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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014를 힘겹게 보낸 후, 문재인은 당대표에 도전하게 됨. 그러자 계파 갈등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당대표 도전하지마라며 연판장 돌리는 의원들이 나옴. 대부분이 향후 민집모 활동을 했던 의원들이고 주도했던 노웅래 의원은 당대표로 김부겸을 언급함. 박지원의 지독한 네커티브 선거에도, 문재인은 당내 싸움은 안한다로 일관했고 현장 경선에서, 그동안 볼 수 없는 박력있는 연설로 대표로 당선되게 됨. 컨벤션 효과로, 대표 취임 후 문의 지지율은 점점 더 상승했고 한 때 30%에 근접하면서 대세론이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함. 문재인을 정계은퇴 시키려했던 비노쪽에선 비상이 걸렸고 16주 연속으로 문이 지지율 1위를 하자 이제 노골적으로 견제함. 즉 4월 재보선마저 새정치가 이긴다면, 정말 문 대세론이 형성된다 염려했음. 문재인 견제는 재보선 지역 중 하나였던 관악부터 시작됨. 친노 후보 정태호의 승리를 인정할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복을 선언함 그리고 천정배, 정동영은 그나마 승리가 예상되던 지역에 탈당 후 무소속으로 각각 출마해서, 정동영은 낙선, 천정배는 당선됨. 대세론이 형성되던 시기, 유력한 정치인이 탈당을 하고 일부 지역구에선 당원이 경선 불복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선거에선 패하게 됨. 그러자 기다린것처럼 문재인 책임론이 등장함. 침묵하던 김한길도, sns 를 통해 친노패권 멈춰라 주장했지만 사실은 지분 요구를 하는 주장이었고, 문은 그런 주장과 타협하지 않는다며 맞서게 됨. 분명히 16주 연속 지지율 1위, 심지어 압도적 1위 였지만, 유리한 지역에, 유력한 정치인 2명이 탈당하는 일이 생기고 총선에 패했다는 이유로, 문재인에게 노골적으로 지불을 요구했고 지분 요구가 통하지 않자, 친노패권이냐? 공격이 시작됨. 김한길, 조경태는 언론에 번갈아가며 등장해 문재인 대표를 공격함. 이 달은 노대통령 서거일도 있어서, 김한길도 봉하에 내려갔지만 야유를 받았고, 다시 김은 장문의 글을 남기며 문재인을 비난함. 최재성 사무총장 임명 갈등 주승용 최고위원의 당무 거부 정청래 최고위원의 설화 등으로 당의 내홍이 생기자 문은 혁신위를 만들어, 당을 혁신하겠다고 선언함. 혁신위장 역시 내정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종걸이 추천하는 김상곤이 혁신위장에 내정됨. 그러나 이종걸을 포함한 김한길계는 당요직에 있으면서 수시로 당무거부를 함. 11차에 걸쳐서 혁신안이 발표됐고 문의 지지율도 당시 1위였던 김무성과 오차범위 차이로 회복됨 그리고 다시 문에 대한 견제가 시작됨. 이번에 나선 사람은 그동안 존재감이 약해진 안철수였음. 10월에 갑자기 자기가 만든 혁신안 반영과 전대 하는게 곧 혁신이라며 전대를 요구함. 문은 안의 혁신안을 최대한 수용함 전대 요구는 대표 사퇴를 전제하는 거라 거부했고 안철수는 그 이유로 탈당을 선언함. 사실 안은 2월 전당대회 전부터 신당을 준비하고 있었음 이미 노골적으로 문에게 각 계파 공천 지분을 요구하던 동교동계도 탈당을 선택하게 됨. 안철수의 혁신 요구를 가장한, 탈당 명분 쌓기와 안에 동조하며 사퇴를 요구하거나 자신이 탈당해 문과 당의 지지율이 한 때 하락했지만 문은 인재영입으로 맞서며, 자신과 당 지지율을 견인함. 하지만 호남의 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충청권과 수도권 일부에 세력이 있던 박영선도 탈당을 시사하면서 문은 선대위장 영입을 넘어 사퇴를 선택하고, 김종인은 비대위장에 취임함 김종인을 포함한 비노는, 친노 vs 호남론을 주장하며 호남에서 문재인 싫어한다는 주장을 반복함. 곧 김종인 지도부의 비례 파동으로, 당이 위기에 빠졌고 문의 호남행을, 불만을 가지면서도 묵인함. 탈당한 의원들은 호남 비토론을 주장했지만 실제 방문한 지역마다 문재인을 환영했고 하락하던 당지지율은 상승하고, 국민의당과 격차도 줄어듬 결국 총선에서 제1당이 되며 헤피엔딩. (끝) |