 “제가 왜 법을 위반했다는 거죠”라고 따졌다. 경찰은 “지난주 금요일 인터넷에 대통령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셨더군요. 사이버 모욕을 하셨으니 현행 법을 어기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사이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정보통신망법 제70조3항)는 규정도 알려줬다.
김씨는 어이가 없어 “아니, 대통령이 저를 고소했나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사이버 모욕죄는 일반 모욕죄와 달라서 피해자가 직접 고소·고발하지 않아도 수사가 가능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경찰은 김씨가 회사 사무실과 PC방 등에서 비방글을 몇 차례 더 올린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인터넷 댓글을 단 이후 경찰이 통신비밀보호법(제2·3조 등)에 따라 ‘합법적으로’ 자신의 휴대폰 감청과 위치추적시스템(GPS)을 통해 그의 동선을 속속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항상 쳐다보고 있는 세상이 돼 버렸다는 것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 거리에만 나서도 범죄
회사원 박모씨는 자신이 가입해 있는 시민단체로부터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번주 토요일 오후 6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운하 반대’의 촛불을 밝힙시다.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동안 단체 활동에 뜸했던 박씨는 이번 행사에는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중학생인 딸이 집회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았잖아. 게다가 날씨가 추워”라며 말렸지만 딸은 고집을 부렸다. 박씨는 딸에게 옷을 두툼하게 입고, 마스크를 쓰라고 한 뒤 함께 지하철을 타고 시청 앞으로 갔다. 이미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단체에서 준비해 준 촛불을 들고 무리 속에 섰다. 2시간 남짓 진행된 집회가 끝나자 거리행진이 시작됐다.
인도를 걸어가던 부녀에게 경찰이 다가왔다. 경찰은 이들에게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을 어겼으니 긴급 체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씨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섰다. 경찰은 “집회·시위의 참가자가 신원 확인을 곤란하게 하는 복면 도구를 착용해서는 안되는데, 마스크를 썼으니 현행법 위반입니다”(집시법 제14조 4항 등)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이튿날 박씨는 자신이 속한 시민단체 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간사의 긴 한숨소리가 전해졌다. “우리 단체가 촛불집회를 주동했다고 1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왔어요. 상인들이 불법 시위로 경제적 피해를 봤다네요”라는 간사의 말 때문이다. 집단행위로 다수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박씨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되겠죠”라고 인사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 국민감시에 날개를 다는 국정원
서울 00대학교 이모 교수는 대운하 사업에 대한 구체적 자료가 부족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국토해양부 소속 공무원인 친구로부터 대운하 사업 추진시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정리한 문건을 얻을 수 있었다.
친구는 “학문적으로만 활용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자료를 본 뒤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문건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이 교수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국정원 소속 직원이라고 밝힌 그는 “비밀 자료를 불법적으로 획득했다”며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국가안전보장 또는 국가이익을 해하거나 부정한 이익을 얻기 위해 비밀을 탐지하거나 수집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비밀보호법 제28조)고 말했다. 또 “친구 분도 곤경에 빠질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업무상 비밀을 취급하는 자 또는 취급했던 자가 그 업무로 인해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비밀보호법 제29조)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그런데 국정원이 왜 이 일에 관여하느냐”고 물었다. 국정원 직원은 “국정원법이 바뀌어서 우리 업무 범위가 대공·방첩·대테러뿐 아니라 국가 안전보장·국익에 미치는 국가정책 수립 정보와 중대한 재난·위기 예방관리 정보로 확대됐다”(제3조1항)고 설명했다. 국정원에 비밀의 분실·누설에 대한 조사권과 검찰 고발권도 부여됐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확한 국정원의 활동범위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국익을 핑계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겠다는 것이구나’라고 이해했다.
이 교수는 국정원이 통신비밀보호법에 근거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그의 휴대폰과 e메일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안홍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