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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중독
게시물ID : panic_265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11
조회수 : 289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03/13 10:49:38
0 탁. 나무로 된 테이블 위에 차가운 오렌지 주스를 잔뜩 머금은 유리컵이 내려졌다. 수연이 직접 갈아 만든 것이다. 꽤 오랜 기간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남편에게 내어 놓고 있다. 최근 일에 바쁜 그이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물론 남편 영철도 그녀의 정성에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 결혼 한지 벌써 1년. Y대 화학과에 다니고, 항상 수석을 차지했던 수연을 영철이 무대포로 얻어 낸 것은 주변 친구들이 <기적> 이라고 말할 만큼 이슈가 되었었다. 아주 평범한 얼굴에 큰 능력도 없는 그에게 Y대의 독보적인 퀸카로 알려져 있던 수연이 넘어 갔다는 사실은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영철아. 어서 마셔."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로의 본명을 부르는 동갑터울의 부부. 영철은 능숙하게 커다란 유리컵에 거의 가득 차 있는 주스를 한번에 들이켰다. 굉장히 맛이 좋다. 아내가 직접 간 과일은 일반가게와는 다른 맛이 있었다. "우와 맛있다!" "고마워." 수연이 커다란 눈으로 눈웃음치며 의례적인 영철의 인사에 고마워했다. 눈웃음. 바로 그것. 영철이 그녀에게 빠져 들었던 그녀의 장기. "그래 알았어. 갔다 올게." 영철이 주섬주섬 가방이며, 웃옷을 챙기기 시작하자, 수연은 아침 식사의 흔적을 치웠다. 두 사람 분의 식사였지만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탓에 뒷정리 하는 것이 꽤나 오래 걸린다. "준비 끝! 나 이제 갑니다!" 쾌활한 영철의 마지막 인사로 두 부부의 아침 대면은 끝이다. 1. 영철은 아끼는 자가용을 조심스럽게 몰고 도로로 나섰다. 혼잡한 시간대라 빠른 속도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덕분에 보통 속도로 가면 3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은 걸려야 한다. '혜수…….' 10여분을 느릿한 거북이 운전을 하던 영철은 머릿속에 한 여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녀와 3개월 전 작은 접촉 사고가 있었다. 회사 앞에 주차되어 있는 영철의 차의 뒤꽁무니를 냅다 들이 박아 버린 것이다. 아직 초보운전이라는 딱지에 잉크도 다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미안하다며 눈가에 눈물이 작게 맺히는 그녀의 여린 모습이 아직도 영철의 눈가에 어른 거렸다. 2. "정말 죄송해요. 백미러를 보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혜수는 안절부절 못하며 영철의 눈을 바라보고 용서를 구했다. 뭐라 따질 필요도 없이 이것은 100% 그녀의 잘못이었다. 주차장에 가만히 주차되어 있는 차를 들이 박다니……. "조심 하시지 그러셨어요." 애원하는 한 여인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이 동해져 영철의 마음속의 분노가 사그러들었다. "어쩌겠어요. 괜찮습니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선뜻 괜찮다고 말하는 영철의 호의에 혜수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커피를 한잔 사겠다고 내켜하지 않는 영철을 부랴부랴 끌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도 사실 꽤나 미인인 혜수의 권유를 그다지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었다. 사실 영철은 그녀를 따라서 커피를 마시러 가지 말았어야 했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둘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결국 술을 3차까지 마시고는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말았다. 이제 겨우 영철이 결혼 한지 9개월 정도 되는 때였다. 그리고 3개월이 흘렀다. '내가 미쳤지. 아직도 만나고 있다니…….' 영철은 자신이 3개월째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분명 부인을 크게 사랑하고 있다. 세상 그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한다. 매일 아침마다 오렌지 주스를 손수 만들어 주는 세심함. 평범한 자신과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외모. 무엇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서 혜수의 존재가 조금씩 커져가고 있음을 결코 부인하지 못한다. 거의 일주일에 2-3번은 만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제 헤어져야한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야.' 영철은 마음을 굳게 다져 먹었다. 오늘 회사가 끝나고 혜수와 만나기로 했다. 