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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인천시 남구 남주안 CGV에서 참전용사인 서재송(88)옹이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한 후 영화 포스터 옆에서 전쟁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
"전쟁에 나가 싸우자 생각에 미군 지원
미군 집중 포격에 월미도 주민들 희생
조국 위해 많은 사람 헌신, 알아줬으면"
"6·25 전쟁 때 알게 된 미군 B29폭격기 승무원은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후 몇 십 년 동안 전투기 소리에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그 융단폭격에 아무 것도 모르던 월미도 주민들이 희생되는 걸 자기 눈으로 봤으니까요. 영화 내용처럼 전쟁의 흐름을 바꾼 성공적인 작전입니다. 다만 이면에 있는 인천의 아픈 역사는 보이질 않네요."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 카투사로 참전한 서재송(88)씨가 2일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관람 후 남긴 평이다. "영화가 첩보 작전 위주로 흘러가 기대와 달리 상륙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는 언급도 했다. 이날 영화는 3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서씨는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직후 인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1950년 9월15일 수행된 인천상륙작전으로 몇 년 만에 다시 밟은 고향 땅은 폭격으로 진창이었습니다. 내딛으니 발이 무릎까지 꺼졌습니다. 우리 사단(미 7사단)은 지금으로 치면 인천우체국 근처에 상륙했습니다.
우리 해병대와 연합군이 인천항 주변을 접수한 뒤라 교전은 없었습니다. 부산으로 대학 가기 전 살았던 중구 신흥동이 코앞이었습니다. 쑥대밭이 된 내 고향을 보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가족들의 생사였습니다."
서씨는 인천 옹진군 덕적도에서 태어나 중구 신흥동에서 자랐다. 일제강점기 덕적도에는 초등학교 4학년 과정까지만 있어 육지로 유학을 온 셈이다.
전쟁이 터졌을 때 그는 국립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 1학년이었다. 피난민이 몰려들어 물 한 잔 얻어먹기도 힘든 부산 인심에 '차라리 전쟁에 나가 싸우자'는 생각으로 미군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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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증언 하는거조차 대단힌 용기가 필요한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