저녁에 만나서 분명하게 말하고 이제 인연을 끊어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인에게 얼굴을 제대로 들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3. 오후 6시 30분. 영철의 회사가 끝날 시간. 평소와 달리 혜수가 영철의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더워진 탓에 무릎 한참 위까지 올라오는 얇은 원피스를 입었다. 회사를 마치고 나가는 많은 남자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는다. 영철은 회사 정문을 빠져나와 혜수를 발견하고는 남들이 볼까, 재빨리 그녀를 차에 태우고 빠르게 회사근처를 빠져 나왔다. "회사 앞까지 오면 어떻게 해. 남들이 보면 어쩌려구." 영철은 흥분된 목소리로 혜수를 다그쳤다. "미안해요. 그냥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혜수는 가벼운 영철의 다그침에 금새 우울해져 어두운 그림자를 얼굴에 드리운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채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알았어. 알았어. 우선 뭐 좀 먹으러 가자." 영철은 못 이기겠다는 말투로 혜수의 등을 두드려 기분을 풀어 준 뒤, 평소에 자주 가던 음식점으로 향했다. 원래 수연과 연애 시절에 자주 갔었던 곳이었다. 둘은 마치 지정석이라도 되는 듯, 항상 앉던 자리에 앉고 능숙하게 음식을 시켰다. 평범한 스테이크 2인분. "혜수야. 오늘은 내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 영철은 헤어짐을 말하기 위해 운을 띠웠다. 갑작스럽게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은 영철 자신도 힘들었다. 미리 좋지 않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혜수가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 듯 했다. "뭔데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영철의 입술만 쳐다보는 혜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다. "혹시 부인이랑 헤어지고 저랑 결혼 하시겠다구요? 호호호." 혜수는 입을 다소곳이 막고 여성스러운 웃음소리를 뿜어냈다. 부인인 수연의 눈도 컸지만 혜수의 눈은 더욱더 크고 아름다웠다. "아니야. 바보같긴." 영철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직 우울해지긴 이른 분위기다. 4. 불이 다 꺼진 여관방. 아직 초저녁인 까닭에 아직 창밖에서 햇빛이 어느 정도 들어온다. "영철씨. 아까 식당에서 해야겠다는 중요한 말이 뭐에요? 갑자기 생각났어. 궁금해요."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혜수가 영철의 품안에서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어 영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미 한 번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에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에 크게 자극 받지 않는다. "그래……. 휴우." 영철은 짧게 대답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헤어지자고 말을 해야 하는 오늘 까지도 결국 이런 짓을 하고 말았다. 스스로에게 구제불능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젠간 치루어야 하는 이별이다. 영철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입안이 콱 막혀오는 느낌에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쩍쩍 말라붙은 입안. "아……. 잠깐만 목이 너무 마르다." 한번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뒤라, 땀으로 많은 수분이 배출되었다. 덕분에 영철은 꽤나 심한 갈증을 느꼈다. 침대에서 알몸으로 일어난 그는 방구석에 비치되어 있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컵에 따르지도 않고 병째로 뚜껑을 열어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하아……." 영철은 1.5리터의 병에 들어 있는 물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무슨 물을 그렇게 많이 마셔요? 신기하기도 하여라." 혜수는 TV에 나오는 신기한 사람을 보듯 영철을 쳐다보았다. 사실 영철도 자신이 놀라웠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물을 한번에 마실 수 있지? 더군다나 더 이상한 것은 이렇게 많은 물을 마셨는데도 입안이 계속해서 마르고 있었다. 아직 그의 갈증은 계속이었다. "왜 이렇게 목이 마르지?" 물을 더 마실 요량으로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안에는 아까의 1.5리터 물 한 병이 전부였다. "정말 목이 너무 마른다." 영철의 입술이 천천히 말라간다. 5. "미안해! 내일 연락할게!" 영철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혜수와의 관계가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갈증 때문에 온몸이 타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혜수를 버려두고 여관 주차장에 세워놓았던 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그가 가장 마시고 싶은 것은 바로. '주스.' 아내가 갈아준 주스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소용없을 것 같다. 단지 그는 아내가 손수 만든 주스가 먹고 싶었다. 차를 집으로 빠르게 몰아갔다. 목표는 아내의 과일 주스. 6. "수연아. 과일주스 갈아 놓은 것 좀 줘." "냉장고에 있는데." 영철은 아내의 얼굴을 쳐다볼 생각도 안하고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열고 커다란 병에 든 과일 주스를 그대로 마셨다. 입가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도 상관치 않는다. 7. 3개월 전 "어머머. 얘 좀봐. 그런 남자가 어딨어. 바람 안피는 남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이 바보야." 혜수는 순진하기만한 수연을 비비꼬아 가며 말했다. 결혼 한지 1년도 채 안된 수연이 부러운 것도 있지만, 자기 남편은 절대 바람피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그녀의 순진함이 얄미웠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내가 니 남편 꼬셔서 넘어오면 뭐 해줄래?" 혜수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 수연에게 엉뚱한 내기를 제안했다. "얘는. 무슨 소리야." 수연은 혜수의 내기 제안에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한참을 혜수가 꼬드기자 수연은 결국 그녀의 제안에 굴복 하고 말았다. "내가 내일 너희 남편 회사에 차 몰고 갈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혜수는 수연에게 밉쌀 맞은 윙크를 보냈다. 8. <그것봐. 나 니 남편이랑 여관에서 잠도 잤어. 내가 뭐랬니. 남자는 다 바람핀다고 했지?> 혜수의 충격적인 전화를 받은 수연은 한동안 거실에서 주저앉아 있어야 했다.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편이……. 망연자실해 있던 그녀는 갑자기 마음속에서 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결혼하고 그동안 자신에게 해왔던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생각을 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격분이 치솟았다. '나쁜놈…….' 수연은 자신의 남편을 천천히 괴롭힐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혜수와 헤어지는 그날까지 아주 조금씩 화학과에서 수석을 하던 자신의 실력을 이용한 독극물을 과일 주스에 섞어 주기로 한 것이다. 그 독극물은 미량을 섭취해서는 그 효과를 모르지만, 아주 심각한 중독 효과를 보여서 하루에 한잔 이상 마시지 않으면 극심한 갈증으로 금단 현상을 보인다. 하지만 다량을 섭취하면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독극물이었다. 수연은 뛰어난 솜씨로 적당량을 섞어 딱 하루만 그 효력이 가도록 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나 임신했어. 니 남편 애야.> 수연은 3개월 만에 걸려온 혜수의 전화로, 그날 아침에는 그 독약을 넣지 않은 오렌지 주스를 따로 갈아서 테이블에 내어 놓았다. 그리고 독약을 잘 섞어 넣은 주스는 냉장고 안에 넣어 두었다. 9. 영철은 큰 병 안에 들어 있는 주스를 모두 다 마시고는 겨우 자신의 갈증이 풀렸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 가지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눈앞이 필름이 끊기는 것처럼 단편화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곧 눈알이 통째로 쏟아 져 내릴 것 같은 어지러움이 엄습했다. "수……. 수연아……." 바닥에 그대로 쓰러진 영철은 수연을 불렀다. 하지만 수연은 그에게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거실의 소파에 앉아 보던 TV를 계속해서 시청했다. 10. 혜수는 영철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수연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서로 붙들려간 상태였다. 덕분에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영철씨……. 미안해. 내가 거짓말 했어.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혜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사실 그녀는 단지 영철을 놓치고 싶지 않은 생각에 수연에게 아기를 가졌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불씨가 되어 영철이 죽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11. 사랑을 시험하지 말라.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이구리 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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